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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은반지

by 피터K 2021. 4. 11.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언제부터인가 나의 오른손가락에는 작은 은반지가 하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어느 여학생으로 부터 받은 반지였다.

하하..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나를 사랑하는 나의 여학생에게 받은 것이다. 

바로 나를 끔찍히 사랑하는 나의 귀여운 여동생...   :)

       ....
"오빠, 언제 애인 생기겠어? 그때까지 끼고 다니라고.."


오른손에 끼면 애인을 구한다는 뜻이고, 왼손에 끼면 자기는 애인이

있으니 건들지 말라(No Touch!!)라는 뜻이라나... 

하하.. 난 항상 이걸 오른손에 끼고 다니는데 언제 왼손으로 옮겨 보나....


나는 손가락 마디가 굵어서 이 은반지는 나의 손가락안에서 혼자 놀곤 한다.

마디를 지나가면 다시 가늘어 지니까 말이다. 한번은 마디에 걸려서

빠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걸 보고 선배가 했던 말...


"피터... 너 영원히 싱글이겠구나... "



이 은반지는 내가 요즈음 얼마나 영양보충을 잘 하고 사는지 보여 주기도

한다. 잘 못먹고 좀 힘들다 싶으면 헐렁하게 손가락사이에서 혼자 놀러 

다니고, 잘 먹고 잘 놀아서 포동포동해지면 손가락에 적당히 맞기 때문이다.

반지를 끼고 다니니 때론 사람들한테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누구한테 받은

거냐? 이쁘다... 애인이 준거니??  아고... 나도 얼른 애인이 사주는

반지로 바꾸어야 겠다...


그렇지만 계속 끼고 다니다가 몇달전쯤 무척이나 정신없이 살때 그만

어딘가에 빼어 놓고는 잊어 버렸다. 나중에 아무리 기억을 해 내려고 해도

대체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도통나질 않는 것이었다.

책상서랍도 다 뒤져 보고, 놓아두었을 만한 곳은 다 찾아 보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여동생이 자기 용돈을 털어서 사준 것이라 그랬는지,

여엉 아쉬웠다. 더구나 내가 처음으로 가져 본 악세사리인데...

남자이니까 목걸이나 귀걸이도 쉽게 하지 못하고, 반지도 그리 쉽게

끼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물론 은빛 십자가 목걸이는 하고 있지만..:P )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반지를 끼고 집에 들어 갔을때가 생각이 난다..

오랜만에 큰고모도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을때였다.

고모께서 반지를 보시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피터야, 장가가니??"    ^_^



그렇게 반지를 잊어 버리고 나니 좀 허탈하기는 했다. 오랫동안 

아쉬웠으니까... 

그러나 며칠전, 우연히 테니스를 치러 갔다가 테니스바지 안에서 그 반지를

찾아 내었다. 헐렁해서 라켓을 잡을때마다 불편했던 기억이 나는 것이 보니

아마도 그 전에 테니스를 치면서 반지를 빼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었나

보다.. 찾고 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아주 잊어 버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샤워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손가락에 끼워 보았다. 항상

그랬듯이 은반지는 나의 손가락에서 형광등 불빛에 반짝 거렸다...


마치 보물찾기를 한 기분이었다. 어디다가 몰래 파묻어 두었던 것을

다시 꺼낸 그런 기분... 때론 이렇게 전혀 뜻밖의 곳에서 반가운 것들을

만나곤 한다. 그리고 반가운 사람도..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았던 책상속에서

친구들이 남겨 두었던 메모라든가, 간만에 펼친 책속에서 문뜩 발견하게

되는 밑줄쳐진 구절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볼때마다 굉장히 귀한 것을 다시 얻은 기쁨을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 주는 인사말을 듣고 있노라면....


"피터야... 잘 있었어? 오랜만이네... 그동안 왜 나 안 찾았니??"


하하하... 그동안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녀석들은 내게 결코 실망을 안겨 주지는

않는다. 몰래 자신이 그동안 숨겨 왔던 미소를 옮겨줄 뿐..

오랜만에 찾은 그녀의 이별 편지마저도 나에게 추억이라는 그럴듯한

향기를 뿜어 내어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한.. 그들은 나를 그 꿈속으로 다시 여행하게 하여 준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펜을 쥔 손의 한 귀퉁이에서, 내가 항상 꿈꾸어

오던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 은반지의 은은한

반짝임같이 말이다.. 

내가 글을 쓸때는 항상 함께 보곤 했지... 하하하..




그리고... 나는 또 내일의 어떤 꿈을 위해 이 은반지같은 작은 보석들을

숨겨 두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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