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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미국 취업 이야기

미국 취업 도전기 - 하나

by 피터K 2021. 10. 24.

2003년 미국 출장 왔을 때 사용한 렌트카. 이런 Mid-size SUV 모는게 늘 꿈이었는데 몇년 전에 꿈을 이루었다. 나도 저렇게 늘씬 할 때가 있긴 있었구나.

 

당시 다니던 회사, 몇년 후 하이닉스로 바뀌는 현대전자가 사실 그렇게 나쁜 직장은 아니었다.

 

박사 학위가 있어 남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과장급인 선임 연구원으로 시작을 한데다가 소위 말하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회사 내에서 더 이상 내 전공을 살릴 길이 없고 그대로 문서 일만 하는 관리직이 되거나

 

잘 풀리더라도 삼성으로 이직해서 몇년 더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역시 그대로 관리직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다지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너무 뻔하게 보였다. 

 

 

그러던 중 2001년 DAC를 방문하고 나서 좀 더 큰 세상을 본 것 같았고 미국에서는 EDA라는 내 전공과

 

꼭 맞는 산업체 분야도 있었으니 한번쯤 도전해 볼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이 서자마자 영어 공부와 회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맥, 얼굴 알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미국 취업을 바로 알아 볼 수 가 없었다. 2001년 당시 박사 과정 특례를 통해

 

병역을 대신 하고 있었고 그 병역 특례는 2003년 3월에 끝나므로 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하이닉스에서

 

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많은 하이닉스 EDA 개발자들이 EDA 벤처 회사를 차리고 퇴사를 해서 나갔을 때에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이 벤처 회사로 나간 사람들은 회사에 들어 오기 전 박사 과정 때 산학 프로젝트를 통해

 

LG 반도체 시절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병역 특례가 끝나는 때까지 1년 넘게 남았으로 미국 취업을 준비하면서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했다.

 

영어 회화 학원도 당장 시작하는 레벨이 낮았으므로 매달 매달 꾸준히 해서 레벨을 높일 필요가 있었고

 

매일 매일 새로운 vendor들이 방문하는게 아니므로 만나는 사람마다 인연을 맺고 연락을 하고 가끔씩

 

나도 미국으로 취업을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하며 기회를 엿볼 필요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1년 이상을 준비하면서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결국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DAC 이후에 어떻게든 미국으로 바로 취업해 보려고 허겁지겁 움직였다면 그 당시 영어 실력으로는

 

인터뷰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vendor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한번씩 자기네 EDA solution을 소개하러 올 때마다

 

본사 R&D 혹은 마케팅 분들과 함께 미팅을 하러 오셨고 그럴 때마다 그 본사 분들이랑 알고 연락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아마 당시에 하이닉스에 들어 오시는 거의 모든 vendor 분들은

 

내가 미국 취업을 하려고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 싶다. 

 

 

그러던 중 한 회사의 solution을 evaluation, 즉 우리 회사에서 쓸 만한지 성능은 어떤지 등등 검증하는 과정을

 

맡게 되었는데 비교적 자세한 evaluation report를 작성했다. 그것도 영어로. 그 report는 vendor 분을 통해

 

미국 본사에까지 전달이 되었고 그 evaluation report가 본사 사람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 vendor 분을 통해 미국 본사에서도 내가 미국으로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해 DAC는 2002년 6월 New Orleans에서 열렸는데 그 미국 회사로부터 뜻하지 않은 초대를 받게 되었다.

 

자기네가 비행기/호텔/체류 비용을 전부 제공해 줄테니 New Orleans로 와서 자기네 매니저와

 

CEO를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상 와서 인터뷰 보라는 것이었는데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고

 

부장님/이사님께는 작년에 가 보니 너무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올해는 휴가를 내고 자비로 가겠다는 핑게를

 

대고 New Orleans로 날아 갔다. 그 쪽에서 초청을 했지만 다른 제약 사항은 없었고 DAC 기간 동안

 

자유롭게 다른 회사의 booth도 다니면서 DAC에 참석했다. 그리고 약속된 하루 그 회사의 booth로 찾아가

 

R&D 매니저와 2-3시간 정도 인터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미팅을 가졌다. 보통 인터뷰라면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지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관련 지식이 있는지, 뽑으면 와서 기대만큼 일을 잘 할 것 같은지

 

확인하는 자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식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EDA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 보는 그런 식의 대화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미팅, 혹은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다음 날 그 회사 CEO와 아침 식사 약속을 잡아 주었다. 

 

처음에 그 회사 CEO와 아침 식사 약속을 잡았다고 했을 때 솔직히 아니 내가 뭐라고 CEO까지 만나는 거지,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거지 하고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그 다음 날 호텔 식당에서 만나서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식사 시간 내내 어떤 질문보다는 자기네 회사의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에 대한 설명만 내내 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잠시 올라 가려는데 예전 한국에서 나한테 참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다며 칭찬해 주던

 

그 CEO를 식당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회사 사람들도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오후 그 회사 전시 booth/suite에 가서 그 회사 사람들과 커피 나누어 마시며 한시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나오기도 했다. 이 CEO와 이 회사 사람들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DAC에서 돌아 오기 전 다시 한번 R&D 매니저를 그 회사 booth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기를 미국 취업을 했으면

 

좋겠고 내년 3월에 특례가 끝나기 때문에 그 때 다른 회사로 이직 할 수 있다고 상황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이 매니저에게 이메일이 하나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