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1학년때부터 친하게 지내오던 우리 친구들...
그 친구중에 한명이 뒤늦게 내일 졸업을 하게 된다.
화학이 전공이었던 이 친구는 물리를 부전공하느라고 다른 친구들보다는
일년이 더 걸렸기 때문이었다. 진학도 광주과학원으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방학동안 서울서 지내던 녀석이 어제 내려왔다.
방학동안 연락을 자주 못했지만 대강 그 친구의 방학생활은 그 전에
논문을 쓰고 지내던 방식(?)을 보아선 익히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난 항상 그 친구가 떠오를때마다 생각하고는 했다.
음... 지금도 이대앞에서 기웃거리고 있겠지.... 하고...
어제 통나무집(우리 학교 교내 술집)에 있다는 전갈을 받고
모처럼 술도 한잔 할겸, 친구 얼굴이 얼마나 뽀얗게 변했는지 볼 겸,
또 얼마나 세련되어졌는지 볼 겸... 겸사겸사 통나무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고, 이야기가 전개되어져 갈 즈음
그 친구가 일순 분위기를 잡더니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단다.
우리는 무슨 일일까 궁금해져서 시선을 그 친구에게 모았다.
"나, 결혼해..."
.........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침묵....
조용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담배를 입에 무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대체 방학때 무슨 일이있었지??
이 친구가 2학년때부터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서울에... 국민학교
동창이었는데 대학에 와서 연락이 되기 시작해 계속 전화로 사귀던
친구였단다. 나도 물론 그 여자애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다. 우리가
모이는 그 그룹에 한 멤버였던 친구라 우리 모임에 가끔 이야기도
나오고 술자리에서도 듣던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이야기는 포기한다는 말이었었는데... 한때는 술을 먹고 죽겠다고
소주를 3병까지 혼자 마시고 정신을 잃기도 했는데...
4년동안 내 친구는 그 아가씨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 사이 포기도 하고 싶었고, 실망도 많이 했었지만 결국 열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는 없던가... 아가씨는 나중에 그 친구가 없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말했다..
일주일에 두어번쯤 매일 전화를 했는데, (내가 그 친구 이사할때 도와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 책상안에 수북히 쌓여 있던 전화카드를
본적이 있었다. 거진 100장에 가까운 분량이었다.) 그 아가씨가 잘 받아
주면 그 일주일은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힘이 났고, 아니면 그 한주일은
기운도 없고 풀이 죽어 지냈다고... 후후.. 하지만 지금은 얼굴 가득히
행복을 떠 담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그 아가씨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친구와 참
어울려 보이는 아가씨였다. 하지만 그 친구... 우리에게 이야기를 계속
한다. 지금 그렇게 되고 보니, 웬지 겁이 난다고...
자신에게 한동안은 그렇게나 써늘하게 굴던 아가씨가 지금은 자신에게
그렇게 자상하게 해 주는 것이 겁이 난다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 어찌나 밉던지... 후후...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날 너무나 갑자기 주어지는 것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닌 모양이다. 자신이 겁을 내니 말이다. 그렇게 겁을 내면 사람은
그 일을 의심하게 되고, 그러면 좋았던 일도 어려워지고 힘이 들어
질 수 있다. 우리는 변화에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내면으로는 그 변화를
싫어 한다고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 보수적이 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나가는 속에 행복도 묻혀가고, 때론 고민도
묻여가며 그렇게 서서히 변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나는 그 친구의 그런 모습에 한마디 충고를 했다.
너무 의심하지 말라고... 지금 너의 모습이,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가장 너에게 중요한 순간이라고...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는 친구를 보며... 웬지 내 가슴이
어려워지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포스테크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