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주해 온 건 2004년 11월이니 2021년 기준으로는 벌써 17년차에 들어간다. 돌이켜 보면 그 긴 시간이 아차하는 순간에 지나갔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긴 시간동안 한국은 네번 다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2-3년마다 한번씩 갔었는데 그 때마다 아이가 하나씩 늘어나 막내가 태어나 돌이었던 2011년에는 다섯 식구가 한번에 다녀 오려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큰 애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간 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스틴으로 이사를 온 후 큰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나서야 여유가 좀 생겼고 그렇게 8년만인 지난 2019년 여름에 한국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거의 그 10년에 가까운 8년만에 한국에 나가게 되니 설레는 마음도 있었고 또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라는 기대가 되기도 했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보게 된 변화는 인천공항 제2 터미널. 그리고 일산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보게 된 새로운 인터체인지 등이 있었다. 그렇게 8년만의 한국 나들이가 시작이 되었다.
8년만에 한국을 가게 되니 찾아 뵈어야 할 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급적 시간을 내어서 아이들에게 한국이 어떠한 곳인지 많이 보여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서, 그런데 그것도 "영국남자"라는 영국 출신의 유튜버가 소개하는 하는 영상을 통해서 한국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많기도 하다. 뭔가 대단하다고 소개되는 것들을 막상 가서 보고 나면 에게... 라고 하는 것도 있고 스치며 지나가며 소개되는 어떤 것들은 우와... 하게 되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은 주로 처가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처가는 용인에 있다. 그러다보니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편도 두시간 이상이 걸리게 되어 이번 한국 방문 동안엔 일부러 안국동 한옥 스테이를 찾아 2박 3일동안 서울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나도 미국가기 전 한국에 살 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홍대입구, N서울타워로 이름이 바뀐 남산타워, 청계천 등을 처음 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익숙하게 다니던 종로 거리, 명동성당, KOEX를 다니며 예전에 여기에 뭐가 있었는데 여기는 이렇게 바뀌었네 하며 안사람과 옛날 데이트 하던 시절, 미국 가기 전 2-3살이던 첫째 데리고 다니던 추억도 떠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와 안사람, 그리고 아이들과의 대화, "엄마 아빠 때는 말이야....".
아이들도 인터넷으로만 보던 홍대입구, 인사동 골목들, 그리고 소위 말만 들었던 강남 스타일의 강남역을 직접 보며 묘한 표정을 떠올리곤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보니 한국은 모국이라는 생각보다는 엄마 아빠의 고향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고 그래서 관광지에 온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았다. 마치 부모님 고향인 부산이나 광주에 내려 가게 되면 그곳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그냥 놀러온 동네가 되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 잠시 따로 시간을 내서 중학생, 고등학생 때 살았던, 그리고 졸업 후 서울에 올라 왔을 때 살았던 사당동 사거리에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과의 거의 10년만의 만남도 반가웠지만 사당동의 약속 장소에 찾아가면서 10대 후반에 매일 다니던 골목길을 찾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여전히 그 때는 이랬는데... 분명히 지금이 더 번화가가 되었고 발전했다고 해야 하는데 왜 그 때 그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그 길이 거기서 왜 그리 그리웠는지.
그렇게 한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말을 하고 한국말로 된 안내판들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게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묘한 어색함도 존재한다. 뭐랄까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어울리지 못하고 낯설다고나 할까. 특히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 모습이 사라진거 같아서 아쉽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번잡함 보다는 그래도 보다 아날로그였던 것 같던 시절이 겹쳐지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아이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 가 나오게 된다.
낯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예전의 익숙함을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싶게.
그렇게 몇번 한국을 다녀 오면서 점점 더 낯섬이 커져가서 그런지, 그리고 이젠 한국에 가더라도 양가 부모님들도 서울에 사시다가 각각 일산, 용인으로 이사를 가셔서 나와 안사람이 학생 때 지내던 집이 아닌 새로운 부모님 댁에 가게 되니 한국을 간다는 것이 고향에 간다는 느낌보다는 여행지에 간다는 느낌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종종 누군가에게, 특히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한국 다시 오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그리운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향수병이 있는 건 아닌지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말 나한테 그런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자주가는 workingus.com 에서 이 향수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았다. 누구는 20년을 미국에 살았음에도 늘 한국이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과 2-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별로 돌아가고 싶거나 그립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댓글들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 누군가의 댓글 하나가 잠시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향수병은 한국을 그리워하는게 아니라 한국에서 살았던 우리의 ‘젋은 날’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젊은 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지요.. 지금 현재에 미래를 포함해서 필요한 모든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그래서 늘 실패합니다."
그래서였나 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내가 찾던 것들은 항상 과거의 나의 모습 젊은 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2021년에 살고 있음에도 자꾸만 2004년의 내 모습을 찾았는지도, 그래서 낯설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그 모습을 자꾸만 기억하고 싶은게 향수병이라면 나도 향수병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20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게 멋진 모습이었든지, 혹은 후회되는 모습이었든지 상관없이.
그리고 잠시 그 향수병에 젖어 본다.
그래 그 때 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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