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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미국 직장 생활 이야기

직장 상사, 매니저와의 관계

by 피터K 2022. 4. 29.

20년 가까이 미국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비교적 작은 (20명 정도 남짓한 사이즈) 회사부터 이 업계에서는 제일 큰 (world-wide employee가 10,000명에 가까운 사이즈) 회사까지 다니면서 참 여러 상사/매니저와 일을 했다. 지금은 나도 매니저가 되어 좀 더 다른 일들을 하게 되는데 그 동안 어떤 매니저들을 만나 왔는지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미국에 처음 와서 일을 시작한 회사는 미국 본사에 20명 남짓, 대만 지사에 20명 정도 있었던 중소 벤쳐 회사였다. 이 40여명을 전부 통틀어 비중국인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 내가 없는 자리면, 즉 자기네들끼리 일하면서 말할 때는 중국말로 하고 내가 옆에 있으면 영어를 사용하는 아주 묘한 경험을 하면서 다녔던 회사였다. 같은 동양계, 그리고 전부 대만/중국 본토 출신으로 유학와서 정착한 경우라 사고 방식이 거의 비슷했고 그래서 함께 어울리고 회사 동료 이상의 정을 나누면서 지냈다. 어쩌면 어려웠을지도 모를 첫 미국 회사 경험이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미국 생활을 적응해 가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회사에서의 매니저는 아이들이 이미 전부 대학을 졸업한 나이 많은 분이셨는데 개인적으로도 참 많이 배울 수 있었던 분이었다. 매니저라고 하지만 여전히 개발을 하시던 분이라 같이 코딩/디버깅도 하셨다. 그러다가 한동안 회사가 어려워져 전체 인원의 반 정도를 내보내게 되고 개발인력이 부족해지자 내가 이끄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되었는데 이러다 보니 관계가 아주 묘해졌다. 그 분은 나의 매니저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내 팀원으로 내가 그 분께 업무를 분담해 나에게 결과를 보고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열 상 그 분은 내 매니저이지만 프로젝트 상 내가 그 분 매니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나 관계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개발하는 사람이 10명 내외로 줄어 들기도 해서 모두들 가족같이 지냈다. 회사 떠나던 날 다 같이 farewell lunch를 함께 했고 커다란 카드에 다들 한마디씩 감사의 말을 적어 주어 정말 적지않게 동료들에게 고마웠던 그런 분위기의 회사였다. San Jose에 있을 땐 종종 다같이 모여 점심 식사도 하곤 했었다.

 

 

그러다 옮겨간 두번째 회사에서는 인도계 친구가 매니저가 되었는데 예전부터 사용해 오던 알고리듬 논문의 제2저자여서, 와 이런 사람과도 일을 같이 하게 되는구나하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매니저이긴 했지만 비교적 독립적인 부분을 맡아 일을 했고 매니저에게 관리 감독을 받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만들어 가면서 결과만 보고하는 그런 관계였다. 직제 상 그가 내 매니저였지만 그 회사를 나오기 전에는 그 위 디렉터에게 결과를 직접 보고하는 그런 상황이기도 했다. 

 

 

세번째로 옮겨간 회사는 지금 우리 업계에서 규모로는 1위를 하는 회사이다. 게다가 내가 합류한 팀은 반도체 설계 중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으로 지난 수년간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그 팀이었다. 늘 이 팀에서 일해 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기회가 되어 합류하게 되었다. 마치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너무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아이폰 만드는 팀에 들어간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 팀의 매니저는 특이하게 이란계였는데 이 팀은 특이하게 이란 출신들이 많았다. 이 이란계 매니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는 굉장히 열정적이라며 여러가지 많은 것들을 요구할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 적응하는 동안은 조금 밀어부치는 것들이 있었지만 6개월 정도 적응하고 나니 그 요구 사항들을 따라가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러던 중 전체 팀의 re-organization이 있었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분이 새 매니저가 되셨다. 이 때가 일하면서 제일 편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매니저와 영어로 이것 저것 따져 가면서 미팅하는 것이 늘 부담이었는데 이 분이 매니저가 되시고 나서는 미팅할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100%, 아니 200% 충분히 하고 나올 수 있었고 이게 얼마나 일하기 편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쭉 갔더라면 그 팀에서의 생활이 내내 행복했을텐데 이 분께서 다른 팀으로 옮겨 가게 되시면서 팀 내의 제일 시니어였던 다른 친구가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이 친구는 중국계였는데 매니저가 되고 나서 나와 첫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는 나에게 너가 어떻게 일하는지 옆에서 계속 보아 왔기 때문에 너의 일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자기가 더 관심 있는 건 일 외적인 것들, 연봉이나 승진 등등 프로젝트 이외에 대해서 자기가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매니저로써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 이외의 것에서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 참 특이했고 내가 나중에 매니저가 되었을 때 이 친구의 태도를 많이 참고 했었다.

 

 

이 팀은 나의 꿈의 팀이었기 때문에 계속 이 회사, 이 팀에 남아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회사로 옮겨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게 네번째로 옮겨간 회사의 새로운 팀장은 인도계 친구였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유능했는데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인도계 사람들 특유의 말로만 앞선다거나 남을 무시하는 태도는 한번도 못 보았고 내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몇년 후 이 친구가 공부를 더 하겠다고 대학원에 가는 바람에 예전과 마찬가지로 팀에서 시니어였던 일본계 친구가 매니저가 되었는데 상당히 똑똑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1년쯤 지나고 나서 Austin/TX로 옮겨 오게 되면서 새로운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어떤 매니저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니 난 참으로 매니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무작정 쪼아만 대는 그런 매니저도 없었고, 엔지니어적인 그리고 테크니컬한 지식 없이 그저 말로만 나서는 매니저가 아니라 늘 테크니컬하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런 매니저들 하고만 일을 해 왔다. 그리고 비교적 그들로부터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performance review도 늘 좋았다. 생각하지 않게 갑자기 매니저가 되었을 때에도 지금까지의 매니저였던 그 친구들을 되돌이켜 보며 좋았던 점들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직장에서 매니저와 나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 매니저가 나의 모든 생사 여탈권과 성과에 대한 결정권을 100%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나는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 의외로 자기 매니저와 잘 맞지 않아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이직을 하거나 다른 팀으로 옮겨 가게 된다. 다른 팀으로 옮겨 가는데 있어서도 다른 팀 매니저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를 지금 매니저에게 물어 보게 되니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다른 팀으로 옮겨가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고 결국 이직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종종 자기는 너무 안 맞는 매니저만 만난다며 그것 때문에 몇번을 이직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매니저 문제 때문에 이직을 했다면 이건 매니저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본인이 매니저와 잘 안 맞는다고 느낀다면 그건 매니저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해야 할 일을 함께 이야기 하고 이렇게 하자고 결정을 했는데 자기 멋대로 일을 진행한다거나 혹은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실수 한다거나, 문제 접근하는 방법을 여러 번 알려 주었는데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매니저도 결국엔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낮게 내릴 수 밖에 없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실력이기 때문이다.

 

 

Austin/TX로 옮겨 오게 되면서 차지하게 된 창가 자리. 가장 안쪽이라서 비교적 조용하고 집중 할 수 있는 자리라 참 맘에 든다. 매니저가 되고 나서 내 보스가 cubicle이 아닌 office로 옮겨 주려고 했으나 남은 office가 없어 이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