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얼마전 서울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일주일 동안 서울에 있는 회사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잠자리에 들 시간을 정하고 일어날
시간을 정하던 나로서는 매일 같이 9시까지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회사 생활이 너무나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었다. 나의 집은 일산이기
때문에 양재동에 있는 회사까지 9시에 맞추어서 오려면 7시에는 집에서
나서야만 했다. 7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많이 해 보았지만 7시에
일어 나는 것은 정말로 힘들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몸에 무리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때도 안 해본 새벽별 보기 운동이라니... :(
일과가 6시에 끝나는 것은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도대체 6시에
일을 마치고 나와서 무얼 하라는 말인가?? 저녁을 먹고 나서 언제나
실험실로 올라와 12시, 혹은 1시까지 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통신이라도
하던 나로서는 6시에 회사 정문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무엇을 하란 말인가??
후후.. 하지만 다시 회사로 들어 가서 남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쩐지 '칼퇴근'이 너무 좋은 것 같아서 말이다. :)
한 3일정도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되어 갔다.
아침에 지하철 안에서 졸다가 잠이 깨면 열차는 어김없이 내가
내려야 할 양재역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_^
이 정도면 잘 적응한 것인가?? 후후후...
피곤함이 가시고 나니 6시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생각이 났다.
바로 그동안 만나지 못 한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 것들.
아마도 수요일 이후에는 회사에서 나와 바로 집에 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후후..
그 날도 아는 사람들과 약속을 했다. 실은 갑자기 생긴 약속이었다.
그래서 집에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어머니는 내가 일찍 들어
온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었다. 집에 전화를 거니 여동생이 받았다.
"오빠인데, 약속이 생겼어. 그래서 저녁 먹고 들어 갈 것 같아."
"뭐야? 오늘 일찍 들어 온다고 그랬잖아?"
"응, 그게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 어머니께 늦게 들어간다고 전해 줘"
"으이구, 암튼. 알아서 해. 엄마 지금 오빠 준다고 만두 빚고 계신단
말이야.."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침에 나올 때 별 약속이 없다고 말씀드린 생각이
났다. 후후..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친구들도 약속을 다 해 두었는데
말이다. 순간 머리 속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 복잡해졌지만,
나의 결론은 금방 친구들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 후후.. 이런,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 좀 드려 주라."
"암튼, 일찍 들어와. 알았어?"
여동생의 따끔한 일침을 맛보아야만 했다. 후후..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동안 웬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편하지를 않았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후후, 워낙 마른 체격이라서 그런지 어머니는 내가 집에 올 때마다
무척 잘 먹이시려고 노력하시는 편이다. 언젠가는 집에 가서 밥은
구경 못하고 고기만 먹고 온 일도 있었다. 후후..
나는 별로 생각을 못 했지만, 어머니는 늘 나의 생각을 하고 계신가 보다.
모든 어머니가 다 그러하시듯이 말이다.
하지만 난 별로 어머니께 뭔가 해 드린 일이 없는 것 같다.
작년엔 어머니의 생신도 잊어 먹고 있었다. 친구의 생일과 연인의
만난 날까지 기억하고 있던 나로서는 엄청난 무관심이 아니었을까?
물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선물을 전한다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쉬운 길이고 방법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오늘은 3월 14일. 화이트 데이이다.
누군가에게 감사라든가, 혹은 다른 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그런 날들은 핑계거리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런 날들이 조금은 강제이기는 하지만
뭔가를 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후후...
오늘 같은 날이면 연인에게만 사탕을 선물하기보다는 진정 이 날의
뜻처럼 사랑하는 이들 모두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사탕은 미리 준비하지 못 했지만 늘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시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감사한다는 말은 전화로라도 전해 봐야 겠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왜 뺏냐구?? 화이트 데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날이라매?? :P
작가의 마을 - 옛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