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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아노말리사 (Anomalisa) - 2015년

by 피터K 2025. 12. 14.

굉장히 독특한 영화

 

영화는 상상을 자극한다. 어쩌면 그게 영화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영화가 제일 좋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이상하게 내가 꼽는 최고의 영화는 늘 바뀌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뛰어난 스토리를 풀어 내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스타워즈 (Star Wars; 1977)"이거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같은 걸 최고 영화로 꼽곤 한다. 

 

상상력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정말 특이한 영화들이 많은데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영화, "아노말리사 (Anomalisa; 2015)"도 굉장한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였다. 먼저 영화는 실사 영화가 아닌 100% 스탑 모션 (Stop Motion)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아동/청소년 등급이 영화가 아니라 R-rated 영화, 즉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이다. 왜냐하면 스탑 모션 인형으로 최초로 베드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사실적으로. 

 

이 영화도 알고리듬을 통해 올라온 유튜브 영화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눈길을 끌었던 첫 인상은 이 영화의 각본/감독이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라는 것이었다. 아래 따로 소개하겠지만 꽤나 유명한, 아니 상당히 유명한 각본가이다. 익히 알고 있던 이름이라 이 사람의 영화라는 것, 그리고 특이하게 실사가 아닌 스탑 모션 영화라는 것, 그럼에도 R-rated 영화라는 것에 너무나 흥미가 생겼다. 다행이 내가 본 영화 소개 유튜브 내용은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어떤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이 "찰리 카우프만"을 믿고 있었던게다.

 

언제 가격이 떨어지나 일년 넘게 보고 있다가 최저가가 아니었는데도 일단 $10 이하로 떨어져 얼른 장바구니에 넣어 구매했다. 배송되고 나서 봐야지 봐야지 또 미루다가 11월 중순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굉장히 어려운 영화

 

영화는 상상을 자극한다. 그런데 종종 어떤 영화는 관객들의, 적어도 나의 상상력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영화가 어려워진다. 진행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그랬다.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는 아주 아주 스토리가 독특하고 그래서 엄청난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살짝만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쳐지게 된다. 그러면 영화가 어려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어려운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으로 영화의 소개/해설을 찾아 보게 되고 그제서야 그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내가 흘려 보내고 따라 잡지 못한 그 장면이 그런 뜻이었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면 살짝 배신감도 느껴진다. 막상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난 그 온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셈이었으니까.

 

영화 해설 중에, 특히 아이돌 영화 해설가로써 알려진 이동진 평론가님의 해설을 듣고 있노라면 그 장면 하나 하나에 숨겨진 이야기, 그 장면이 나타내고자 하는 장면에서 대해서 알게 되긴 하지만 그만큼 알고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관객으로서는 그런 영화가 성공한 영화가 아닌 실패한 영화로 느껴진다. 

 

"감독이 여기서 이런 삐딱한 사선으로 장면을 처리하고 뒷 배경은 어둡게, 악당은 얼굴이 환하게 조명이 비치고 눈가가 어둡게 보이는 반면 그 앞의 주인공은 반대로 얼굴은 어둡게, 그러나 눈가는 환한 조명으로 처리하는 것은 주인공이 그만한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지요"

 

훌륭한 해설이지만 정작 볼 때는 장면이 사선 처리였는지, 설사 악당과 주인공 얼굴의 조명이 이렇게 서로 다르게 비추어졌다는 걸 알아챘더라도 저런 의미였는지 이해한 관객이 아무도 없더라면 아무리 감독이 의도했더라도 감독은 관객들에게 아무 것도 전달해 준게 없는 것이 된다. 그럼 그건 실패한 영화다.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찰리 카우프만은 그런 점에서 반은 성공하는 시나리오 작가이고 반은 실패한 작가이다. 항상 그의 시나리오는 신선하고 정말 생각도 못해 본 상황을 만들어내며 어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 면에서는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이다. 그런데 그 기발한 상황과 상상 속에서 무얼 이야기 하고 싶은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 평론가의 해설을 듣고서야 아, 그런거야라고 하는 면이 있는, 종종 실패한 작가이다. 그의 경우는 아니지만 이렇게 관객이 이해는 정도와 영화 평론가의 이해 정도가 달라 영화 평론가 점수는 만점에 가까운데 관객의 점수는 바닥인 영화, 혹은 그 반대인 영화들도 꽤 있다.

