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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관하여... 시리즈] 인연에 관하여...

by 피터K 2021. 7. 31.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얼마 전에 봄바람이 너무나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훌쩍 서울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서울은 그냥 마음 내키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쯤 이런 추억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약간은 큰 결심을 한 셈이었다.

(후후.. 만일 집에서 알면 큰 일 날꺼다.. ^^; )


서울에서 키즈 모임이 있단다. 생일을 맞은 몇 사람들의 축하 파티를 위해서 말이다.

말로만 생일 축하하다고 전해 주었지만, 막상 서울에 가게 되었으니 그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후후.. 실은 서울가서 마땅히 할 것도 없었고, 나를 서울로 

유혹한 것중에 하나가 이 모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키즈 모임은 신년회같은 큰 모임이외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챗방에 있다 보면 사람들끼리 즉석에서 저녁 함께 하자는 

말도 나오고 때론 같이 모이자는 말도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구경밖에는

할 수 없었다. 키즈 모임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도 

나를 서울로 데려간 한 이유라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모임은 서울 강남에서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모임 장소로 가니 사람들은 벌써

식사를 다 끝내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한 7명 내지 8명 정도 모일꺼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모인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중간 중간에도 사람들이 더 모였다. 

한참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참에 갑자기 한 사람이 말했다.


"자, 지금부터 사랑의 젓가락을 하겠습니다. 모두 손에 젓가락 하나씩을 들어 주세요..."


사랑의 젓가락? 잠시동안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웃으면서 젓가락을 드네 마네

말하기 시작했다. 후후.. 대강 눈치를 보니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기가 맘에 드는 사람을 젓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이 우연히도 남녀의 쌍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상상에 빠져 보았다. (<- 이건 피터가 참 좋아 하는 것 중에 하나다. ^_^ )

만일 이 젓가락을 들고 누군가를 가리키라면 나는 누구를 가리키게 될까?

그 자리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챗방에서나 혹은 글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지

첫인상만 가지고 사람을 골라야 하는 셈이었다. 후후.. 나의 젓가락은 과연 

어디로 갈까?



물론 우린 사랑의 젓가락을 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렇게 속으로 상상만 했었지

정말 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아마 정말 했더라면 난 아무에게도 젓가락을

자신있게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내가 그런 상상중에 저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한 사람은 있었지만 말이다. 후후.. :)



인연이란 건 우연일 수도 있고 필연일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인연이란 참 묘한 곳에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만일 그 날 모인 우리들이 장난 삼아 사랑의 젓가락을 했다면, 

그리고 거기서 서로 젓가락을 함께 한 커플이 있었다면 

그것도 작은 인연의 출발이지 않았을까?

예전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그랬다.(후후.. 그런데 이건 어느 못된 제비가

핑계거리로 삼은 이야기인거 같다.) 


사람은 각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란 것을 달고 다닌단다. 

그 인연의 끈이 이어지는 사람들은 평생 인생의 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비록 이어지지는 못하더라도 늘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추억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 끈을 이어주는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큐피드 일지는

잘 모르지만 가끔은 우리도 모르게 그 끈이 얽키게 되고 인연을 믿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느날인가 나도 내 인연의 끈이 더 이상 끊어진 하나의 줄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연결되는 하나의 참 소중한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인연의 끈은 어디쯤 흘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