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Siri가 iPhone에 제일 처음 등장했을 때 신기한 기능이다라고 반가워했던 것도 잠시 이 Siri가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는 것을 보고는 난감함과 당황함이 한꺼번에 몰려 왔었다. 정말 Siri의 신기한 기능은 같은 말을 딸 아이가 하면 귀신 같이 알아 듣고 대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밀려 오는 좌절감.
두번째.
그래서 난 iPhone의 Siri와는 전혀 친해 질 수가 없었는데 어느날 퇴근하다가 앞서 가고 있는 우리 팀의 백인 친구가 자신의 iPhone을 꺼내 들고 Siri에게 스케줄과 리마인더를 세팅하라고 시키는 장면을 보았다. 아... 난 안 되는데....
세번째.
최근 들어 유틸리티 서비스 회사들, 인터넷, 휴대전화, 수도, 전기 회사 등에 customer center에 전화를 하면 메뉴 선택을 번호를 눌러서 하는게 아니라 말로 하라고 한다. 즉 전화 하면 다짜고짜 영어로 묻는다, "전화 하신 용건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단한 대답들, "account" 혹은 "billing" 이런 건 잘 통과한다. 그냥 한 단어이니까. 그런데 종종 account number를 불러 달라거나 하면 내용이 달라진다. 그냥 숫자 하나 하나를 읽어 주는 것인데도 못 알아 들을 때도 있다. "I cannot understand it correctly. Please try it again". 이쯤 되면 절망이다. 내 발음이 그렇게 나쁘단 말인가...
구지 "어뤤지"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흔하게, 편하게 말하는 것들이 약간의 엑센트가 다르거나 묘한 발음의 차이로 종종 의사나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예를 들어 실리콘벨리의 한복판인 San Jose는 "산조세"로 발음하지 않고 "산호세"로 발음한다. 이건 이름 자체가 Spanish에서 왔기 때문이다.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서 개발된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 지역, 그리고 예전엔 아애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에서는 Spanish 지명이 상당히 많다. Spanish에서 "J"는 "H" 발음이 난다. 그래서 "Jose"가 "조세"가 아닌 "호세"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Jesus"는 "헤수스"로 발음한다. "San"은 영어의 "Saint"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건 한국에서는 이걸 "세너제이"라고 쓴다는 것이다. 미국에 출장 왔던 기자가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는 걸 듣고 이게 미국 발음이야라고 하며 쓰기 시작했다는 "카더라" 이야기는 들어 보았지만 San Jose에서 15년 가까이 살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세너제이"라고 말하는 걸 들어 보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발음들이 있어서 고객 센터나 혹은 상점에서 이름, 주소 등을 이야기 할 때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m"과 "n"은 스펠링으로 불러 줄 때 늘 헤깔린다. 한국어로 "애"와 "에"가 발음만으로 하면 구별이 잘 안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경우 한국어에서는 "아이", 혹은 "어이"라고 나누어 이야기 해서 구별해 주는 것처럼 영어에서도 그런 표현이 있다.
m as in monkey
n as in nanny
즉 그 알파벳이 맨 처음에 쓰이는 흔한 단어를 같이 붙여 줌으로써 구별을 해 주는 것이다. 관용구처럼 쓰는 단어들, 예를 들면 a에는 "apple"을 주로 쓰는 것은데 이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군대에서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대신 "하나 둘 삼 넷 오"라고 쓰는 건 정확도가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헤깔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인데 군대에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알파벳 하나 하나를 단어에 연결해서 사용한다. 이건 군대와 관련된 영화에 보면 많이 나오는데 서로 통신하면서 암호, 혹은 자신의 식별 번호등을 불러 줄 때 흔히 들을 수 있다.
Alpha / Bravo / Charlie / Delta / ... / Yankee / Zulu
참고로 2016년 영화 중에 "Whiskey Tango Foxtrot"이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었다. 즉 "WTF"이란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인데 "WTF"은 "What The F**k"의 약자이다.
