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8월이면 원래 뜨거운 태양열에 아스팔트는 후끈한 열기를 뿜어 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더위에 숨이 탁 막혀야 하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여야 제 맛일지 모르겠다.
사실 그런 날씨가 되어야 모처럼 장만한 선글라스도 폼나게 쓰고
다닐 수 있을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의 날씨는 그런 이름에 전혀 걸맞지가 않은 듯 싶다.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며칠째 뿌연 먹구름만이
하늘을 뒤덮고 있고, 비도 많이 내렸다. 유독 경주, 포항 지방에만
비가 계속 내렸다던데 덕분에 4년째 계속 되던 가뭄에서 벗어 났다는
기쁜 소식이 있긴 하지만 웬지 8월의 어느 날 날씨치고는 참 어울리지
않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8월 중순 쯤에는 늘 보일러 점검을 한다고 더운 물마저 나오지
않는데 이처럼 시원한 날이 계속 되면 이만 저만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선선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땀이 나지 않을리는 없으나 찬물에는
전혀 샤워를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점잔하게 뒷짐지고 천천히
걷는 버릇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날씨가 환하게 개이고 나서 가을이 찾아
올지 모르겠다. 저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있는 구름 너머에는
푸르디 푸른 파란색 하늘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요즈음처럼 살다가는 아마 40대 중반에 이상한 성인병으로 죽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8월말로 다가온 프로젝트
마감이 가장 숨막히게 하는 차에 프로젝트와 관계없는 출장이 2건이나
잡혀 있다. 게다가 왜 바쁠 때에는 꼭 일들이 한꺼번에
쌓이게 되는지 어떨 때는 하루에 한끼정도만 먹고 사는 것 같다.
잠시 책상에 엎드려 졸다가, 혹은 미루어 놓은 잠을 한꺼번에 청하느라
끼니를 훌쩍 거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도 그 어느날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지만 모처럼 아침 제 시간에
출근을 해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신문도 차근차근 읽어 보고
책상 위도 조금은 정리를 해 보고, 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생각해 보고
포스트 잇에 가지런히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하면서 찾아 볼 내용이 있어서 책을 하나
꺼내 뒤져 보았다. 몇군데를 읽고 나서 책을 덮어 놓는데 유난히
한 페이지가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슨 내용을 그다지도
많이 보았길래 이렇게 표시가 났을까 하는 궁금한 생각이 벌어져 있는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거기에는 낯선 단풍나무 한 잎이 곱게 숨쉬고
있었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그 단풍나무 잎을 넣어 두었는지...
아니 어쩌면 내가 넣어 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을 그 곳에 숨겨 놓았는지도... 그 누군가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그저 단지 그 빨간색마저 바래 눅눅한 색이 되어 버린
그 단풍나무 잎 하나 때문에 갑자기 마음의 노곤해지고 잠시 감상적이
되어 버렸다는 것 밖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을이 이제 곧 다가 올 거에요'라고 전해 주는 내 수호 천사의
작은 메세지였을까?
오늘 오후부터는 일주일 동안 하늘을 감추던 먹구름들이 몰려 가고
그동안 숨겨 두었던 파란 하늘이 드러 날지도 모르겠다.
다시 더위가 시작될지도 모르지만 마음 속으로는 은근히
이대로 가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뜻하지 않은 메세지 하나가 힘든 몸을 추스리고 이제 그 동안 힘들게
가꾼 결실을 이제 거두어 보라고 전해 준다. 올 가을 난 또 어떤 것을
추수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숨겨진 작은 보물 하나를 찾아낸 동화 속의
한 주인공이 되어 버린 기분이다. 눈을 떠 보니 어떤 환상 속으로
빠져 들어 시작되는 그런 아름다운 어떤 동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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