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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사진틀 그리기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마치 실험실에 무슨 경쟁이 붙은 것 같다. :)

무슨 경쟁이냐 하면 자신의 책상 앞에 사진을 가져다 놓는 것 말이다.

지난 번에 자기 책상 앞에 사진을 놓아 두는 글을 쓴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한 사람의 책상 앞에 사진 하나가 늘었다. 

*!* 흑흑.. 난 아직 사진틀도 사지 못 했다. T.T *!*

이번에 사진을 얻어온(?) 형은 한 장도 아니고 5장쯤 얻어 와서

어떤 것이 제일 좋은지 고르다가 그 중에 가장 잘 나온 사진 하나를

액자에 끼워 넣었다.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정말로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갈수록 사진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_^

후후.. 그걸보면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틀 크기가 마치

자신의 애정의 크기인양 경쟁하는 거 같아서.. :)

*!* 난 그럼 나중에 브로마이드 얻어야겠다. ^^; *!*


비록 사진틀에 사진을 넣어 보관을 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몇 가지 사진은

내 다이어리 안에 소중히 들어 있다. 내 사진과 여동생의 사진, 그리고

곧 멀리 떠나는 남동생의 머리 짧은 사진. :)

여동생의 사진은 늘 가지고 나니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서울서 키즈 사람들을 만나면 한번씩 보여 주고는 한다.

덕분에 수많은 매제(?)가 생겼다. :)

하지만 언제 키우나?? 이제 겨우 여동생은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P


예전에는 그 사진들 중에 나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이 하나 있었다.

어쩌면 나의 가족이 될뻔한 사람이었다. 후후..

나도 실험실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진을 얻기 위해서 무척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주지 않으려는 사진을 억지로 핑계를 대고 빼았았고,

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중에 잘 나온 사진이 있어서 필름 주인에게

부탁해서 몰래 뽑기도 했었다. 후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사진을 얻으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또한 잘 나온 사진이라면 꼭 얻고 싶었던 이유도 또한 말이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그건 늘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늘 같이 있고 싶고

또한 그리워하는 마음에 말이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진을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늘 손에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 속에 한 사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위안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사진을 얻고 싶어 했을까? 후후..


하지만 그 사람을 늘 내가 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그동안 다이어리 속에 감추어 두었던

사진을 돌려 주는 일이었다. 후후..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미련은 오히려 빨리 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 후로 한동안 볼록했던 내 다이어리는 다시 얇아졌고 

늘 다이어리를 잡을 때마다 가벼워진 그 느낌은 내 마음이 비워진 만큼

아스라이 저며 왔다. 내가 늘 그랬듯이...


어쩌면 내가 사진틀을 사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아직 새 사진틀을

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또 다시 무엇인가를 잃어 버릴 듯한

두려움에 지래 겁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틀에 많은 사람을 떠올려 볼 수가 있지만 누군가를 그 사진틀에서

치워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늘 그 사진틀을 볼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어떤 이의 환영을 기억할 것 같아서 말이다. 


사진틀을 사기 보다는 내 마음 속에 사진틀 마저 그려 보는 것이 

나을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사진 마저 갈아 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두고 싶은 곳에 아무 곳이나 세워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가지게 될 한 사람만을 위한 사진틀에 한 사람만을 위한

사진을 꿈꾸어 본다. 더 이상 마음 속에 담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한 사람의 미소를 담은 그런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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