인터넷 계시판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에 취업해서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 참 많이 올라오고 거기에 많은 답변과 조언의 답글들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종종 답글 중에 왜 오고 싶어하는 건지 묻는 댓질문이 달리기도 한다. 그러면 많은 경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한국에서의 직업적인 안정성, 특히 엔지니어의 경우 조금만 직급이 올라가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리직이 되어야 하는 부담 등 직장에 관한 고민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는 답변이 달리기도 한다.
미국에 관광으로 오거나 혹은 짧은 기간 동안의 어학 연수등으로 미국/캐나다를 방문해 보면 정말 눈에 보이는 것들은 너무나 좋아 보일 수 있다. 특히 미국 드라마에서 아이들 학교에 대한 모습이 나올 때를 보면 정말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명문 대학교에 가는 것처럼 보일 때면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이것과 비슷하다. 수능 만점 받은 학생에게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으면 국영수 위주로 교과서에 충실하게 공부했다고. 어디나 잘하는 애들은 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가 아닌 옆집 아이들은 항상 공부를 잘한다.
실제 미국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Texas의 경우 48%, 그리고 미국 전체는 40% 정도라고 한다. 미국 대학교 등록금도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학을 구지 졸업하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먹고 살 직업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청소를 잘 하는 사람은 늘 청소부로만 남지만 여기서는 정말 성실하게 잘하면 자기 회사를 차려서 청소회사 사장님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과는 달리 사회 생활 중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느 대학 출신인지 묻지 않는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취업을 통해서 미국으로 왔든지 아니면 정말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왔든지 상관없이 일단 미국에 발을 들였다면, 그리고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미국 정착 과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 시스템이 내가 한국에서 경험해 왔던 것과는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경험해 보았던 일들을 중심으로 어떤 점들이 다른지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여기 정리하는 내용 중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맞지 않는다거나 CA에서 경험한 것이 TX에서는 다를 수도 있어 내용이 일부 틀릴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미국 학제
매년 3월에 새 학년/학기가 시작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8월 말에 새 학년이 시작한다. 그래서 2022 학년도가 아니라 2022-2023 학년도로 표시한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주소지의 학군인 Round Rock Independent School District (RRISD) 홈페이지에 가보면 다음과 같이 2022-2023 학년도의 학교 스케줄이 포스팅 되어 있다.
학년이 바뀌는 여름에 학년은 보통 5월말 혹은 6월 중순에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여름 방학은 두달이 넘지만 학기 중간인 겨울 방학은 동부 해안가의 경우 겨울이 상당히 추움에도 불구하고 보통 크리스마스를 포함해 2주 정도의 winter break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다른 학제가 있는 주/학군이 있다고 하지만 보통 초등 공립학교 (Elementary School)의 경우 유치원에 해당 하는 Kindergarten 부터 시작해서 5학년까지 다니게 되고 (K-5 라고 보통 표기한다), 중학교 (Middle School 혹은 Junior High School)의 경우 6학년부터 8학년까지, 고등학교 (High School)은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제이다. 종종 초중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학교가 있는데 그럴 때는 K-8라고 표기한다.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처럼 상위 학교로 갈 때 다시 1학년부터 시작하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학년이 처음부터 졸업할 때까지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계속 이어지는 학제라 처음 몇년 동안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령 8학년, 10학년 그러면 이제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헤깔렸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역시나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면 해결된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해를 기준으로 학번이라는 것을 따지게 되는데 여기서는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를 기준으로 class of 202X 이라는 식으로 따진다. 지금 9학년, 즉 High School freshman인 둘째의 경우 Class of 2026이 되어 학교에서 지금 9학년들에게 팔고 있는 학교 티셔츠나 후디를 보면 다 Class of 2026이라고 적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등학교 졸업생 반 이상이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 졸업 연도에 대한 언급은 못 본 것 같다. 한국에서 20학번이라고 하면 대강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Class of 2026이 그 모든 것을 말해 준다.
학군 (School District)
한국의 소위 강남 8학군처럼 미국에서도 공립학교의 경우 학군에 따라 학교를 가게 되는데 행정구역과 거의 일치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행정구역과 학군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같은 시에 속하더라도 큰 길 하나를 기준으로 이쪽은 A 학군으로, 길 건너편은 B 학군으로 갈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8학군이 유명한 것처럼 여기서도 좋은 학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길 하나를 두고 어느 학군에 속하느냐에 따라 집값이 10만불, 혹은 그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고 지은지 10년이 안되는 새집이라도 학군에 따라 지은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 집보다 가격이 낮기도 하다.
San Jose/CA에 있을 때 가장 유명한 학군은 Cupertino Union School District 였다. 아래 지도는 Cupertino Union School District에 속한 district map이고 어디에 살면 어느 초등학교/중학교를 가는지 알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Apple 본사가 저 학군 map 중간에서 조금 우측 위쪽에 위치한다)
이 지도에는 행정구역 구분이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위 지도는 City of Cupertino, City of Sunnyvale, City of San Jose, City of Saratoga의 일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점은 Cupertino Union School District (Cupertino 학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만을 담당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Fremont Union High School District 라는 고등학교 학군이 따로 존재한다.
