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호텔 체크 아웃
빡빡했던 여행 일정과 전날밤 담뱃대 골목, 옌다이셰제를 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들어와서 오늘 아침은 늦게까지 침대에 있고 싶었지만 다른 모든 이들이 자금성 구경을 간다고 사인업을 해서 나도 빠질 수는 없었다. 말이 통하는 중국계 다른 매니저는 다른 한두명과 함께 쇼핑 간다고 빠졌고 오전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 가는 한국 오피스 매니저 두분은 조금 후 따로 공항으로 향한다고 한다. 나머지 미국과 독일에서 온 다른 매니저들은 아침 일찍 자금성 관광을 위해 7시 30분에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 모였다. 보통 이런 경우 짐을 호텔에 맡기고 움직이지만 미국행 비행기가 오후 5시라서 2시쯤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해서 짐을 전부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는 미니밴에 실어 두었다. 이 미니밴을 타고 자금성으로 이동하는데 우리가 자금성 관광을 하는 동안 이 미니밴들은 따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점심 시간에 맞추어 만나기로 했단다.
베이징에 와서 반드시 가 보아야 할 한 관광명소가 있다면 바로 이 자금성일거다. 게다가 따로 내가 돈 내서 가는 것도 아닌 회사 차원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 주면서 가지고 하면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안 간다면 비행기 출발 시간 전까지 어디 따로 갈 곳도 있을 곳도 없었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그냥 바쁘고 정신 없었던 출장 후에 주어진 하나의 휴식이자 보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미니밴에 올랐다.


