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만나게 되는, 조금은 큰 길 교차로가 중고등학생들 스쿨버스를 타는 장소이다. 중학생이 먼저 타고 가고 30분쯤 지나고 나서 고등학생들을 태우는 스쿨버스가 온다. 요즈음 둘째는 스쿨버스 대신 차로 데려다 주기 때문에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오는 시간이면 버스를 기다리는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다. 매일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다가 문뜩 눈에 띄이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 여학생과 그 옆에 서 있는 그 아빠.
걸어오는 방향으로 봐서는 우리 집 골목 쪽인듯 한데 두 사람이 저 멀리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 왔다. 그 이야기가 아빠가 일방적으로 딸에게 하는 잔소리도 아닌 듯 딸아이도 듣고만 있는게 아니라 종종 아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야 늘 차로 지나가면서 보는 광경이니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읽을 수가 있다. 굳은 얼굴이 아닌 미소가 가득찬 얼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딸 아이와 나눈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늘 잔소리일 것만 같아 어쩌면 시도 조차 해 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상담을 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였는지 아니면 대학생 때였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내용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나한테 있어서 아버지는 참 어려운 분이셨고 아버지와는 딱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무섭다기 보다는 늘 듬직하고 기댈 수 있는 분이라서 오히려 경외감 같은 걸로 말같은 건 걸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랄까. 그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하고 나서 난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되고 나면 그런 무뚝뚝하고 어려운 아빠가 되지는 않을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상담사가 본인이 커서 그렇게 되는 것 말고 지금 본인의 아빠랑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잊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렇게 해 보는 방법도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던 걸까.
아마 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이라고 기억하지 싶다. 적어도 "남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편"들에게는 그렇게 정겨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체로 "남들"에게만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와이프에게 "넌 저렇게 차가운 피터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든거니?" 라고 결혼 전에 물어 보셨다고 한다. 나도 잘 안다, 내가 "내편"들에겐 참 무뚝뚝하다는 거.
결혼을 통해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변화이지만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 새 생명을 내 품에 안았을 때의 그 순간은 인생의 변화 이상의 큰 전환점이었다고 기억한다.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철없는 아직 학생 같은데 내 품안에서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며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열고 나를 빤히 처다보던 큰아이의 순간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온 둘째를 품에 안고 어, 어느새 아이가 둘이야라는 생각에 간난아이와 벌써 7살 큰 아이를 번갈아 보던 그 순간도. 막내가 태어나 아 이제 해야 할 일이, 이 식구들을 다 책임져야 하는구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의 품 안에서 모든 걸 맡기고 있는 막내의 꼼지락 움직임에, 아니야 그래도 난 할 수 있어 라는 용기도 얻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오늘 잠시 시간을 멈추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나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벌써 훌쩍 커 있고, 어디를 가든지 손 꼭 잡고 길 건너던 아이들이 이제는 징그럽고 창피하다며 더 이상은 손도 잡아 주지 않는, 그리고 종종 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궁금한 20대, 10대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그런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내가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다 그 위치에 이미 준비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처음부터 늘 선생님이었고, 대학에 가서 만나는 교수님들은 처음부터 그 멋진 지성인이셨고, 회사에서 만난 팀장님, 매니저는 그 때부터 늘 리더였고, 나의 아버지는 늘 "아빠", 어머니는 늘 "엄마"였던 것처럼.
그런데 문뜩 깨달았다. 첫 아이를 내 품에 안았을 때 난 "아빠"가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준비된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늘 내 모습처럼 남들에겐 정겨운 사람으로, 내편인 아이들에게는 그냥 무뚝뚝한 아빠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얘들아, 그런데 그건 말이야,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야.
그냥 "내편"에게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런거고, 나도 아빠라는게 처음이었거든.
모든게 준비된 것처럼 보이던 그 모든 이들도 그들에게는 항상 처음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게 익숙해지기 까지는, 아니 어쩌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음에도 그런 준비된 사람으로 나서야만 해야 했던 것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내 품에 안기었을 때에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은 하나씩 내 품을 떠나려 하는 아이들을 바라 볼 때에도 난 당연하게도 "아빠"여야 하는데 그게 종종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잘 모를 때도 있는 것 같다.
모든 걸 다 아는게 아니라 어떻게 안아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몰랐던 "아빠"라는게...
그 땐 그게 나도 처음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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