두 개의 map을 조심스럽게 겹쳐 보면 초등/중학교 map이 고등학교 map과 일치하지 않는 지역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 map은 북쪽으로 훨씬 더 넓은 Sunnyvale 구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학군이 San Jose/CA, 소위 실리콘벨리 지역의 최고 학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학군을 벗어난다고 학교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이 학군 지역 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강남 8학군처럼 묘한 자존심(?)이 있는 건 사실이다.
San Jose 지역에 살더라도 서쪽 끝은 Cupertino 바로 옆이라 Cupertino 학군에 들어 간다.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집 주소를 말 할 때 San Jose에 산다고 말을 하는게 아니라 꼭 "West San Jose"에 산다고 말을 한다. 마치 도곡동에 산다고 말을 하는게 아니라 타워펠리스에 산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초중 그리고 고등학교 Map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초등/중학교는 Cupertino 학군이지만 고등학교는 Fremont 학군이 아닌 지역, 혹은 그 반대의 지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집 주소에 따라 어느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집주소를 입력하면 학군 내 어느 학교로 가는지 알려 주는 페이지를 각 학군 홈페이지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에 Austin/TX에서는 초중/고등학교 학군이 하나로 같다. 인터넷에서 첨부 할만한 map을 찾아 보았지만 워낙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34개의 초등학교, 11개의 중학교, 6개의 고등학교) 여기에 붙여 넣으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반면에 Cupertino 학군에는 17개의 초등학교, 5개의 중학교만 운영한다.
앞선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중학교 숫자는 초등학교 숫자보다 적다. 한국도 마찬가지일텐데 하나의 중학교에 주변 여러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진학을 한다. 이렇게 해당 상위 학교로 가는 학교들을 feeder school 이라고 부른다. 즉 어느 중학교의 feeder school들은 근처의 초등학교들인데 종종 하나의 초등학교가 근처의 서로 다른 중학교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는 주민등록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소를 증명하는 방법은 운전면허증/아파트 렌트 계약서/집 재산세 고지서, 그리고 보통 유틸리티 고지서, 즉 전기 요금, 상하수도 요금 고지서 등을 이용한다. 지금 살고 있는 RRISD에서는 처음 학교 갈 때 이런 서류등을 내고 매년 다음 학년도 진학을 할 때는 이메일로 재등록 안내 메일이 오는데 여기서는 현재 집 주소 확인만 하면 되고 다시 증명 서류를 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내 경우에는 계속 한 집에 오래 살기 때문에 그렇지만 만일 학군 내 다른 학교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새로 증명 서류를 내는지 아닌지)
하지만 정말 학군에 진심인 Cupertino 학군에서는 종종 집 주소를 속이고 등록하는 경우가 있어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4년 동안 첫 입학 때인 9학년 때 한번, 그리고 11학년일 때 한번, 집주소를 증명할 수 있는 이 서류들을 다시 다 챙겨서 address verification 작업을 해야 했다. 보통 토요일날 last name 순으로 시간 범위가 정해지는데 그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고등학교 도서관으로 찾아 가면 학교/학군 담당자들이 그 서류를 일일이 다 복사하고 검사해서 확인해 준다. 그 해당 학년 학생들 전부를 재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가더라도 보통 1시간 이상은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 때는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큰 아이가 졸업하던 해인 2018년에는 그 고등학교 학생 수가 점점 줄어 드는 일이 벌어지자 학군을 조금 조절해 옆에 다른 학군이었던 지역까지 포함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학부모들이 엄청나게 반대하고 나섰고 아침마다 반대 팜플렛을 나누어 주며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지만 결국엔 난 이 학군 들어 오려고 집값 비싸게 주고 힘들게 들어 왔으니 훨씬 싼 옆동네 애들은 오면 안된다는, 그리고 그러면 지금 이 동네 집값은 떨어질거라는 그런 정서가 깔려 있었다.
며칠 후 교장이 전체 부모님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금처럼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면 결국 학생 수에 비례해 받게 되는 지원금이 줄 것이고 대학 가는데 중요한 몇몇 AP 과목들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부터 반대 시위/주장은 싹 사라졌다.
한동안 엄청난 화제였던 "스카이 캐슬"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학군에 진심인 그 동네의 해프닝을 보며 정말 현실판 학구열의 진심을 본 것 같아서 씁슬했다. 미국에서도 결국 학군을 무시 못하는 것 같다.
'미국 생활 > 미국 일상 생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 학교 - 셋 (0) | 2022.12.17 |
---|---|
아이들 학교 - 둘 (0) | 2022.11.20 |
미국 정착기 -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긴 한데...) (0) | 2022.08.21 |
배심원 소환/선정 경험담 (2) | 2022.07.25 |
영어 단어/이름 불러주기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