사람들을 태운 미니밴이 베이징 시내를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자금성 우측 도로변이었는데 거기서 내린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오늘의 가이드였다. 다들 오늘 베이징을 떠나는 외국인들이니 가이드가 영어로 모든 안내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가이드의 영어는 정말 완벽했다. 발음도 발음이지만 영어 표현도 거의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자기가 옛날엔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했던가. 발음만 들어서는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화교 같은 분위기였다. 덕분에 자금성 내부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면 자세하고도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다른 여느 관광지처럼 각자에게 귀에 걸 수 있는 리시버를 나누어 주었고 길을 따라 자금성으로 입장할 수 있는 오문(午門) 방향으로 다같이 움직였다.
자금성(紫禁城) 관광
우리는 이곳을 자금성(紫禁城)이라고 부르지만 보통 중국 사람들은 고궁(故宮)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안내표지판이나 지도를 보면 전부 고궁(故宮)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이 자금성(紫禁城) 1406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1421년 명나라 영락제가 거주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명나라 왕실의 거주지가 된다. 그 전에는 수도가 난징(南京)이었고 그가 베이징(北京)으로 천도를 하면서 새로운 궁궐 거주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자만 보면 남쪽 수도에서 북쪽 수도로 이사온 셈이다. 그리고 1924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알려진 푸이가 쫓겨날 때까지 총 24명의 명/청 시대 황제들의 살았던 중국 마지막 두 왕조의 거주지이자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더랬다. 전체적인 모습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약 980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9,999개의 방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8,886개이고 일만개의 방이 아닌 하나 작은 9,999개의 방이라는 이야기는 인간세상이 아닌 천계에만 일만개의 방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일단 자금성 입구로 가기 위한 길을 따라가다보면 엄청난 높이의 성벽을 마주하게 된다. 높이는 11m에 달하며 그 주위에는 깊이 6m의 해자가 둘러 쌓여 있다. 내내 강변 같은 길을 따라 갔는데 그게 실제로는 해자였던 것이다. 경복궁의 담벼락 높이가 평균 5m라 그 옆을 걷다 보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금성의 성벽 높이는 훨씬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중국은 옛날부터 우주의 중심은 자미원(紫微垣)이라는 곳이고 그곳이 천자/황제가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서 자(紫)를, 그리고 황제 이외에는 아무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금(禁)을 가져와 궁궐 이름을 자금성(紫禁城)이라고 지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 금지된 지역이라는 의미(禁)만 따와서 영어로는 "금지된 도시, Forbidden City"로 불리운다. 그래서 영어로 검색하려면 이 Forbidden City로 검색해야 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중국 자금성은 우리 나라의 경복궁보다 몇배는 더 크고 화려하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당시의 국력이나 규모로만 보면 당연히 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경복궁은 일제 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그 앞에 한동안 조선총독부 건물까지 있었으니 경복궁을 방문해 보면 생각보다 아담하는 느낌이 있었다. 부지는 넓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부분이 비어 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다. 너무 아재스러운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 아니 국민학생 때 그 조선총독부 건물은 정부청사 건물이었고 대학생 때에는 그 건물이 중앙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실제 여동생을 데리고 구경 갔던 기억이 있다. 음.... 오래 살긴 했나 보다.
자금성은 실제 베이징 황성의 내궁궐에 해당한다. 위에 보이는 위성 사진 전체가 베이징 황성을 나타내며 윗쪽 빨간 사각형 부분이 자금성이다. 그리고 사진에 맨 아래 녹색 동그란 부분이 우리가 흔히 아는 천안문(天安門)이다. 이 자금성과 천안문 사이의 구역은 태묘와 사직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면 지금은 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자금성의 전체 크기가 961m x 753m, 반면에 경복궁의 크기는 800m x 550m 정도가 되기 때문에 사진에서 비교해 보면 크기가 많이 차이가 나지 않지만 경복궁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없어진 전각들이 너무 많이 작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전각의 규모만 보더라도 차이는 확실히 난다. 아래에 사진으로 보겠지만 자금성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태화전(太和殿)은 경복궁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근정전(勤政殿)과 비교해 보면 규모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다만 서로 다르다는 건 당연한 것이고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각자 그 나름의 멋이 있으니까 말이다.
자금성 - 오문(午门/午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천안문(天安門)은 황성의 남문이고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라고 불리우는 문이다. 그래서 자금성의 관광은 이 오문(午門) 앞에서 시작한다. 바깥쪽에 위치한 검색대를 통과해 매표소 방향으로 들어 가고 오문의 문턱을 넘는다. 정말 중국에는 검색대가 너무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는게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굳굳하게 검색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는 여러 건물의 이름들과 장소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 뜻을 제대로 알려면 한글 이름과 함께 한자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가능하면 한자도 함께 넣기로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간체자를 쓴다. 획수가 복잡한 글자가 많기 때문에 이를 간략화한 글자를 대신 쓰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는 정체자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은 여전히 정체자를 쓴다. 그래서 이 오문도 간체자로 쓰면 午门이 되고 정체자로 쓰면 午門이 되는데 여기서는 가급적 정체자로 쓰기로 한다. 젊은 중국 친구들 중에는 이 정체자를 모르는 이도 꽤 있다고 한다.


일단 규모라는 면에서는 입이 딱 벌어질만 하다. 지난 2년간 로마/피렌체/바르셀로나 등을 다녔음에도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로마의 콜로세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단일 구조물이고 이 자금성은 전체 궁궐의 규모를 가지고 있어 크기만 가지고 본다면 자금성 쪽이 훨씬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 한 상징적인 건물이기는 하다.
입구부터 거대한 오문(午門)을 지나 그 앞에서 가이드가 맨처음 보여 주었던 그 지도를 꺼내 대략적인 자금성의 역사와 방문할 장소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 오자며 일행을 좌측 문으로 안내했다. 그 문을 넘어가니 저 멀리 화장실이 보였고 화장실을 다녀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안쪽, 즉 북쪽 방향으로 이끌며 전시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한번쯤 가서 구경할만한 장소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안 온다며 꼭 보아야 할 장소라는 것이다. 건물 안은 대부분 황제가 사용하던 가구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황제의 물건답게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된 작품일테니 섬세함과 조화는 지적할만한 부분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만 기억하게 되는데 그 자리를 만들어낸 장인들을 기억하는게 종종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감탄하는 건 저 물건들의 아름다움이니까 말이다.

