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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미국 취업 이야기

미국 취업 도전기 - 둘

by 피터K 2021. 10. 31.

 

 

2002년 12월 초,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을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개인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그 R&D 매니저로부터 이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이제 곧 3월이 되니 네가 곧 이직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 팀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뒤이어 이 정도의 offer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연봉, title (직급) 등등이 적혀있었다.

 

그 이메일을 읽고 잠시 멍했다가 너무 너무 기뻐서 바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1년 넘게 매일 아침 7시에 학원 다니며 영어 공부하고 이래저래 인맥 만들어 보겠다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던 것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나 뿌듯했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반면에 이 메일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다. 

 

첫 직장이라는 현대전자/하이닉스는 사실 상 대학원 때부터 산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찌감치

 

입사가 정해져 있었던 거라 그냥 졸업 후 바로 입사를 하면 되었으니 (사실 신입 사원 연수가 있다고

 

연락이 왔지만 졸업식 때까지 마무리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신입 사원 연수도 참석하지

 

않았다) 직장을 옮긴다는 이직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고 특히나 이렇게 미국 회사로의

 

이직은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offer의 조건, 즉 연봉이나 직급에 관한 것들이 적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할 기준은 아애 없었다. 직급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게 한국처럼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혹은 연구원/주임/선임 같은 식의 직급이 아니라 회사마다 서로 다른

 

직급 이름 (job title) 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게 어느 정도 적당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을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처음 도전한 상황에서 offer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었고 어찌 되었든 첫발을 내 딛으면 또 거기서 더 나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제일 힘든 건 첫단추를 여미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세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제시 받았던 offer 내용은 연봉 $90,000,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 오는 것에 대한 relocation package로 $5,000. 그게 첫 이메일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번의 이메일이 오간 후 최종 결정된 내용은 연봉은 그대로, 하지만 한국에서 옮겨가기 때문에

 

relocation package에 조금 더 더해서 $9,000 까지 지원, 그리고 정착할 때까지 3개월 아파트 지원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이메일로 마무리가 대강 되고 나서 그 매니저로부터 그럼 이제 HR (인사팀)에 정식 offer letter를

 

만들어 달라고 넘기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 매니저는 며칠 내로 자기네 HR로부터 연락이 있을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며칠이 정말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일주일이 넘어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일 후에 그 매니저로부터 이메일이 다시 왔다. 아직 정식 offer letter를

 

받지 못했냐는 연락이었다. 못 받았다고 했더니 자기가 알아 본다고 하고는 곧 연락이 온 것이 자기네가

 

12월 중순부터 Christmas break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HR에서 진행이 되지 않는거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1월 되면 다시 시작할거라고 말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들뜬 그렇지만 진행이 잠시 멈추게 되어 살짝 걱정도 된 그런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03년 1월 2일, 회사로 출근했는데 그 회사의 한국 지사 vendor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기네도 오늘 연락을 받았는데 회사가 더 큰 회사에 합병된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이틀을 더 보냈는데 그 매니저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자기네 회사가 합병되기로 결정이 났고 그래서 모든 offer process가 취소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더 진행이 안 될 것 같다고,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같이 일해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정말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하루가 아니라 며칠은 아무 것도 못 했던 것 같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게 아닐까. 어쩌면 너무 쉽게 일이 풀린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offer를 주기로 했던 그 매니저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나에게 offer를 주려고

 

그랬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첫번째 취업 도전은 쉽게 시작되었다가 아주 쉽게 끝나게 되었다.

 

 

다음 해 2003년 4월, 미국 출장을 갔을 때 그 회사에 찾아가 보았다. 어쩌면 그 때 모든 것이 잘 풀렸다만 그 날 그 시간에 난 저 문을 통해 출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