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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탑 쌓기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옛날에 본 공익 광고 하나.


어떤 사람이 미술관을 짓고 있는 공사장에 갔다. 거기서 인부 중에 

한 사람을 만났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 인부가 대답했다.


"네, 지금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졌다.


"저는요, 지금 일당 3만원어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에게 더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지금 아름다운 미술관을 짓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성당에서 피정을 갔었다. 피정은 수련회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피정의 의미 자체가 '피속취정'의 줄인 말로

속된 것을 피하고 조용함을 찾는다 라는 뜻이다.

우리가(성당 청년회) 찾은 곳은 경북 영주라는 곳의 '평화의

마을'이었다. 이 곳은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오갈 곳 없는

행려병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알콜 중독자이고

스스로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 6시에 

출발했다. 평화의 마을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경. 차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나는 차에서 내렸을 때 내가 과연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 밝혀진 불이라고는

작은 외등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하늘에 뿌려진

작은 별들. 어둠 속에서 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개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저 산속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일단 우리는 평화의 마을에 마련된 공소(상주하는 신부님이

안 계시는 성당)에 모였다. 수녀님의 지도하에 공소에서 서로의

생활을 나누는 생활 나누기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 기도와 함께

우리는 잠자리로... :)


아침에 일어 날 때 자명종 소리가 아닌 새소리를 듣고 일어나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야, 이런 곳이 아직 있다니.. :)

방에서 나오니 평화의 마을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어제 밤에 도착했을

때에는 공소만을 보았을 뿐이었는데 아침 햇살에 그 모습을 드러낸

평화의 마을은 그 이름처럼 평화롭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돌로 하나 둘 쌓아 올린 집들의 벽과 울타리, 그리고

동물들의 우리가 눈에 들어 왔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 길목에는

닭과 염소들, 그리고 말(진짜 타는 말. ^_^)이 우리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우리는 한 식탁에서 수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처음엔 조금 꺼려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탁이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수녀님은 우리의 멋적어 하는 모습과

약간의 불안한(?) 모습을 보고는 안심을 시키시려고 한 말씀 하셨다.

지금 이 식기는 식사 후 모두 삶은 거니까 걱정말고 드세요..  ^^;


식사 후 피정 내용 중에 이 평화의 마을 원장 수녀님의 강의가 있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까지 경험한 사람들을 데리고 살림을 꾸려 나가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말투도 수녀님답지 않게 억쎄고 투박(?)하셨다.


"여러분, 이 평화의 마을은 잠자리를 얻지 못해 길거리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과 알콜 중독으로 가족들에게서조차 버림 받은 사람들이

만든 곳이랍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겨 내기 위해서 하루에 

조금씩 이 마을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 스스로 돌을 쌓아 가면서

말이죠."


이 마을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단다.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공소의 작은 돌 하나도

그들의 손으로 직접 쌓은 거란다. 

아침 식탁에서 내가 옆에 앉기 꺼려하던 사람의 손으로 내가 아침에

감탄하던 이 마을이 말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 둘 씩 주위로부터 돌을 모아 길을 내면서, 그리고

또 담장을 쌓아 가면서 말이다. 내가 처음에 혐오했던 평화의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기기 위해서(술을 끊거나 혹은 마약류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 그 돌을 쌓았다고 한다. 그럼 난 지금 어떤 돌을 쌓고 

있는 것일까?

미술관의 인부처럼 곧 무너질 생의 탑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늘 내가 배움을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서

난 미술관을 짓는 그들의 아름다운 노력을 배울 수 있을까?


피정을 마치면서, 그리고 그 평화의 마을을 떠나면서 난 나에게

소중한 느낌을 안겨준 그들의 손이 더 이상 지저분한 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일부터 나는 또 나의 탑을 쌓아 갈 것이다.

하루 하루 쌓는 나의 탑이 하나 더 소중해졌으면 좋겠다.

평화의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으면서 말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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