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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테크의 추억

아이에서 어른으로...

by 피터K 2021. 5. 30.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지난 주말에 실험실에서 Homecoming day 행사를 했다.

2년만에 하는 것이라 준비도 많이 필요했고, 졸업한지 오래된 선배들에게

연락하느라 진땀도 많이 뺐다. 특히나 내가 이젠 실험실에서 고참이라

일일이 전화하고 저녁 식사 할 곳 예약하는 등 웬만한 잡다한 일은

내가 손 보아야만 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Homecoming day

행사가 뜻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문제는 늘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우선 토요일날 아침부터 비가 온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대부분 졸업한 선배형들은 서울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포항오는 비행기가 결항을 한 것이다. 토요일날 월차를 낼 수가 없어서

오전 근무를 끝내고 온다던 사람들은 Homecoming day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를 타려 했던 것이었다. 결국엔 한 형은 버스로 내려 왔고,

대구 거쳐 고속버스를 탄 동기 한명은 7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겨우 포항으로 내려 왔다. 그러나 내려 오기로 한 3명은 결국 공항에서

포항행 비행기가 'HOLD'에서 'CANCEL'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바람에 포항이 아닌 울산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저녁 9시가 되어서 모두 모일 수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사회를 보라고 앞세웠던 후배가 쭈삣쭈삣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더니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때우려고 했다. ^^;

우선 졸업생들이 나와서 한마디씩 인사를 했고, 순서에 따라 

내 차례가 돌아 왔을 때 앞에 준비된 단상으로 나아갔다.

이제 실험실에서는 고참이 되어서 그럴까?

졸업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석사 입학 했을 때 계시던 분들이고

또한 함께 고생했던 분들이 많았다. 순간 난 그들 앞에서 참 어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나도 잘 믿기지 않지만 내가 처음 석사 신입생으로 들어 왔을 때

난 막내였고, 실험실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재롱(?)

피던 시절이 있었다. ^^;

노래방에 가더라도 나 혼자 최신 유행곡을 불러 재꼈고, 형들은

어린 나에게 밥도 많이 사 주고 늘 고민거리 상담자 역할을 해 주곤

했었다. 

다시 테이블의 한켠을 돌아 보니 실험실의 후배들이 눈에 들어 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난 벌써 박사 2년차의 실험실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이젠 오히려 내가 그들을 다독거려 주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함께

풀어 주는 그런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잠시의 순간이었지만 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훌쩍 옮아 갔던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진다. 너무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나이가 든 모습도 아닌 그런 모습.

그리고 잊고 있던 지난 얼마간 훌쩍 커버릴 수 밖에 없었던 

세월의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변해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겠지?

그 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분을 느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러나 그 사이에서 뭔가를 잃어 버린 듯한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양철북'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난 어쩌면 끊임없이 어린 아이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꿈을 잃어 버리고 다시는 날 수 없는 피터팬의 안타까움을

아쉬워하는 지도...


어느새 난 어른이 되어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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