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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by 피터K 2021. 5. 30.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티비를 보다 보면 수많은 여자 화장품의 선전을 보게 된다.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에 때론 생소한 화장품도 보게 된다.

아스트린젠트라는 별 희안한 이름도 들어 보았고

클린싱 폼이란 것도 들어 보았다. 그리고 여자 친구를 따라 다니며

구경하게 된 그 수많은 화장품들을 보며 여잔 너무나 복잡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필요한 때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화장품 종류가 많아서 그런지 사람마다 특히 여자들 마다

사용하는 화장품의 향기가 다르다. 어떤 이에게서는 꽃 향기가 나고

어떤 이에게서는 풀 향기가 난다. 그래서 때론 향기만을 맡고

그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체취란 그 사람에게서 나는 고유한 향기이지만 이건 그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품에 의해서 특징지어 지나 보다. 

그 누군가를 만나면 늘 맡던 향기가 있다. 바로 오이향이다.

무엇을 사용하였길래 그 향기가 나는지 물어 보았더니 그건 향수 냄새란다.

Escape?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강 이름이 이랬던거 같다.

시원스런 느낌이라서 자주 사용한다고 그랬었는데 난 그게 오이향과

똑같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가끔 이건 오이 냄새야, 하고 놀려

주던 생각이 난다.


지난번 생일날, 난 친구로 부터 에프터 쉐이브를 하나 선물로 받았다.

상품 이름을 참으로 기억 못하는 나는 이틀에 한번씩 사용하면서도

아직 그 이름을 모르겠다. 다만 깨끗히 면도를 한 다음에 바르는

그 에프터 쉐이브에서 예전의 그 오이향이 난다는 것 밖에는...


사람이란 참으로 끈질긴 추억의 동물인가 보다. 

이제는 잊어지는 사람이지만 매번 그 에프터 쉐이브의 향을 맡노라면

늘 한 사람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직 1/4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에프터 쉐이브를 사용할 때 마다

난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겠지...


아무리 악마와 같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나쁜 기억보다는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편리하게 설계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평생 미워하며 살지 말라는 그 누군가의 뜻인지도...


나도 이 에프터 쉐이브를 사용할 때 마다 그리고 기숙사 방 문 곁에

놓아둔 그 병에서 향기가 새어 나올 때 마다 가지런히 모아 두었던

내 기억의 창고 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 언제나 새어 나올 것만

같다. 이제는 서로 마음 아프게 했던 끔찍한 기억보다는 

늘 반갑게 웃던 그 미소를 말이다.


오늘 기억해 두어야 할 것 하나...

추억과 기억의 창고는 늘 꼼꼼히 잠구어 둘 것.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올 때는 눈에 뭐가 들어 가서

그렇다는 핑계도 함께 준비할 것. 명심할 것.



향기는 늘 그렇게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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