 

찰리 카우프만은 TV 시리즈, 시트콤 작가로 활약하다가 1999년 신선한 상상력의 시나리오 하나를 가지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뷰한다. 당시 거의 모든 비평가상을 휩쓴 그 영화는 바로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1999)"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분 "존 말코비치 (John Malkovich)"가 누군지 아실 것 같지만 영화를 잘 모르는 분이라도 이 분을 여러 영화에서 보셨을거라 생각한다. 악당 역할의 단골이신 분이다.

 

존 말코비치 (John Malkovich), 1953년 생으로 왠만한 액션 영화의 악당을 생각하면 이 분이 자연스럽게 떠 오를 정도다. 14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신 베데랑 배우.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1999)"는 크레이그라는 주인공이 천장 높이가 5피트(150cm) 밖에 안 되는 7 1/2층에 위치한 (즉, 7층과 8층 사이에 위치한) 어떤 회사에 취업하게 되는데 거기에 서류함 뒤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궁금증에 그 안으로 기어들어갔더니 그 구멍은 영화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으로, 즉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포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 15분간 머무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존 말코비치 본인도 알게 되어 스스로 이 포탈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본인이 본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의 주인공 크레이그 역에는 존 쿠삭 (John Cusack), 그리고 카메론 디아즈 (Cameron Diaz)가 나오는데 특히 카메론 디아즈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로 나와 그녀인지 못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민낯의 무서움이여....

 

그리고 2004년 찰리 카우프만은 또 다른 멋진 시나리오로 돌아 온다. 바로 미셀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에 한편으로 꼽히는 명작으로 남자 주인공역의 "짐 캐리 (Jim Carrey)"는 코메디 영화 뿐만이 아니라 정극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여자 주인공은 "타이타닉 (Titanic)"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 (Kate Winslet)".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MJ, "커스틴 던스트 (Kirsten Dunst)", 마블의 헐크, "마크 러팔로 (Mark Ruffalo)",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일라이저 우드 (Elijah Wood)"도 나온다.

 

이 분이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fman). 1958년 생이니 2025년 기준 올해 67세 되시겠다. 각본 데뷰작이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그 유명한 짐 캐리의 "이터널 선샤인 (2004)"도 이 분 각본.

 

그리고 마침내 이 영화 "아노말리사 (Anomalisa; 2015)"의 각본과 감독으로 돌아온다. 어렵지만 흥미로운 영화, 상상력으로 가득찬 스토리로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그래서 때론 호/불호가 반반 갈리지만 평론가들에게는 늘 극찬을 받는 그런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영화 평론가들이 극찬한 내용들로만 가득차 있다. 그만큼 그의, 그를 위한, 그의 의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프레골리 증후군 (Fregoli delusion)

 

사실 영화를 보는 중반까지는 이 주인공 마이클이라는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정보없이 영화를 보는데 첫장면부터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 나오는데 난데 없는 남자 목소리로 나오지를 않나 그 이후에 호텔 라운지에서 여러 여성 캐랙터를 만나는데 모두 남자 목소리로 나오지를 않나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 이야기는 따라갈 수 있는데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리사라는 여성을 만날 때 그때만 여성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서로 닮아가며 결정적으로 집에 돌아 왔을 때 집에서 열리는 파티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같은 모양일 때 그 때서야 이 사람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영화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튜브의 영화 해설들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된 사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이클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바로 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delusion)이라는 것이었다.

