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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새 수필

박카스

by 피터K 2021. 12. 19.

한국 사람들에게 박카스라고 말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박카스라는 음료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에너지 드링크, 피로 회복제의 원조인데 사실 박카스의 영어인 Bacchus는 고대 로마의 농업과 포도주의 신으로 주피터의 아들이다. 고대 로마 신들은 거의 대부분 고대 그리스의 신에서 따왔으므로 박카스의 원조는 Dionysus (흔히 디오니시스)로 제우스의 아들인 셈이다. 최고의 신 제우스/주피터의 아들이므로 신들의 랭킹으로 봐서는 참 높은 자리인데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피로회복제 이름이고 구글에서 한글로 박카스라고 치면 이 피로회복제에 관한 검색 결과만 몇페이지가 뜬다. 그만큼 한국에서 이 박카스 모르는 사람과 안 마셔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초등학교(국민학교라고 썼다가 너무 구세대인걸 티내는것 같아서...)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 학생들의 부모님이 오셔서 한 시간쯤 강연 비슷한 것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 2-3학년 학생들 앞에서 해 줄 말이 딱히 뭐가 있을거며 그리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회사를 빠지고 애들 학교에 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어머님들이 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고 가시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인가 우리 어머니가 오시게 되셨는데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을 하나 들고 오셔셔 반 친구들에게 읽어 주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학부모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과 쉬는 시간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시는데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수고 하셨다며 작은 병을 하나 건네셨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어머니가 반쯤 마시고 남기신 그 병의 내용물을 한모금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때가 내가 처음으로 박카스라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그런데 그 때의 기억이 참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나에게 그 박카스 맛이라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 그렇게 달고 맛있는 음료는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초등학교 2-3학년이었던 내가 그게 무슨 이름의 음료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미처 거기에 붙어 있는 라벨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고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병에 들은 음료라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 때의 박카스 맛이 정말 인상적이었는지 어떻게든 그 맛을 다시 보고 싶었던 나는 그 때부터 그런 크기의 병을 볼 때마다 한번씩 맛을 보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런 모양의 병에 들은 음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약들이 정말 수없이 많았다는데 있었다. 쌍화탕, 활명수부터 다양한 감기약과 한약 성분의 약들이 딱 박카스 크기의 병에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모양의 병 음료, 아니 병약들을 보면 한번씩 맛을 보면서 정말 세상 쓴 맛은 다 본 것 같았다. 정말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았는데도 아무 곳에서도 그 기억 속의 그 맛을 찾아 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지쳐서(?) 언젠가 부터 그 맛을 찾으려는 내 여정과 열정은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져 간 것 같다.

 

그리고 그 맛을 다시 찾아낸 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생때 쯤으로 기억된다. 성당에서 봉사를 하고 받아든 음료수에서 그 맛을 다시 발견하고 그제서야 그게 박카스라는 것을 알게 된 걸로 기억한다. 사실 중고등학생 때 박카스를 마셔 볼 기회는 거의 없으니 그게 대학생때라는 어렴풋한 기억이 맞으리라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간에 드디어 그 맛을 찾고 이름을 알게 된 후 종종 십여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한모금씩, 하나씩 마셔 보게 되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찾던 것을 결국 찾게 되고 나면 관심이 뚝 끊어지듯 그렇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한국마트에 다니다 보니 $100 넘게 물건을 사게 되면 사은품으로 주는 것 중에 그 박카스 한 박스가 있었다. 어찌어찌 한 두번 박카스 한 박스를 집어 들게 되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마시게 될 때마다 항상 그 초등학교 2-3학년 때의 일과 수없이 시도해 보았던 박카스 찾기의 추억이 떠 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게 주위에 그렇게 흔한데도 그렇게 찾을 수 없었다는게 우습기도 했다. 그래 이거야 하면서 그 쓰디쓴 쌍화탕을 들이켰던 씁슬한 기억도 불현듯 떠 오르면서.

 

그러고 보면 주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해 비슷한 것들 찾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그 찾는 것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알아 보지 못하고, 아니야 이것도 아닐꺼야 하면서 시도조차도 안 해 본 것들도 있지 않을까.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 길을 나섰던 아이들이 그 파랑새를 집에서 찾았던 것처럼.

 

내가 제일 찾고 싶어하던 것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찾아주기만은 기다리면서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고 있을련지도. 손을 눈썹 위에 두고 멀리 바라보며 저 멀리 있을 어디론가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종종 손을 내리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현재의 조각 하나를 집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는 것이 바로 옆에 있는 나 일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 넘어진 사람, 혹은 어려울 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옆에 난 늘 있었을테니 말이다. 

 

이름을 몰라 그렇게 찾아 헤매던 고대 로마 신 한 분은 언제나 주변에 그렇게도 가까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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