흔한 단어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엑센트나 발음이 살짝 다르더라도 대체로 어떤 단어인지 이해를 한다. 마치 한국말하는 외국인이 약간 어눌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 듣는 것처럼. 하지만 이름이나 흔하지 않은 집 주소를 불러 주어야 하는 경우에는 이 방법 없이는 정확한 전달이 안 될때가 있다. 특히 나처럼 legal name, 즉 법적 이름이 아직 한국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필요할 수 밖에 없다.
Starbucks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나면 이름을 묻는다. 커피가 다 만들어지고 나면 컵에 적어둔 이름을 불러 찾아가라고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미국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고지식하게 원래 한글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럼 이게 한번에 안 끝난다. "What?" 이러면서 제대로 못 받아 적는다. 그때는 또 친절하게 스펠링 하나 하나를 위의 방법을 위해서 알려주었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 주문한 커피가 다 만들어져서 내 이름을 부를 때 실제 한국 발음과는 다른 발음으로 불러 내 주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legal name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 아닌 곳, 예를 들면 식당에 예약할 때, 신용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그냥 일반 가입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그냥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네들도 편하고 나도 편해진다.
그런데 특이하게 중국계나 인도계 친구들은 이름 스펠링이 정말 어려운데도 끝까지 그 이름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구글 CEO의 full name은 Sundar Pichai로 비교적 짧고 쉬운 편에 속하지만 구글에 "difficult indian name"이라고 검색해 보면 Quora에 누가 다음과 같은 top 10을 적어 놓았다.
- Mragank
- Hymavathsay
- Kathyayini
- Avul Pakir Jainilabdeen Abdul Kalam - APJ Abdul Kalam
- Mriganka
- Mrunmayi
- Penchalaiah
- Dwaipayan
- Maitrey
- Yuzuvendra
- Etikalpallen
- Thekkumparambath
- Tomanimoy
- Triambak
- Andalaiah
솔직히 이 중에 반은 제대로 발음도, 아니 읽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이런 분들은 정말 자기의 이름을 불러 줄 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주변 인도 친구들 중에서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는 한번도 못 본 것 같다. 다만 이름이 너무 어려운 경우 줄여서 부르는 경우는 많다. 보통 첫 두 발음까지로 줄이는 방법인데 예를 들면 full name이 Venkataraghavan이라면 줄어서 Venkat이라고 줄이는 것이다.
인도 친구들은 이름 자체가 길기도 하지만 중국 친구들은 대체로 한자로 두자/세자로 이루어져 있어 길지는 않지만 전혀 생각하지 않은 spelling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 회사 동료의 last name은 Xiang 이었다. 대학원 때 시험 보고 답안지를 나누어 주는데 교수가 한사람씩 이름을 부르다가 잠시 흠찟 하고 멈추면 그게 자기 차례였다는 에피소드도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다. 발음은 "Xylophone" 즉 "실로폰" 때문에 "시앙"이라고 읽을 것 같은데 의외로 "Ch"와 발음이 비슷해서 "치앙"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어느 경우든지 자기네 언어의 발음을 영어로 옮기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문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종종 영어 이름 중에서도 정말 이건 어떻게 읽는거야 하는 것들도 있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지명에서 많이 나오는데 Austin 옆 동네 이름은 Pflugerville, 그리고 LA에서 Las Vegas로 가다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이자 길 이름인 Zzyzx (오타 아님; https://en.wikipedia.org/wiki/Zzyzx,_California).
읽기가 힘든 건 아니지만 뭐 이런 이름도 있을까 싶은 "Truth or Consequences". New Mexico 주에 있는 실제 도시 이름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Truth_or_Consequences,_New_Mexico
종종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이렇게 뭔가 어렵고 익숙하지 않고 복잡한 단어/이름을 알려 주는 건 또 다른 미국 생활에 있어서의 고난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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