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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늘 그랬잖니...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사람마다 자신의 용돈을 관리하는 스타일은 가지각색이다.

한달치 용돈을 모두 찾아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나처럼 모든 돈을 은행에 집어 넣고 지갑이 빌 때마다 2, 3만원씩

찾아 쓰는 사람까지 말이다. 보통 한번 돈을 찾으면 3일에서 길게는

5일까지도 쓰게 되므로 자주 현금 지급기를 이용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일이다. 그 날도 지갑을 채우려고 현급 지급기에서

돈을 찾는데 카드가 나오고 나서 화면에 못 보던 문장이 하나 나타나는 

것이었다.


"피터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 날이 생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급 지급기는 나에게 축하

메세지를 내 보내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선배에게 했더니 아마 한달 내내

그 축하 메세지를 볼꺼라는 말을 해 준다. 

생일 축하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웬지 차갑게만 느껴지는 기계에게서 축하받는다는 것은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마치 상점에 들어 설 때 아무런 감정없이 꾸벅

인사를 하는 안내원의 인사가 반갑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늘 생일때가 되면 은근한 설레임이 일고는 한다. 

그리고 가끔은 꼭 생일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치 무슨 법칙인 것처럼 매번 그 사람은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있고는 한다. 

올해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바램은 부질없는 일이기에 아애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아는 듯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적었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삶은 익숙해져 가는 모양이다.



생일이라는 날이 웬지 달갑지 않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달력에서 그 하루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 본다. 차라리 그게 더 마음 편하지 않았을까?

그리운 이의 한마디가 참으로 아쉬웠기 때문에 차가운 기계의 축하가

더욱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가끔 되뇌이는 말....

늘 그랬잖니...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는 일은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일은 참으로 깊은
                           슬픔과 눈물 겨운 연기의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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