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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미국 취업 이야기

미국 취업 도전기 - 셋

by 피터K 2021. 10. 31.

첫번째 시도가 참 쉽게 되어서 그런지 두번째 세번째도 비교적 쉬울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어쩌면 첫번째가 비정상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것 같다.

 

 

우리 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 언젠가 꼭 여기서 일해 봐야지 하는 다짐을 가지려고 출장 왔을 때 가서 사진을 찍어 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 이 회사를 2011년부터 3년간 다녔다.

 

워낙 처음 시도가 잘 이루어져서 그런지 다른 기회는 별로 생각도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또 다른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시작했어야 했다.

 

찾아 오는 vendor들과 또 인사하고 친분을 쌓고 또 그렇게 알아 오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고

 

미국 본사로 취업하고 싶은데 기회가 있느냐고 이메일을 또 보내 보는 등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당시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원래 나에게 offer를 주었던 회사가 합병되었듯이 

 

그 즈음해서 이 업계, EDA 업계에서 자주 합병 관련 소식이 들려 오고 있었다. 두 회사가 합병을 하면

 

당연히 중복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아주 많은 개발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회사를

 

찾아 옮겨 가거나 새로운 회사를 만들거나 하는 분위기로 옮겨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현지에서

 

충분한 개발 엔지니어들이 넘쳐 났고 외국에서 구지 새로운 엔지니어를 찾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런 합병이 자꾸 일어난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EDA 업계가 조정에 시기로 접어

 

들면서 큰 회사 위주로 몸집 불리기로 옮겨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치 수많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있다가 결국 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 이 덩치 큰 세 회사로 재편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 때는 시야가 좁아서 그런 트렌드로 옮겨 가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상황들이 겹치다 보니 두번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연락하던 거의 모든 본사 

 

사람들도 내 이력서, resume를 전달해 주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지만 아무래도 나한테까지 기회가 

 

그리 쉽게 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2003년 3월 병역도 끝나서 이제 언제든 옮길 준비가 되었지만 정작 옮길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그렇게 12월이 다가오자 정말 내가 미국 취업을 할 수는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즈음 하이닉스에서 같이 일하던 실험실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LG 반도체 시절부터 EDA를 개발하던 사람들이 IMF 때 대거 미국으로 건너 갔는데 그 중에 몇 분들이

 

벤쳐 회사를 차렸고 거기서 개발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 분 중에 한 분이 한국에

 

나와 있는데 관심이 있냐고 물어 왔다. 일단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그 분을 만나기로 했다. 

 

시내에서 만난 그 분으로부터 그 회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재 실리콘 벨리의 분위기 등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혹시 함께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 오셨다. 일단 기회가 오면 가야지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을 했었음에도 이 제의에 상당히 주저했던 이유는 분야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미국 취업을 원한다고 해도 전혀 모르는 분야에 가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맨 처음 나에게 offer를 주었던 회사는 내가 계속 일하던 분야와 관련이 있었고

 

그 매니저도 그 해당 EDA solution을 개발하는 매니저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한국계 벤쳐 회사는 같은 EDA 분야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세부 분야였다.

 

비유하자면 같은 삼성전자인데 난 핸드폰 설계하고 개발하는 분야에 전공자인데 이 회사는

 

TV 설계, 개발하는 분야라고나 할까. 

 

 

그 분도 내게 설명하시기를 어짜피 이 분야를 100% 아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으니 자기네는

 

EDA 개발 경험이 있고 똑똑한 사람을 뽑아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찾는거라며

 

분야가 다르다고 너무 부담같지 말라고 이야기 해 주셨다.

 

 

그렇지만 세부 전공 분야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 다른 이유는 그럼 offer 조건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정확한 연봉 내용을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서 두리뭉실하게만 설명해 주는 것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군가를 속이면서 데려다가 혹사 시킬 그런 회사가

 

아니라는 건 이 분을 아는 다른 LG 반도체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알 수는 있었지만 뭔가 정확하지 않은

 

내용과 너무 작은 벤쳐 회사라는 점 등이 나를 많이 망설이게 만들었다.

 

 

결국 와이프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선배들과 여러 조언도 들어 보고 한 결정은 일단 건너가

 

시작해 보면 되겠지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계속 기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일단 건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거기서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결심을 굳히고 미국으로 되돌아 가신 그 분과 다시 이야기 하고 그럼 진행을 해 보자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취업비자, 즉 H1B의 quota/cap이 모두 차 더 이상 그 회계연도에는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다음 번 회계연도의 취업비자는 2004년 10월부터 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상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고민만 많이 하다가 결국 두번째 도전도 그렇게 끝나 버렸다.

 

 

당시에는 좀 더 빨리 결정을 할 걸이라는 생각 반, 아니야 차라리 잘 되었어라는 생각 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된 것이 잘 된게 아닐까싶다. 사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없었고 그 회사가

 

그 후 몇년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걸 보면, 그리고 그 기회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가

 

찾아 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벤처 회사에 갔더라면 한동안 많은 고생을 하고 참 어렵게

 

일이 풀려가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렇게 2004년 초 겨울은 여전히 추운 계절로 아무런 기약도 없이 끝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