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대학원 사람들은
결혼을 일찍 하려고 서두르는 편이다. 박사 과정 2년차쯤 되면
서로들 건네는 인사말이 '너, 이제 장가 가야지' 하는 말이 될 정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 선배들을 보면 이제 학부 기준으로 89학번의 선배들이
장가를 가기 시작하고 있고 내년쯤에는 우리 90학번 동기들도 하나 둘씩
가기 시작하리라 예상(?)한다. 오히려 주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 나이 또래쯤의 대학원생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일찍 결혼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포항이라는, 그리고 학교 안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다
보니까 조금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친구와 결혼 이야기라든가 혹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서로의 인생 설계 상담자라고나 할까? :)
"난 와이프될 사람을 여왕처럼 모시고 살꺼야."
친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웬지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자는 모두 늑대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결혼하기 전에는 모든 남자가 여자에게 한가지씩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무엇을 해 주겠다, 혹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단지 몸만 오면 된다 등등.
하지만 그 말을 지키는 남편은 얼마나 될까?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의 남편들은 공처가란 소리를
들어 가면서도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난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까?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내가 될 사람에게 '여왕으로 모실꺼야'하고
이야기는 못 할꺼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아도 지키지 못할
약속인거 같기 때문이다.
*!* 흑흑... 나한테 시집 오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군. T.T *!*
단지 내가 바라는, 아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 아내가 될 사람을
그저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내가 졸업하기 까지 이 먼 타지 포항에서(물론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결혼한다는 전제하에...) 나 하나만을 믿고 따라 내려온 사람을
여왕으로 만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졸업 때문에 골머리를
싸 매고 있을 때에는 내 고민을 들어 주어야 하는 상담자의 역할도
맡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의 아내로 밖에 만들어 줄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아내를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가을이 되면 자신이 심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때때로 작은 행복을 추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힘이 들지만 땀을 훔쳐 가면서 열매를 거두는, 그리고 그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담은 농부의 아내로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많은 행복의 씨앗을 준비해 두어야 겠다.
하나씩 씨를 심기 위해서, 그리고 때론 서너개씩 그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말이다. 그 행복의 열매를.....
우리 둘이 가진 마음의 밭에 풍성하게 넓었으면 좋겠다.
준비한 그 많은 씨앗을 다 뿌릴 수 있도록...
그리고 늘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뿌린 씨앗에 촉촉한 비를 내려 줄 수 있도록...
누가 이 포항 시골 총각의 아내가 되어 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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