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사랑한다고, 너무나 뒤늦게 알았다고...
언젠가 '세'가 해 주었던 야간 비행사 이야기를
그대로 '세'에게 해 주고 싶어.
너는 내 고향이라고,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삶속에서 내가 머리를 둘데라고.
하지만 나, 너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어 말할 수 없어...
아니, 한 일들이 있지. 너를 위해 한 일들이 아무 것도 없다면
다행이련만, 한 일들이 있어.
너를 기다리게 하고, 너를 걷게 하고, 너를 아무 것도 못 하게 하고,
너를 무시하고, 너를 괴롭혀, 결국은 너를 분열시켰지.
이젠 분열도 끝나 내게서 마음이 떠나 버린 너를 향해
이제와 사랑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니...
신 경숙의 '깊은 슬픔'중에서.
사춘기를 겪는 사람들은 아마도 한번쯤 사랑 이야기에 문을 두드려
보았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의 눈발 날리는 공원에서 함께 뛰어 노는
상상으로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기나긴 고뇌의 편지들까지...
자신들을 그런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은 멋진 유희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저런 멋진 사랑을 해 보아야지... 하는
낭만도 함께 지니고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묘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렇게도 우리의 가슴을
술렁이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이별'이란 묘한 결론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올리버'를 두고 먼저 떠나야 했던 '제니퍼'와
자신에게 견딜 수 없어 머리에 총구를 겨누어야 했던 '베르테르',
그리고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 앞에서 마음 속에 커버린 그 사랑조차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아파트 창가에서 자유를 찾아 날아 보려고
했던 '은서'까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감정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웬지 깨지지 않는 사랑은 그다지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올리버'가 '제니퍼'랑 아들, 딸 잘 낳고 살았더라면...
우리는 '러브 스토리'를 그처럼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그 이야기처럼 멋진 사랑을 하고 싶어..."
어쩌면 우리는 그런 멋진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말을 통해 멋진 이별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잘 사귀는 연인 둘이
결혼에 까지 골인을 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 둘이 어떻게 사랑을
해 왔는지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자기 누구랑 사귀었는데 깨어졌어... 라는 말에
더 귀가 쏠리니 말이다.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라고 말할 때, 끝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멋진 이별을 하고 싶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라고 할 때, 끝이 아름다운 사랑이기 보다는
멋진 이별을 다룬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아마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멋진 이별또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별이 멋있을 때, 그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작은 조각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멋진 이별을 술잔에 녹여 마시기 보담은 술 한 모금에
잠시 멍하니 하늘을 쳐다 보며 항상 내 마음속 한 구석의 아름다운 이를
떠올리고 싶다.
그 아무리 멋지고 가슴 두근거리는 이별이 유혹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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