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예전부터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다니기를 참 좋아했었다.
왠지 손이 허전하면, 무엇인가 잡을 것이 없으면 마음까지 허전해지고
약간의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아마도 그래서 누군가의 손잡는 것을 좋아 하고 사람의 손을
그토록 쳐다 보는 모양이다.
그런 내 손에 늘 들려 있던 것이 바로 손바닥만한 녹색 다이어리이다.
어디를 가든지 꼭 손에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적어 놓기도 하고
때때로 떠오르는 상념들마저 적어 놓는 아주 작은 다이어리이다.
여기엔 참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데 학생증과 각 비행사 보너스
카드, 그리고 잡다한 명함들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이 늘 들어 있기 때문에 항상 나의 손 한쪽을
차지하던 다이어리를 최근에 들어선 별로 들고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날이 더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젠 그게 귀찮아져서 일까?
후후.. 확실히 그것을 대용할 만한 어떤 누군가의 손을 발견한 건
아직 아닌데 말이야... ^^;
오늘 문뜩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다이어리의 똑딱 단추를 클러서
넣어 둔 식권을 찾으려 다이어리를 뒤지다가 맨 뒷장의 클립 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거기에서 나의 관심을 잽싸게 빼앗아 간 것이
170원짜리 우표였다.
이 우표가 내 다이어리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언젠가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편지가 한통 왔는데 석사 졸업할 때
제출했던 석사 논문을 DB로 구축한다고 그 저작권을 도서관에
일임하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일임하는 내용의 서류가 한통
들어 있었고 반송하기 위한 봉투와 우표 하나가 들어 있었다.
후후... 서류를 작성하고 보니 맨 마지막에 팩스로 보내도 된다고
하길래 실험실 팩스를 이용해 보내 버리고 나니 이 반송 봉투가
덜렁 남아 버린 것이었고 사용하지 않은 이 우표가 눈길을 끌었던
것이었다. 반송 봉투에서 우표를 조심스럽게 떼어 내서
다이어리 안에 감추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편지 자체를 쓰는 건 참 오랫동안 하지 않았지만 전자 메일을 쓰는 건
거의 매일 하는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보기도 하고 교수님과 혹은 실험실 사람들과 사무적인 내용의
전자 메일을 쓰니 말이다. 후후.. 하지만 이 전자 메일엔 모두가
알다시피 우표를 붙일 공간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공간이
남아 있었더라면 내 몇줄 시그너춰처럼 한켠에 작은 우표를 만들어
보낼텐데 말이다. 피터 우체국 소인 꽝!
한동안 친구에게 이것저것 보내줄 것들이 있어서 하루는 광주로
며칠은 서울로 우편물과 소포들을 보낸 적이 있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풀로 붙이고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직원이 소인을
쓰윽 찍어 버리는 것을 보며 한번도 내 다이어리 속에 잠들고 있는
이 170원짜리 우표를 기억해 내진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우표를
발견하고 나선 참 많은 생각들이 떠 오른다. 처음 우표를 떼어
냈을 때 이걸 누구에게 보낼까 하면 떠올린 수많은(?) 친구들의
모습과 또 거기엔 어떤 내용을 적어 보낼까 하며 마음 속으로 적어
보던 그 수다스럽던 이야기들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흩어져
머리 속을 맴돈다.
왠지 오늘쯤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주루룩 적어 놓고 아주 아주
공평하게 사다리를 타서(^^;) 낙점 받는 친구에게 손으로 편지를
적고 이 우표를 붙여 보냈으면 좋겠다는 충동이 든다.
주어진 편지지 한 장엔 많은 것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그를 생각하고 기억해 주고 있다는 마음을 담아 보내어 봤으면...
그 편지를 받는 친구는 이 우표의 기나긴 사연을 알아 볼 수 있을까?
후후...
하루가 이상하게도 길어 보이는 날 인 것 같다.
오늘 하루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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