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산타가 내게 오지 않았던 이유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포항에서 집에 까지 가는데 1년이 걸렸다. :(

오후 5시에 포항 고속 버스 터미날에서 출발했는데 서울에 도착을 하니

막 새해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대합실 티비에서 들려 오는 보신각 종 소리. 12시 5분.

이렇게 이상한 새해를 맞이 해서 인지 서울에 있는 동안도 

예년과는 다르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2시쯤 겨우 집에 들어가 눈을

잠시 붙이고 나니 창 밖으로 올해의 첫 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이 좋다고들 말하나 보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면서

창밖에 소복히 내려 앉는 눈들의 비행(飛行)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아마도 포항 기숙사였다면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어

계속 뒤척이기만 했을텐데... 후후후...


날도 춥고 눈도 내려서 그런지 다른 친구들은 볼 엄두도 내지 못 했고

꼭 만나고 싶은 친구만 하루 시내에서 만났다.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동행해서 맛있는 점심을 얻어 먹은 것이 새해의 첫 복이라면 복일까.. :)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었다.

우리 집은 일산선의 거의 끝인 주엽역 근처에 있는데 보통 저녁 10시 조금

넘어 출발해도 그 날에 들어 오기가 쉽지 않다. ^^;

구파발에서 출발해도 30분 넘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열차가

대화행도 아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에는 피곤함을 하나도 모르지만 막상 헤어져 

전철을 타고 나면 곧바로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든다. 

날씨가 추워 얼었던 몸이 난방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으로 녹기 

시작하면 정말로 잠의 요정이 눈가에 잠가루를 삽으로 펴대는 것 

같기도 하다. ^^;

아마 지축을 출발하고 나서 잠이 들었나 보다. 꾸벅 꾸벅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신년 인사를 드리고 있던 차에(^^;) 어떤 기척에 잠시

잠의 마법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눈을 떠 보니 내 무릎에 작은 쪽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흔히 전철에서 만날 수 있는, 도움을 청하는

글이 적혀 있는 쪽지였다.

"저는 신림동에 고아들이 모여 사는 ## 사랑의 집 출신으로 겨울인데도

난방을 하지 못하고........ "

내게 쪽지를 남겨 두고 멀리 저 편에 가 있는 사람을 살짝 쳐다 보았다.

덩치는 거의 스테어만한데 다리가 불편한 것인지 아니면 다친 것인지

약간 절고 있었다. 그는 한쪽 편에 앉은 사람들에게 쪽지를 다 돌리고 

나서 반대편으로 돌아 섰다. 얼굴을 보니 약간 어리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다우 증후군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늦은 열차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열차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돈을 건네 

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물론 나도 그냥 내 무릎에 있는 쪽지만을

건네 주었을 뿐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가지는 특징이랄까? 아니면 지하철과 같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서 일까? 포항에서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리고 더구나 고등학교때까지는

시내에 거의 나가 보지 않았고, 대학도 바로 포항으로 왔으니 어쩌면

나에게 그런 모습이란 무척 생소하다는 것이 맞을 꺼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복잡한 명동 거리를 지나면서 수없이 스쳐 가는

지저분한 손들, 그리고 계단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것, 그리고 불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그런 사람을 보면 한두푼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그들이

조금이나 따뜻해지기를 기원하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 또한 익숙해 지는 것 이외에는 그런

놀라움을 벗어나는 길이 없었다.

"주지마, 저런 사람들에게 다 쥐어 주다가는 끝도 한도 없어."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곤 어느 새 그렇게 익숙해져 버린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단 한가지 경우. 이 때만은 무덤덤해진 내 모습이 무너짐을

느낀다. 겨우 몇백원, 혹은 일, 이천원하는 먹거리를 팔기 위해 

굽은 등에 의지하여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시는 할머니를 보면 말이다.

구지 이 자리에서 나의 할머니에 관한 추억을 떠 올리는 것은 씁쓸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의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의 할머니라는 분이 내게 

특별한 분이시라는 것만 이야기 하고 싶다. 

그 분은 늘 숨이 차 하셨는데 그 이유는 젊으셨을 때 너무나 고생하셨기

때문이란다. 젊어서 고생하셨기 때문에 양쪽 폐가 늘어 나서 평소에도

늘 숨이 가뿐거란다. 

할머니의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신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시기

위해 비누 장사를 하셨단다. 그 당시야 다 그렇겠지만 커다란 다라이에

비누를 넣고 여기 저기 돌아 다니시며 팔던 행상같은 것이었단다.

많은 비누를 팔아야 많이 벌 수 있으므로 그 다라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크고 무거웠던 모양이다. 하루는 아버지와 고모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안스러워 두 분이 그 다라이를 들고

비누를 팔러 나가셨단다. 그 때 아버지의 나이는 열살쯤. 

그러니 두 어린 아이가 비누를 얼마나 팔 수 있었을까. 나중에 할머니가

그걸 아시고는 불같이 화를 내셨단다. 너희들은 이런 것을 할 필요가

없다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그런 할머니가 계셨기에 어쩌면 나도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그런 고생이 있었기에 말이다.


길에서, 그리고 지하철 계단에서 무언가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보게 되면 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저 분들은 누가 돌보아 주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오늘 하루 벌이는 괜찮아 내일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까?

그러나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그 할머니를 뒤로 하고 멀어진다. 


난 어쩌면 나중에 양로원 같은 곳은 가지 못 할 것 같다. 

아마 거기에 발을 들여 놓으면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펑펑 울고만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서러운 일이 하나도 없어도, 그리고

아무 잘 못이 없어도 말이다. 그냥 단지 할머니의 생각이 나서 말이다. 



내게서 쪽지를 받아 가는 저 사람은 어느새 묵뚝뚝해진 내 모습만

보고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탄 열차 칸에서 자신이 뿌린 쪽지를 모두

거두어 다음 칸으로 옮겨 갔다. 다리를 절면서...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기도 하다. 하느님이 정말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

다면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은 만드시지 않으셨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만드시 하느님의 뜻을 내가 이해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뭏튼 세상은 불공평한거 같다.


난방이 되지 않는 차디찬 집으로 가야 하는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렇게 다시 나의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가고 있었다.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만 기억하면서...


올해 겨울이 조금만 따뜻했으면 좋겠다. 신정 연휴가 그렇게 추웠던

만큼 남은 날만은 공평해지기를 바래 본다.

내게 산타가 오지 않고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산타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바빴던 것이라면.... 나는 조금이나마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사람에 관한 리포트  (0) 2021.05.23
농부의 아내가 되어 주시겠어요?  (0) 2021.05.23
사진틀 그리기  (0) 2021.05.23
너무나 소중한 하루  (0) 2021.05.23
1분 30초의 행복  (0) 2021.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