자금성 - 태화문(太和门/太和門)

다시 오문(午門) 앞으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본전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작은 인공강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금수하(金水河)라고 하며 풍수지리에 의거해 집 앞에 흐르는 물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화재를 대비한 소방용수로도 썼다고 한다. 경복궁에도 이러한 인공수로의 모습을 발굴로 찾아 냈는데 금천(禁川)이라고 부른다.
베이징에는 자금성, 서울에는 경복궁이 있기 때문에 자꾸만 둘을 비교하게 되는데 비교함으로서 어떤 점들이 다른지 이해하는 면도 있다. 아무래도 중국과 한국이 왕조국가이던 시절, 중국은 황제로 칭하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왕으로 칭하면서 그 서열을 유지하며 지냈는데 그래서 궁궐에서도 그런 차이가 있다. 중국은 황제국으로써 많은 경우 "5"이란 숫자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황성의 정문인 천안문(天安門)으로부터 궁궐의 정전인 태화전(太和殿)까지는 천안문(天安門)을 포함 다섯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이 금수하(金水河)에도 다리가 다섯개가 놓여 있다. 반면에 그보다 하나 낮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경우 이 "5"이란 숫자가 아니라 "3"이라는 숫자에 맞추어져 있다.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光化門)부터 정전인 근정전(勤政殿)까지는 세개의 문을 지나게 되며 금천(禁川) 위에 놓인 다리 영제교(永濟橋)도 갯수가 세개이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데 이 태화문(太和門)도 1886년에 한번 전소된 적이 있고 지금 건물은 1894년에 복구한 건물이다. 그 앞 광장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명나라 때에는 이 앞에서 신하들의 아침 조회를 받았다고 한다. 경복궁도 마찬가지이지만 궁궐의 가장 가운데 길은 황제만이 걸을 수 있는 어도(御道)이고 다른 이들은 그 옆의 길을 다녀야 했는데 사진에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태화문(太和門)의 가운데 길은 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것들로 장식이 되어 있는 길로 되어 있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계단을 오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좌우에 신하들이 다니게 되는 다른 문을 통해 한걸음 더 안으로 들어간다.
자금성 - 태화전(太和殿)

경복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당연히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이고 자금성은 태화전(太和殿)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특이하게 3층 대리석 기단을 먼저 쌓아 그 위에 건물을 지어서 더 더욱 화려하고 웅장미를 보여 준다. 그동안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다가 1645년 청나라 순치제가 지금의 태화전(太和殿)이라고 새로 명명했다고 한다. 황궁의 정전인만큼 자금성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며 중국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목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명나라 때에는 실제로 이 곳에서 황제가 정사를 논했으나 청나라 때부터는 황제의 즉위식, 결혼식, 사절을 맞이하는 예식 등 중요 행사를 치루는데만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정전이니 여기서 머무른 24명의 황제는 모두 여기에서 제위를 물려 받는 의식을 치루었다.


태화전(太和殿)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장면이 1987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였다. 이 영화는 3세의 나이에 서태후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푸이"의 인생을 따라가는 영화인데 자금성에서 실제 촬영을 한 유일한 영화로 남아 있다. 만주국, 신해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까지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쩌면 일부 중국의 치부가 포함될 수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는데 무려 천안문에 걸려 있던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까지 영화 촬영 내내 내려 주었다니 정말 전폭적인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떠올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황제의 자리에 앉게된 3살의 "푸이"가 어른들의 사정도 모르고 즉위식 중간에 태화전(太和殿) 안에서 장막을 걷어 들고 앞마당으로 나가는 장면이었다. 이 때 이 태화전(太和殿) 앞마당을 가득 채운 문무 백관 대신들이 "황제 만만세"를 외치며 다함께 절을 하는 장면은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아래 유튜브의 영화 클립 링크를 달아 놓았다.
https://youtu.be/hm9OHshFDco?si=5MVXjN_XOZZC0HHa
3단 대리석 위까지 올라가 태화전(太和殿) 바로 앞에까지는 갈 수 있으나 태화전(太和殿) 계단 위로는 올라갈 수 없게 통제하고 있어 안을 제대로 들어다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천장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황금 용이 조각되어 있고 황제에게 반역할 마음을 가진 이가 그 아래에 서면 이 용이 여의주를 떨어뜨려 그를 죽인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클립에 나오는 화려한 황제의 용상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만 남는다.

