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가끔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책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자꾸만 헤깔린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적은 경우에는 그럭저럭
기억을 해 낼 수 있지만, 등장인물이 무척이나 많거나, 아니면 맨 앞장에서
나왔던 사람이 느닷없이 저어 뒷장쯤에서 불쑥 튀어 나오면 나는 다시
책을 처음부터 뒤적거려 봐야 한다. 별로 머리가 나쁜거 같지가 않은데도
이상하게 사람 이름은 참으로 기억을 못한다.
가장 읽기가 힘든 책은 일본 사람이 쓴 책이다. 무슨 무라, 무슨 꼬.. 등등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이름이 같은 어미를 가지고 끝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을때에는 메모지에 그 사람에 대한
신상 명세서를 만들어 가면서 읽곤한다. 음냐....
'피그말리온'이라는 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랬다. 이 사람이 조각가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이름이 '피그말리온'이었는지
아니면 '아프로디테'였는지 가물가물 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이 조각가의 이름이 '아프로디테'인줄로만 알았다.
이름이 훨씬 이뻤으니까... :)
서점에 가서 어쩌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책을 보고는 아하! '피그말리온'
이구나.... 무릎을 탁 쳤다.... <<-- 으~~ 그저 나이가 들면.... :(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섬에 사는 조각가였다. 그는 이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결점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자기 손으로 결점이 하나 없는
여성상을 만들고자 했다. 며칠 몇달이 걸린후, 그는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조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곤, 그 여인상을 매일 쳐다 보다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고....
그 사람에게는 행운이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여신 한 사람이 그 여인상을
정말 따뜻한 피가 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아내로 삼았으니 말이다.
이 신화에 따라 생겨진 말이 피그말리온 컴플렉스라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자신의 이상형이 존재하고, 그 이상형을 찾아 젊은 시절을
방황하는 사람들...
아마도,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그 이상형의 조각을 만들어 놓고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툭 지나가는 말로, "저 애는 나의 타입이
아니야.." 라고 하는 자체가 그 이상형과 비추어 보고서 하는 말이니까
말이다.
주위를 보면 가끔 그 이상형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 환상을 내내 쫓아 다니다가 결국 전혀 이상형이
아니었던 사람과 살곤 하는 것 같다.
우스게 소리로... 가끔 이런 말을 듣으니까...
[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만났지?? ] ^_^
내가 전생의 그 피그말리온이었다면
난 어떤 모습을 그 안에서 찾아 낼까??
아마도 나도 나의 마음속의 작업장에서 그동안 망치질을 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미 조각되어 있는 그 모습을 가우뚱
고개를 돌려 보고는 다시 손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참동안 어떤 사람을 조각하고 있다가, 너무나 마음이 지쳐 오면
한동안은 망치를 내려 놓고 있다가, 또 다시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
조각을 시작하고...
언제쯤 그 조각이 다 끝날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여전히 그 망치질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유명한 조각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뭉텅뭉텅 생긴 이 대리석안에
갖혀 있는 그 아름다움을 파 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럼, 나의 마음속에 있는 이 대리석안에 갖혀 있는 사람은???
너무 망치질을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이쪽을 잘라 버리고, 또 전엔
저 부분을 잘라 냈으니 말이다. 벌써 그 크던 대리석은 이제 나의 키 보담도
작은 아주 볼품없는 돌조각이 되어 버렸다..
이젠, 나의 마음속에 있는 환상은 이러한 모습으로 없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 내가 그 돌조각들을 다 치워 버리고 나면 나는 이 조각장을
깨끗히 청소해 버리고 말꺼야...
그리곤, 아무것도 없는 텅빈 장소에서 환상을 그리지 않고...
나의 모델을 초대해야지...
나의 환상을 깨어 버리고, 내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그려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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