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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관하여... 시리즈] 그리움에 관하여...

by 피터K 2021. 7. 31.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갑자기 마음이 시림을 느끼면 항상 무언가를 그리워 하고는 한다.

차가워진 마음이 싫어서인지 그 찬 곳을 어루만져 줄 그 어떤 것이

그리운 모양이다. 

대부분의 나의 그리움의 대상은 우리 할머니이다.

몇번이나 나의 시린 가슴을 쓸어 주셨던 분이고, 그래서 여기서도

아주 많이 불러 보았던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나의 모든 종착점은 할머니에게로 봉착한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으면 어렴풋이 할머니의 그 손이 생각이 나고,

여동생이 선물해준 곰돌이 인형 속에 파 묻혀 낮잠이라도 자는 날에는

할머니의 품 속이 생각이 나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잊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기억속에는 그 아린 느낌만이 살아 있을 뿐이고

감정은 무디어져만 가니 말이다.

어쩐지 그리움은 그 그리움만으로 남는듯 하다.

그리워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는 그런 그리움 말이다.

내가 그것이 아쉽고 가지고 싶다고 하여도 이미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없다.

힘이 들고 어려울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해도 이제는 여기 계시지

않는 할머니를 다시 뵐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손을 다시 잡는다거나

그 품에 안기는 일은 말이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아이가 있었는데 그도 할머니를 잃었다. 그에게 있어서도 할머니는

무척 소중한 존재였는가 보다. 슬픔에 잠겨 밤하늘을 쳐다 보며

벌써 자신에게서 할머니를 데려간 것을 원망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곁에 와서 그를 위로했다.

우리는(그는 다른 별 사람이었다. 외계인이었지...) 누군가 죽어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고. 사람이란 책과 같아서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내용과 감동이 내게 남아 혹시라도 그 책을 잃어 버려도 그 감동은

나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죽은 사람이 아무리 떠났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느낌과 모습이 자신 안에 살아 있어 

그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된다고...

.... 하지만 그에 대한 그 아이의 대답이 나의 기억에 더 뚜렷이 남는다.

자기는 책을 읽고나서 그 책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소중한 책이라면

자신한테 남아 있는 감동뿐만이 아니라 그 책도 항상 가지고 싶다고..


아마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나의 소중한 책도 항상 나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큰 모양이다.



하지만 때론 그리움은 그 그리움으로 남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이 바쁜 생활속에서도 결코 잊어 먹지 

않고, 잊을만 할때쯤 그리움이란 묘한 향기로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해 주니

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보고 싶을때... 하지만 이것저것 여건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을때,

그 그리움은 차곡차곡 쌓아 두고 싶다. 

그리움이 쌓일수록 서로 만났을때 기쁨도 클 것이므로...

그래서 항상 나는 나의 마음속에 그 그리움을 한껏 모아 둘 수 있는

그리움의 창고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난 오늘도 그 한켠에 쌓아 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