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승진 / 퇴사 / layoff
승진(promotion)을 하게 되면 title이 바뀌고 연봉 레벨이 바뀌게 된다. 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한국에서의 승진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첫번째는 연차가 되었다고 자동으로 승진 대상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연차가 되었는데도 승진이 안 되었다고 퇴사의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의 직급까지는 3-4년 정도 현 직급에서 중/상 이상의 리뷰를 받으면 대체로 매니저들이 승진 대상으로 삼고 그 윗선에 추천을 한다. 이 경우에는 윗선 디렉터 급에서 각 매니저들에게 올라온 대상자를 보고 누구를 이번에 승진 시킬지 심사하게 된다. 매년 승진시킬 수 있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추천 대상 모두를 승진 시킬 수는 없어 보통 미리 매니저들과 이야기 해서 대상자를 추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직급 내에서는 디렉터 급의 승인으로 승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직급 이상이 되면, 보통 시니어급이라고 불리우는 직급이 되면 단순히 매니저의 추천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승진 심사를 받게 된다. 회사마다 절차는 다른데 이전 회사에서는 심사 위원회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서 이 사람이 시니어급 이상으로 승진할 능력을 보여 주었는지를 그동안의 실적을 통해서 심사를 했고, 지금 회사에서는 적어도 시니어/매니저 혹은 디렉터 급 사람들의 추천서를 받아 디렉터에게 제출하면 디렉터가 이를 취합해 더 윗선에 승진 추천을 하게 된다. 디렉터 선에서 승진 시킬만 하다고 판단해서 승진 추천을 하는 것이므로 그 윗선의 결제자는 예산이 허락하는 한 대부분 승인해 준다. 추천서는 대상자가 추천서를 써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자기 디렉터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대상자는 어떤 내용이 추천서에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승진 할만 하다고 생각해서 추천서들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충분하지 않으면 디렉터도 자기 윗선에 승진 추천을 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시니어 급 직급을 받은 후에 3-4년이 지나도 그냥 보통 정도의 실력만 보여 준다면 그 시니어 직급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승진 못했으면 나가야지라는 무언의 압력이 뚜렷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계속 승진을 하지 못하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이미 은퇴 준비가 거의 끝난 분들이 승진에 미련 없이 시니어 직급으로 더 이상 키보드 칠 기운이 없을 때까지 계시는 분들도 보았다.
두번째 다른 점은 승진이 100% 연봉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한번 말했듯이 연봉은 개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에 윗 직급으로 승진했다고 해서 그 직급 평균값으로 연봉이 바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현재 받고 있는 연봉 기준으로 승진에 따른 연봉이 조정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개인별로 연봉 수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 하이닉스에 다니다가 퇴사를 하려고 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퇴사 하기 위한 이사님의 사인을 받는 일이었다. 이사님의 사인을 해 주지 않으면 퇴사가 안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때는 퇴사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미국 회사에서의 퇴사는 소위 말하는 at-will 이다. 즉, 내가 퇴사 하고 싶으면 매니저에게 나간다고 letter of resignation 하나 쓰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letter of resignation 하나 쓰고 오후에 그만 두는 식은 아니다. 물론 가능하기도 한데 대부분은 two weeks notice라는 암묵적인 룰을 지킨다. 즉, 오늘 매니저에게 나 2주 후에 그만 둔다고 알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물론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고 매니저가 back up plan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two weeks notice를 주고는 그날부터 휴가 내고 2주 후에 인사팀과 퇴직 절차만 밟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회사에서 퇴직할 때, 사실 상 이직을 할 때 제일 조심하라는 뜻으로 하는 "do not burn the bridge" 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 매니저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나오라는 뜻이다. 사실 몇년 한 분야에서 일하다보면 결국 그 분야 사람들과 계속 부닥치게 되고 떠나는 사람들과, 특히 지금 매니저와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몇년 후 어디서 또 어떻게 만나서 같이 일하게 될지 모르는데 칼 같이 인연 끊고 떠나면 결국엔 나중엔 껄끄러운 관계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떠나는 퇴직/이직이 자유인 것처럼 회사에서 나를 내보는 것도 at-will 이다. 한국에서는 퇴사가 어려웠던 것처럼 직원을 내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회사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layoff, 즉 해고이다. 문제는 이걸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회사 다니면서 layoff를 두번 보았는데 한번은 우리 팀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 잘 먹고 들어 왔는데 내 위 디렉터가 나를 부르더니 그 친구를 내보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잠시 후 그 친구가 디렉터 방으로 불려 들어 갔고 30분쯤 지나고 나서 그 친구는 바로 자기 자리로 가서 조용히 짐 정리하더니 바로 집으로 돌아 갔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이 경우는 layoff는 아니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고 매니저에게 아침에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2-3주 정도 후에 떠난다고 매니저와 조율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직을 하기로 한 회사가 경쟁 회사였던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디렉터가 오더니 경쟁 회사로 가기 때문에 지금 바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박스에 짐을 챙겨 나오게 되었고 주변 사람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도 못하고 쫓겨나듯이 나가게 되었다.
Layoff가 있는 경우 해당 매니저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 더더군다나 당사자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layoff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2008년 11월 해고 통지를 받은 한 사람이 오후에 CEO와 HR 담당자와 면담을 요구하며 찾아와 다같이 만난 자리에서 바로 그들을 총으로 쏴서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SiPort_shooting
당시 이 회사는 내가 일하던 회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종종 점심 먹고 산책 삼아 걷던 길목 위에 있었다. 사건이 막 터졌을 때는 몰랐고 퇴근하려고 나섰더니 머리 위에서 경찰 헬기가 떠다니고 주변에 경찰차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집에 와 뉴스를 찾아 보고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신문에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장 크게 준다고 절대 금요일에는 layoff 하지 말라고 기사가 났었다.
본인에게는 조금은 갑작스러운 일이라 layoff를 당하게 되면 당장은 당황스럽고 난감한 경우가 많은데 보통 layoff를 하는 경우 Severance package라고 해서 해고를 하는 대신 3-6개월 동안은 월급과 보험을 그대로 지원한다든가 하는 지원책을 주게 된다. 내가 본 사람들은 그래도 엔지니어들이라서 그런지 보통 그 기간동안 대부분 새 자리를 찾아 옮기곤 한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걸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do not burn the bridge"가 더 더욱 중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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