 

이 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delusion)은 여러 낯선 사람들이 사실은 변장한 한명의 동일 인물이라고 믿는 희귀한 망상 증세를 일컫는 말로 편집증이나 뇌손상과 관련 있는 증세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 증후군을 알게 되면 모든 영화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왜 남자 주인공 마이클, 여자 주인공 리사를 빼고는 모두 한 사람의 남자 목소리인지, 그리고 전혀 새로운 목소리 리사를 만났을 때 그렇게 집착하고 빠져 들었는지 말이다. 아마 영화의 가장 여러웠던 점은 이런 증후군이라는 것, 정말 살면서 처음 들어본, 그래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증세를 영화 전반에 걸쳐 깔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마이클 스톤이 머무르는 호텔 이름 자체가 "The Fregoli"이다. 그런데 이런 증후군에 대해서 알지 못한채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영화 볼 때는 좀 특이한 이름의 호텔이네 정도로 밖에는 받아 들이지 못했다.

 

주인공 마이클이 머무르는 호텔 이름 자체가 "The Fregoli"인데 과연 영화를 보는 원어민 조차 이 단어의 뜻을 알아채고 이해 했을까?

 

남자 주인공 마이클, 그리고 여자 주인공 리사, 그리고 나머지 모든 다른 인물은 한가지 얼굴과 목소리. 그래서 특이하게 이 영화의 출연진, 즉 성우는 딱 세명이다. 

 

이 세사람이 영화 "아노말리사"의 출연진 전부이다.

 

 

모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담당한 "탐 누난 (Tom Noonan)"이란 분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신 조연급으로 시진을 찾아 보면 어느 영화에선가 한번쯤 본 그런 배우이고, 남자 주인공 마이클 역의 "데이비드 슐리스 (David Thewlis)"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리무스 루핀 교수역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Stop Motion Animation)

 

그런데 하필 이 영화는 실사 영화가 아닌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이란 방법을 택했을까. 직접 찾아본 내용을 아니지만 남녀 주인공을 빼고는 모두 같은 얼굴 형태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실사 촬영이 불가능해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수많은 인물들을 일일이 CG 처리 할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 주는 잘만든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하면 가장 먼저 떠오느는 것이 "월리스 앤 그로밋 (Wallace & Gromit; 1989)"인데 초창기 세 에피소드를 보면 부자연스러움과 클레이 퍼펫에 진하게 묻어 있는 제작자의 손금마저도 보이는 수준이다. 나중에 장편으로 만들어진 작품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2005)"에는 액션 장면들에서 CG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또 다른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인 "크리스마스의 악몽 (The night before Christmas; 1993)"은 CG 없이 100% 수작업 작품이다.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수작업 작품이라도 정밀도나 테크닉의 발달로 인해서인지 2015년 작품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꽤나 정밀한 움직임과 생생함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에의 베드신이라니.....

 

아래 유튜브 링크는 "아노말리사" 예고편 링크이다.

 

https://youtu.be/j9jFsPX7_L0?si=tLbMGVHhtblazUDQ

 

 

 

 

아래 첨부된 사진들은 전부 imdb.com 사이트의 "아노말리사 (Anomalisa)" 영화의 작품 모음에 올라와 있는 것들을 캡춰해서 이용한 것이다. 

 

영화 시작의 첫 장면 중 하나인데 얼굴 윤곽선이 너무 뚜렷하게 보여서 첫 10분 간은 소위 "불괘한 골짜기"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다른 인물들은 저만큼의 윤곽선이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 불편함은 없어졌다.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는 꽤나 괜찮았지만 얼굴 윤곽선 때문에 한동안은 낯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얼굴 주위의 윤곽선이 너무 두드러졌다. 그렇게 익숙해져야 하는데 두번째 혼란스러원 부분은 남자 주인공이 비행기 안에서 아내에게서 받은 편지/쪽지를 꺼내 읽을 때였다.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나 뚜렷한 남자 목소리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슬리는 것은 눈에서 귀까지 이어진 윤곽선. 처음엔 안경을 쓴게 아닐까 헤깔리기도 했다.

