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자신이 연애를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옆에서 친구가 연애를
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도 가끔은 즐거운 일이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라 나도 가슴을 조여 가며 그들의 행복과 웃음, 그리고 때론
고민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즐거움을
아주 '가끔은' 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한 이유는 이것이 정말로
'가끔씩'만 주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연애를 하러 대구로
떠났는데 나만 혼자 주말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 시간이라도 건너뛴
상태에서 칫솔을 입에 거머 쥐고 부시시한 나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때라면 내 인생이 무척이나 비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흑흑흑.... T.T *!*
기억할까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언젠가 행운목 때문에 나로 하여금 뜻하지 않게 정원사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내 '순진한' 방돌이를...
오늘도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방에는 달력이 하나 있었다. 지금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달 전에는 있었다. 그게 무슨 달력이냐 하면 술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달력으로 맥주나 소주 회사가 자기네 술을 선전하기 위하여
만든 그런 달력이었다. 왜, 여자가 거의 홀라당 벗은 채
계곡 같은 곳에서 술병과 함께 있는 그런 사진이 든 달력 말이다.
물!론! 이건 내가 구해 온 것이 아니다. 나도 어느 날인가 방에
들어가 보니 방돌이쪽 벽에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가끔은 심심찮게 눈요기를 하긴 했지만(^^;) 방에 달력이
하나도 없던 차라 아무런 생각없이 걸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5월인가에 나온 모델은 사진 전체가 이상한 사진이라기 보다는
좀 예술적이고 얼굴도 이쁜 그런 모델로 되어 있었다.
내 친한 친구인 물리과 친구가 우리 방에 놀러 왔다가 그 사진에 반해서
5월이 지나고 나면 그 달력 종이를 자기에게 달라고 그랬다.
후후.. 우린 아무런 생각없이 5월이 지나자 마자 그 친구에게
그 사진을 주어 버렸다. 아, 물론 기억했다가 준 것이 아니라
5월의 마지막 날에 물리과 친구가 우리 방으로 찾아 왔다.
달력 가지러.... :)
그 친구는 자기 방에 그 사진을 걸어 두었다. 스카치 테잎으로 잘
붙여 머리맡에 쯤에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이 대구였던 그 친구네 부모님께서 예고도 없이 이 친구를
찾아 오셨다. 그 친구는 토요일 오후라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사진을 숨길 여유도 없이 부모님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아, 그러나 이 얼마나 뛰어난 임기 응변이던가... :)
그 친구는 부모님의 시선이 자꾸만 그 사진으로 가자 둘러댄 말이,
"언젠가 부모님 앞에 저런 여자를 데리고 갈려고 붙여 놓은거에요..."
그러자 어머님의 말씀...
"쓸떼없는 상상만 하지 말고 직접 데리고나 오렴..."
참,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게 숱한 화제를 뿌리던(?) 달력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린 날은 토요일이었다. 예상대로라면 방돌이가 대구로 벌써
떠났어야 하는 터인데 그 날은 웬일인지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왜 오늘은 대구에 가지
않았는냐고 물었더니 *!* 참, 바보 같다. 뻔한 답인데.. T.T *!*
"오늘은 걔가 오는 날이야..."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난 아직도 멀었나 보다. :(
그리고 그 날 저녁, 난 실험실에서 뼈빠지게 일하다가(정말?? ^^;)
방에 내려 왔더니 방에 이상한 것이 하나 걸려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서로 팔장을 낀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사진으로 만들어진 벽걸이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 정확히 말하면 천 같은 곳에 사진을 프린트 해서 돌돌 말린
형태로 파는 건데 그냥 쭉 늘어뜨려 옷걸이 같은데 거는 휘장
같은거.. 흑흑... 어휘력 부족이야... *!*
그리고 난 달력이 없어진 것을 알아냈다. 읔.. 우려하던 사태가
드디어 왔군... :(
나의 추측이 좀 틀렸길 바라면서 방돌이를 심문(?)해 보니 오늘 왔던
여자 친구가 우리 방으로 들어 왔었더라는 거다.
흑흑.. 난 방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속옷이랑 다 널어 놨었는데... T.T
그리고는 여자 친구가 그 달력을 보고는 없애 버리라고 그랬고
대신 시내에 나가서 그 멋진 걸이를 사 주었다는 것이다.
*!* 말 잘 듣는 방돌이는 거역을 분명히 못 했을 것임... *!*
그렇게 우리 방엔 행운목과 더불어 또 하나의 국보(?)가 생긴
셈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팔장을 끼고 서로의 눈을 쳐다 보는 모습을 기억하실
것이다. 음... 아마도 그런 모습때문에 방돌이와 여자 친구는 그런
걸이를 샀을지도 모른다. 후후...
내가 아무리 쳐다 보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서로의 눈만 바라 보는
그 사진 속의 두 사람.. 어쩌면 행운목의 그 깊은 뜻과 또 다른
연결이 있지는 않을까? :)
글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늘 나를 주말마다 외롭게 만들긴 하지만
그리고 때론 날 비참하게 만드는 방돌이지만, 그 둘이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가끔은'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곤
한다. 어서 장가가 버리라는 내 성화에 늘 수줍은 듯이 웃고만
마는 방돌이의 얼굴과 내게 슬쩍 여자 친구의 삐삐가 낡았다며 새 삐삐의
값이 얼만지 물어 보는 그 순진함과 순수함에 늘 행복이 서려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부러움의 눈초리도 아니고 질투의 투정도 아닌
6년간 같은 방을 함께 쓴 친구로써 바라고 싶은 작은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친구에게 빌어 줄 수 있는 작은 기도일수도 있겠지만...
야! 내가 이렇게 행복하라고 비는데도 어느날 갑자기 술 사들고
와서 깨졌다고 징징대면 알지?? ^^;
ps: 여담 하나...
지난 번 '행운목'에 관한 글을 방돌이도 읽어 보고는
하나 프린터로 뽑아 달라고 그랬다. 자기 여자 친구에게 가져다 준다나??
후후.. 그래서 하나 이쁘게 뽑아 주었다.
*!* 별로 좋은 이야기 없었는데... 쩝... *!*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 '둘이 놀러 갔는데 사고 치지나 않기를 빌며...'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이 문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다.
사고 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음.. 사고 치는 건 사고 치는 거지 뭐... ^^;
내가 알기론 내 방돌이도 워낙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애라
이 해답을 명쾌하게 설명 못 해 주었다고 한다. :)
그리고 아직도 그 여자 친구는 그 문장의 의미를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고...
*!* 혹시 그 여자 친구 내숭은 아닐까??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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