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 essay ] in KIDS
글 쓴 이(By): peterk
날 짜 (Date): 1994년08월11일(목) 21시19분37초 KDT
제 목(Title): [내 마음의 사전] '자' - 잠과의 전쟁
잠과의 전쟁.
품사 : 동사?
뜻 :
"삐릭, 삐릭, 삐릭"
이녀석이 드디어 울어댄다.
"삐릭, 삐릭, 삐릭"
눈을 뜰 필요도 없이 그저 손끝의 감각으로만 녀석을 찾는다. 빨리
한방 쏴서 조용히 시켜야 할텐데.
"삐릭, 삐릭, 삐..."
휴, 겨우 재웠다. 또 하루의 시작인가....
언제나 아침은 이 작은 괴물녀석과의 싸움부터 시작된다. 녀석은 자신의
온갖 꾀를 다해 날 깨우려고 하고 난 기필코 녀석을 KO시켜 1분이라도
더 단꿈에 빠지려 하니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매일 저녁 자기전에 난
이녀석한테 엄한 명령을 내리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날 꼭 깨워야
한다고. 녀석은 충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려 하지만 난 매일 아침
그 명령을 번복하니, 쫄병치고는 참 악독한 고참밑에 있는 셈이 된다.
더구나 이 녀석은 내 두번째 쫄병이니까.(전에 있던 쫄병은 극구 내게
개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오호통재라..)
한때는 나도 내밑에 2명의 쫄병을 둔 적이 있었다. 하나는 내 머리맡에서
밤새 내 신상을 보호하며 한 녀석은 저 멀리 막사밖에 보초를 세웠다.
그러면 일어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하지만 인간의 Basic Instinct는
얼마나 강하던가.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방법을 바꾸어 보았다.
100명의 단기사병보다 역시 람보 한명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울리는 녀석말고 방을 다 뒤집어 놓아 옆방 친구까지 깨울 수 있는
부하를 구했다. 역시, 람보는 달랐다. 녀석의 기관총소리는 일어나서
끄지 않으면 안 될정도로 우렁찼다.
하지만 사람은 학습의 동물이며 그래서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그것을 단지 2주일만에 검증해 버렸다. 람보가 8시에 울기로
되어 있으면 기가막히게 7시 50분에 눈이 딱 떠진다. 그리고는 먼저 람보에게
총알을 한방쏴서 KO시킨다. 그 다음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다.
이런 식으로 잠과 전쟁(?)을 하다가는 백전백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다른 작전이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작은 뇌에서 시작해
뒷중추를 거쳐 거기 어딘론가 흘러갔다. 짜내고 짜내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일어나야만 하는 동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그 시작으로 내일
내야하는 숙제의 맨 끝문제를 남겨둔채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단기전에는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싫어도 일어나 숙제를 해야만 하니까.
그러나 장기전에 들어가자 웬걸, 나중에는 late 감점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난 휴전을 선포했다. 휴전협정은 단 하나.
절대로 9시 수업은 만들지 않는다!!!!!.
잠이 깨어서도 문제이다. 쫄병이 일러주는 시간을 잠시 보고는 내 회색
뇌세포는 당장 멕가이버가 되어 열심히 계산을 한다. 아침을 건너뛰면
30분을 벌고, 도서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강의실로 돌격하면 5분...
이럴땐 기가 막히게 머리가 회전한다. 내참 이 머리로 왜 '전자회로'는
'C'밖에 안 나왔는지... 계산이 끝나면 아까 꾸던 꿈의 2부를 찍기
시작한다. 아, 1부에서는 그 애와 막 키스를 하려던 장면이었는데.
2부는 더 멋있게....
소위 우리학교에서는 '학기초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아침에 배식율이
갑자기 80%를 넘어서며 도서관은 새벽부터 줄을 섰는지 자리하나 남아있지
않고 8시 수업도 교수님이 늦으실 정도로 열심히 들어간다. 하지만....
그래봐야 '현상'은 '현상'일뿐이다. 꽃망울이 기지개를 펴는 4월이면
우리는 다시 따뜻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운 이불속으로.
이때부터면 아침식사시간은 썰렁해지고 강의실도 잡초가 뒹굴기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었고 내년도 어김없으리라.(이것은 Theorem이 아닌
Corollary이다.) 입학식때 학장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2시전에는 반드시 자고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라고. 신입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명심했다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선배들은 숨죽여 가며
웃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때문이다.
매일 12시전에 자면 분명히 둘중에 하나는 뜬다. '경고'가 뜨던지
아니면 기말고사때 '얼굴'이 누렇게 뜨던가.
아침에 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 결과는 학점에서 나타난다. 2학년때
들었던 '복소함수론'이란 과목이 그 희생자였다. 결국 한시간 두시간
빼먹는 것이 점점 늘더니 아예 중간고사 이후에는 자체 종강해 버렸다.
대학원생이 되어서도 아직도 잠과의 전쟁에서 이겨보지를 못했다.
아마 평생 이기지 못할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나같이 잠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용하기도 하다. 비록 이기지
못하는 전쟁을 하고 있지만 져버린 전쟁에 미련을 두고 한숨을 쉬지는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과거의 것이니까.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못 한것이나 열심히 하는 편이 낫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 아니련지.
PS: 얼마전에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가막힌 병법을 습득했다.
Bio Clock을 두는 것이다. (장가가면 다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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