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코너를 막 돌아 섰을 때 그는 잠시 주춤거렸다.
멀리서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이 쪽으로 내려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갔지만 발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어색할 것 같았다.
그는 계속 걸었다. 그녀도 이 쪽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친구들과의 대화에 묻혔다.
그도 옆에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면 어색하게 어디다가 시선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먼 산을 바라다 보았다.
결코 그녀 쪽은 바라 보지 않을꺼야....
그러나 은근히 자신도 모르게 밀려 오는 슬픔에 답답함을 느꼈다.
전에는... 우리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는데...
그녀는 코너를 돌아 서는 사람이 그라는 것을 알았다.
아까부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옆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적어도 시선을 둘 데라도 있으니 말이다.
어색해 하지 말자... 이미 다짐하지 않았니...
괜히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웃어 버렸다. 그러면 얼굴의 표정이
바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코 기분이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가 점점 더 다가 오자 그녀는 약간 두근거림을 느꼈다.
전에는... 우리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는데...
두 사람이 지나 가는 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 했다.
시간도 그 장면을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순간 어떠한 느낌을 가졌을까?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비록 두 사람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지나 갔지만
그 두 사람의 그림자는 서로를 향해 인사하고 있던 장면을 말이다.
사람은 왜 자신의 그림자 보다 솔직해 지지 못 할까?
서로 사랑하던 기억은 이제 그 둘의 그림자만이 기억하나 보다.
그러나 나도 이젠 나의 그림자에게 그 기억을 넘겨야 겠다.
두 사람의 사랑하던 기억이 이젠 추억이라는 외투를 입도록 말이다.
전에는... 우리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는데...
ps: 이 글에는 'RE'가 달리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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