태화전(太和殿)을 돌아 서면 3층 대리석 기단의 우아한 스타일이 또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앞에서만 보았을 때는 태화전(太和殿) 자체의 웅장함에 잘 몰랐었는데 뒷편에서는 다른 건물들과 어울어지고 각각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각된 모습이 획일적으로만 느껴졌던 전체 풍경에 색다른 모습을 가져다 주어 다채로움을 이끌고 있었다. 이 3층 대리석이 어떤 이름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이 그 이름 이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금성 - 진보관(珍寶館) / 황극전(皇極殿)
궁궐 자체는 어도(御道)를 기준으로 하는 중심축을 따라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물들은 모두 이 중심축 위에 놓여 있는데 종종 좌우로 인상 깊은 건물들이 위치하기도 한다. 경복궁의 경회루처럼 말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끌고 궁궐의 우측 방향으로 이끌었다. 아주 넓은 광장 같은 구역을 지나 우리가 찾아간 곳은 황실의 보물이 보관되고 전시되어 있는 진보관(珍寶館) / 황극전(皇極殿) 구역이었다.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아홉 마리의 용이었다.


지금까지 돌아본 자금성의 건물들과 기와는 자주색과 붉은색 계통의 색으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태화전(太和殿)을 이고 있는 하얀색 대리석 기단이 특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려한 색상의 벽을 만나게 된다. 구룡벽(九龍壁), 영어로는 Glazed-tile Nine-dragon Screen이라고 불리우는 이 벽 장식은 여러가지 다른 색상으로 채색이 되어 있어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이곳만 따로 떼어서 본다면 완전히 다른 장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중국에서 "9"이라는 숫자는 완벽함을 나타내며 천자의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유리 타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화려함은 어디 가지 않은 듯하다.
구룡벽(九龍壁)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몇개의 문을 지나 또 하나의 웅장한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황극전(皇極殿)으로 불리우는 이 건물은 실제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70세 생일을 맞이해 축하 사절을 맞이했던 건물이다. 이 때 처음 깨닫게 된 건데 태화전(太和殿)을 비롯한 다른 건물들의 문루에 그 건물 이름이 적힌 한자 현판이 세로로 붙어 있는데 이 황극전(皇極殿)과 주변 다른 건물들의 현판에는 한자와 더불어 그 옆에 세로 방향으로 아라비아 문자 같은 문구가 같이 적혀 있었다. 이 아라비아 문자 같은 글씨는 만주족 문자로 자금성 전체는 아니고 일부 청나라 때 개보수/신축된 건물들 현판에는 한자와 만주족 문자가 같이 적혀 있다고 한다. 청나라 황실 자체가 만주족이기 때문에 이 만주족 문자를 현판에 같이 적어 넣음으로써 만주족이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란다.



