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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새 수필

IRS에서 온 편지

by 피터K 2022. 1. 31.

이사를 하게 되면 우체국에서 우편물 전달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기존 주소로 오는 우편물을 새 주소로 1년간 전해주는 (forwarding) 서비스이다. 고칠 수 있는 주소의 업데이트는 미리 해 두지만 종종 잊어 버리고 있었던 주소 업데이트가 있다거나 하면 이 서비스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그 날 그 날 무슨 우편물이 도착할지 스캔해서 이메일로 보내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 오늘 무슨 우편물이 도착할지 알 수가 있다.

 

어느 날인가 무심코 이메일로 와 있는 오늘 무슨 우편물이 도착하는지 알려 주는 메일을 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IRS에서 오는 편지였다. IRS, Internal Revenue Service. 한국으로 말하자면 국세청이다.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 두가지가 바로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다. 사실 죽고 나서도 세금을 내야 할 경우도 있으니 세금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IRS에서 무슨 연락이 온다고 하는 것은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내용물은 물론 알 수가 없고 다만 편지의 앞면만 스캔해서 이메일로 보내 주는 것이니 IRS에서 보냈다는 것만 알 수가 있다.

 

아침에 무심코 열어본 이메일 하나 때문에, 그리고 그 우편물이 IRS에서 온 우편물이라는 것을 안 순간 하루 종일 도대체 이게 무슨 우편물일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며 보냈다.

혹시라도 세금 감사 들어 온다는 이메일일까, 아니면 지난 번 세금 보고 했을 때 뭔가 오류가 있어서 refund가 있다는 이야기 일까. 아니면 오히려 세금 덜 냈으니 더 내라는 이야기 일까. 만일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이 돈을 어디서 끌어 와야 하나, 지난 번에 조금 남겨서 만들어 놓은 계좌에서 가지고 와야 하나, 그리고 그게 모자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치 부모님에게 혼나기 전에, 아니면 갑자기 메니저나 그 위의 메니저가 갑자기 미팅 하자고 불렀을 때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고 내가 잘 못한게 뭐가 있을까 괜시리 지난 하루, 일주일, 혹은 한달 사이의 잘 못 했던 일들을 모두 다 떠 올리면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도대체 왜 IRS에서 나한테 우편물을 보냈을까 생각하며 하루 종일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퇴근하는 길에 우편함에 들려 그 문제의 IRS 우편물을 집어 들고 집으로 바로 와서 허겁지겁 그 우편물을 열었다. 그 우편물은 큰 아이 정부 장학금 (FAFSA) 신청 할 때 내 작년 세금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그것을 신청할 때 IRS에서 바로 정보를 가져 갈 수 있게 설정해서 IRS에서 안내 우편물이 온 것이다. 너 이런 거 신청해서 FAFSA에 네 세금 보고서 넘겨 주었다고. 말하자면 신분 도용 같은 것을 막기 위해 이런 activity가 있었으니 확인하려는 것이고 만일 네가 이런 신청 안 했으면 신분 도용의 가능성이 있으니 알려 달라는 그런 안내 우편물이었다.

 

그제서야 내용을 확인하고 별의별 고민, 상상을 하던 것들을 다 잊게 되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살다보면 참 아무 것도 아닌데 별의별 걱정은 다 하며 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어디선가 읽은 내용인데 나이든 어르신들에게 물어 본 말 중에 살면서 제일 후회가 되는게 뭐냐고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일어 날지 어떨지 잘 모르면서 이렇게 되면 어떻하지 하면서 고민, 아니면 상상을 하면서 마음 조리며 살아 봐야 정말 그 일이 생길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네이버 연애/결혼 이야기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어떤 이가 처음 데이트 하게 되어 너무 긴장한 탓에 실수 하지 않으려고 어디서 무얼 하고 어디서 무얼 먹고 동선과 시간, 무슨 말을 하지 다 계획하고 예행 연습까지도 했다는데 막상 만나서 무얼 먹을까라고 물어 본 말에 아무 거나 상관 없다는 말 한마디에 당황에서 그 다음부터 머리 속에 상상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다 엉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래,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계획한대로 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자세하게 일정을 짜 보아야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 스케줄과 계획은 엉망이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빠지는게 늘 일어 나는게 일생인 것 같다. 스무살 때 난 내가 이렇게 미국와서 살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해 봤고, 처음 San Jose/CA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오늘 날 이렇게 TX 한복판에서 살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고 내 계획에도 있지 않았다. 물론 20대 초반, 난 결혼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것도 상상 못했지만...

 

너무 계획하지 말자. 그리고 그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살짝 돌아가거나 쉬었다 가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 다만 계획대로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하자.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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