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키즈에 들어 오면 버릇처럼 광장란을 훑어 보게 된다. 

가끔은 몇 사람이나 있나 세어 보기도하고 혹은 눈에 띄는 아이디가

있나 살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아이디를 보게 된다면 참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아이디만을 바라 보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턱이라도 괴고 있을까, 아니면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키즈에 로그인만 해 놓은 상태에서 다른 곳에 가 버렸을까...

혹시라도 어떤 사람이 글을 쓰고 있는 상태라고 나오면 또 다른 상상에

빠지고는 한다.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어디에다가 올리고 있을까...

더우기 그 사람이 내가 잘 아는 사람이면 그 궁금증은 더해만 가고

어떨 때는 그 사람이 쓴 글을 찾아 헤매어 보기도 한다. 


광장란을 훑을 때 가끔씩 눈에 띄이는 것은 사람들이 달고 있는

별장식이다. 밤 하늘에 흩뿌려진 은하수의 조각처럼 반짝거리는

모양으로 보이는 별장식 말이다. 후후... 물론 이건 자신의 페이져를

어떻게 해 두었는지 알려 주는 flag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 문뜩 광장란을 돌다가 늘 꺼져만 있던 어느 사람의 페이져가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전부터 특별히 톡을 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켜진 페이져를 보며 한번쯤 이야기 속으로의

초대를 하고 싶었던 충동을 느끼기도 했었다. 어쩜 살아 가면서의

자그마한 조각들을 서로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수줍음에 잠시 그런 유혹은 홀로 남겨 두고 말았다.


내가 페이져를 켜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에만 페이져를 살며시 켜 본다.

하지만 키즈의 다른 사용자들도 나와 같은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지

내게 차 한잔의 여유로 초대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며칠동안 페이져를 켜 두었다가 다시 꺼 버리곤 한다. 

가끔씩 사람이 그립듯이 누군가 나를 초대해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것 같기만 하다. 


광장란의 누군가의 켜진 페이져를 보면서 저 사람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의 초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키즈에서 만난 연인의 반가운 속삭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어느 낯선 이의 뜻밖의 초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도회 전날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감추지 못하여 마냥 즐거워 하는 어린 숙녀의 모습처럼 과연 저 이는

어떠한 설레임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쯤...


늘 기다림이란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지 않고

그 아쉬움을 길게 품을 때 어떤 이의 작은 초대가 그 사람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화면에 가득찬 별들의 무도회가

아닌 반짝임이 사라진 하얀 여백을 보게 되더라도 그들 모두가 

카페에 오손도손 모여 즐거운 이야기로 주위를 색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면 은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 저녁엔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를 나의 작은 테이블로 초대해

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