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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새 수필

Wishlist

by 피터K 2021. 12. 22.

우리 부모님 세대가 다 그러하듯이 우리가 어릴 때에는 모든 것이 넉넉하지 않았고 가지고 싶었던 것들은 많았지만 그걸 부모님께 마음대로 말할 수가 없었고 설사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부모님께서 쉽사리 사 주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게 $1000이 넘어간다거나 하는 근사한 랩탑이나 최고급 테블릿이 아니라 소위 메이커 신발이라든가 메이커 옷이 전부였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것 자체가 사치였던 시기였다. 

 

당시에 비교적 쉽게 사 신던 운동화는 "까발로"라는 브랜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좀 잘 산다는 집 아이들은 "프로 스펙스"가 대세였고, 정말 잘 산다는 아이들은 "나이키"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이키"는 넘사벽 최고급 명품이었다. 주변 친구 중에 정말 부자집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나이키"를 신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이키"까지는 아니더라도 "프로 스펙스"가 그래도 내가 꿈꾸어 볼 수 있었던 고급 운동화였고,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언젠가 "프로 스펙스" 신발을 받아 들었을 때 너무 너무 행복했던 추억은 남아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월급이 통장에 들어 오기 시작했을 때 운동화를 산다고 반포에 있던 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다. 다른 여러 종류 운동화들이 있었는데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나이키". 어떻게 보면 스타일과 참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거기서 빨간색 "나이키", 그것도 농구화를 집어 들었다. 와이프가 왜 하필... 이란 눈치를 주었지만 어릴 때 정말 꿈만 꾸던 신발 브랜드, "나이키"를 직접 내가 번 돈으로 샀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종종 그런 물건들이 있다. 마음에 너무 들어서 정말 가지고 싶은 것들.

어떤 것들은 크게 비싼 것이 아니라 갑자기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바로 사 버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것들은 조금 가격이 있어서 망설이다 망설이다 세일하는지 이곳저곳 계속 찾아 보기도 하다가, 괜히 용서가 허락보다는 쉽다든데라는 이상한 구절도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다가 종종 와이프에게 듣는 한소리, "당신은 참 알뜰한데 어쩌다 한번씩 큰 사고를 친단 말이야...."

 

크다면 큰 사고를 친 건 집에 멀쩡히 잘 나오는 TV가 있는데도 더 나은 화질로 보겠다고 새로운 OLED TV를 산다거나 $1200 넘게 들여 사운드바 시스템을 산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지만 어떨 때는 $100 정도도 안 되는 mechanical keyboard 사야되나 말아야 되나 몇 주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고를 치던 중에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막상 샀을 때보다는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여기 저기 가격을 알아 보고 그 리뷰들을 알아 보고 다닐 때, 설거지할 때마다 유튜브 틀어 놓으면서 unboxing/review를 보고 있을 때, 그 때가 막상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보다 설레고 두근두근한다는 것이다. 

큰 아이가 엄마에게 아빠가 다음에 뭘 저지를지 궁금하면 유튜브로 지금 무슨 리뷰를 보고 있는지 알아 보면 된다고 귀뜸을 할만큼 때론 살까 말까, 여기가 더 쌀까, 이건 무슨 기능과 특징이 있고 비슷한 저것과는 어떻게 다르지, 그렇게 막 선물 박스를 풀기 전에 기대감을 즐긴다고나 할까.

 

그래서 어떨 때는 막상 구매 버튼을 누르고 아니면 직접 가서 사 가지고 돌아 왔을 때 너무 너무 사고 싶어 안달하던 때와는 달리 그냥 그대로 박스 채로 한동안 그대로 둘  때도 있다. 사고 싶어 두근두근하던 마음이 막상 박스를 열고 나면 내 손에 이제 있어라는 기쁨보다는 아 이제 바라던거 하나가 wishlist에서 없어졌네라는 허전함이 싫어서일까.

 

어릴 때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그 때는 그거 하나면 다 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용서도 아니고 허락도 아닌 선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은 조금만 보태면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100 짜리 키보드 하나에 안절부절했던 이유는 그 때 그 하나면 다 될 것 같던 조바심에 마음 조렸던 그 아련함을 느끼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 손에 쥐지 않았기 때문에 설렐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더 남아 내 wishlist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어쩌면 그런 바람만 가지고 정작 사지는 않을 것들을 종종 wishlist에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남아 있는 한 아직도 내 마음은 두근두근 뛸 수 있는 설렘에 어려질 수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 땐 그거 하나 가지면 정말 행복할 것 같던 그런 기분을 찾아서...

 

 

스스로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크게 질러 본 LEGO. 그런데 아직도 안 뜯고 방 한켠 잘 보이는 곳에 남겨 두고 있다.  큰 사이즈의 LEGO 정말 만들어 보고 싶어서 두근두근 거렸는데 막상 박스를 뜯고 나면 그런 설렘이 사라질까봐. 조만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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