 

퍼펫들의 다른 부분, 옷, 배경, 움직임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조금씩 영화에 스며들었지만 저 눈가의 윤곽선은 정말 오래 갔다. 정말 처음엔 안경 쓴거 아닐까 싶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일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렇게 뛰거나 하는등의 움직임이 빨라지면 스탑 모션의 어색함이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 리사와 함께 더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기 방으로 데려가는 마이클. 호텔 복도의 전경이라든가 방들의 세트가 꽤나 정교하다. 긴 복도를 걸어 오는 두 인형의 움직임도 꽤나 자연스럽다.

 

세트의 정교함은 뭐 하나 꼬집을만한 것이 없을만큼 세세하다. 방까지 리사를 데려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유일하게 똑같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자꾸만 이야기를 시키고 노래까지 부르게 만든다.

 

 

퍼펫도 퍼펫이지만 호텔방의 저 디테일은 정말 완벽주의자가 아니면 도저히 완성해 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부분인 것 같다. 이렇게 먼 원경으로 구도를 잡으면 실사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곤 더 이야기를 듣자며 침대에 같이 눕는다. 호텔 방에 남녀 둘이 저렇게 누워있다는면 그 다음 수순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 그 뻔한 장면이 이 인형들로 이루어진다. 영화사에 유일하게 남은 인형들의 베드신이다. 그것도 엄청 실감나게 지금까지 유지해온 디데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같이 한 침대에서 보낸 후 아침을 맞이하는 두 사람. 늘 우울하고 자신감 없게만 보이던 리사가 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캡춰된 장면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리사는 오른쪽 눈가 주변에 흉터가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따돌림도 받았고 스스로도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머리로 그 흉터를 가리고 다니고 매사에 자신감 없이 행동한다. 그런데 주인공 마이클로부터 칭찬을 듣고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 그러면서 더 이상 자신의 흉터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마이클이 자신의 프레골리 증후군으로부터 야기된 내면적 두려움을 리사의 목소리로 인해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것처럼 리사도 더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해 간다.

 

그런데 룸서비스로 아침을 먹으며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변해간다. 탈출구를 찾은 줄 알았는데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주인공 마이클.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자기가 아내와 이혼하겠으니 함께 하자고 설득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변해간다. 리사도 잠깐 망설이다가 동의를 하지만 그 때부터 다시 마이클은 자신의 굴레에 갖히게 된다. 리사의 목소리도 중첩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다른 이들과 똑같이 남성의 목소리처럼 변해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마이클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마이클은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예정된 강연도 망쳐 버린다. 마이클이 함께 하자고 했지만 리사는 아무래도 이번에는 아닌 것 같다며 자신의 동료와 함께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간다. 여기서 그녀의 독백은 그녀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결국 어느 굴레에 갖혀 있는 건 마이클 자신이라는 뜻이된다.

 

집으로 돌아 오니 아내가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모두 똑같다. 여전히 아내의 목소리도 똑같이 들린다.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닌 셈이다.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문제는 스스로 안에 갖혀 있는 셈이다. 집으로 돌아와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모두 한결같다. 잠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것 같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 왔다. 결코 벗어 날 수 없는 굴레처럼.

 

주인공 인형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보면 생각보다 인형들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이걸 하나씩 움직여 가며 얼굴 모양을 바꾸어 가며 한 프레임 한 프레임씩 찍는다는 건데 정말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

 

성격 급하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 게다가 인형들도 작아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움직임의 정교함은 정말 부드럽다.

 

이 정도면 선택 장애가 생길 것 같다. 이 중에 어떤 걸 사용해야 인형 얼굴에 적절한 표현/감정을 시나리오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난 못할 것 같다.

 

 

 

영화 제목 "아노말리사 (Anomalisa)"는 존재하는 영어 단어가 아니다. 리사와 하루 밤을 보낸 후 그녀와의 대화 중에 그녀가 특별하다는 뜻으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Anomaly"라는 단어는 "특별한 사람/변칙적인 어떤 것"이란 뜻이고 거기에 여자 주인공 이름 "Lisa"를 붙여서 "아노말리사 (Anomalisa)", 즉 주인공 마이클에게 "아주 특별한 리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렇게라도 천편일률적인 동질성의 자신의 세계에서 특별해진 누군가를 지칭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세계를 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