현재 황실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라서 그런지 이 황극전(皇極殿) 건물 뒷편과 우측편 건물에 황실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실이 꽤나 커서 다 둘러 보지는 못했고 한쪽편 전시실만 구경했는데 우리가 방문한 전시실 쪽은 비교적 큰 물건들, 황제가 쓰던 여러 가구들을 전시해 놓았고 방문하지 못한 다른 쪽은 보석류도 있다고 했다.
사실 청나라 때의 화려한 황실 보물을 보고 싶으면 자금성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台北故宫博物院)에 가야 한다. 중일 전쟁 당시 자금성에 있던 황실 보물들이 일본에 약탈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당 정부가 이들을 난징과 상하이 일대로 옮겼었다. 후에 다시 국공 내전에 발발하면서 이 보물들은 자금성으로 다시 되돌아 오지 못하고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망명할 때 가장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3천 상자 정도를 함께 가지고 갔다. 그리고 그 보물들은 1965년 개관한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 보관/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4월 대만 신주 출장 갔다가 돌아 오는 날 시간이 남아 혼자 이 고궁박물관에 가 본 적이 있다. 정말 거기에서 보는 청나라 시대의 보물들은 격을 달리하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누구 말마따나 알짜배기는 대만에 있고 베이징에는 쭉정이만 남았다는 말에 100% 동감할 정도로 말이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가져간 자금성 유물의 양이 약 29만점, 난징과 다른 지역의 유물을 포함하면 모두 60만점에 달한다고 하는데 몇년동안 전란을 피해 옮겨 다니다가 그 중에 잃어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들 중 추리고 추려서 이만큼이라고 하니 정말 원래 황실 보물의 양과 질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다. 잃어 버리고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래 유튜브 링크는 대만 방송사에서 만든 한국어 고궁박물원 소개 영상이다.
https://youtu.be/ad_RVDaZP8M?si=wHI0YkOmJVlEPRKu
가장 유명한 건 옥으로 만든 배추와 실제 동파육과 구별이 안될 것 같은 육형석인데, 이 중에 옥배추는 서태후가 가장 아꼈던 보물이라고 한다.
두 나라의 역사나 최근에 이어지고 있는 긴장들을 가지고 논할 바는 아니지만 개인적은 느낌은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 그 보물들이 있지 않은게 아쉬운 느낌인건 사실이다. 마치 고대 이집트 문명의 가장 훌륭한 예술품들을 보기 위해서는 뜬금없이 영국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 가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자금성 - 어화원(御花园)
이제 자금성의 마지막 구역, 내전으로 들어 간다. 이 곳은 황제와 황후의 주거 공간으로 건청궁(乾淸宮)과 교태전(交泰殿)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이다. 이 구역을 지나면서 눈으로 건물들을 쫓아가기 바빴는지 블로그를 위해 사진을 찾으니 이 안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이 곳까지 오면서 가이드가 뭔가 이상한 점이 없었냐고 우리들에게 묻는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가이드가 설명을 붙이기를 지금까지 지나온 건물들 사이로 나무가 한그루도 없다는 말을 덛붙힌다. 그러고 보니 그 넓은 공간들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아주 없었던 건 아니고 일부 키 낮은 나무들이 구룡벽(九龍壁)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뻥뻥 뚫린 공간에 나무들이 없긴 했다. 경복궁만 하더라도 본전인 근정전(勤政殿)까지의 길 위에는 없더라도 그 담장 너머에는 꽤나 나무들이 있었고 바로 옆 경회루 쪽으로 나가더라도 많은 나무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래서 자금성이 상당한 규모의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음에도 중간 중간 넓은 공간들이 횡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건물들만의 공간.
자금성 내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궁 안에 자객이 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그 때는 다들 아하.. 하며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블로그를 작성하기 위해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 보니 이 내용은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경복궁과 같이 오문(午門)에서 태화전(太和殿)까지 이어지는 중심축 구역에는 나무가 없긴 하지만 위성 사진을 보면 그 좌우 동서 부속 건물 지역에는 나무가 꽤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중심축 구역을 기준으로 다녔기 때문에 나무들을 별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건물과 건물들, 그리고 구역과 구역을 나누는 담벼락 높이가 꽤나 높기 때문에 지금 서 있는 곳의 눈높이에는 건너편 구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잘 꾸며진 건물들이라도 푸르름의 나무가 보이지 않으면 왠지 모를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건청궁(乾淸宮)과 교태전(交泰殿) 거주 구역 뒷편으로 이 모든 걸 몰아 놓은 듯한 장소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어화원(御花园)이 바로 그것이다.


어화원(御花园)에 들어서면 그 공간은 나무와 꽃들로 가득차 있다. 지금까지 아쉬웠던 것들을 모두 여기서 풀어내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이름처럼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여기는 정사라든가 복잡한 일들은 다 잊고 그냥 쉬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정말 후원이다. 큼지막 큼지막 했던 자금성 내의 다른 구역과는 달리 조금은 오밀조밀한 장소에 나무들과 정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거기에 사람들이 가득차 있으니 정신이 없었지만 실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실 직계 가족들만 즐겼던 장소라면 이보다 마음 편한 장소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가이드가 어화원(御花园) 내에서 특이한 장소라며 우리를 이끌고 간 곳은 거의 뒷편에 위치한 바위산 하나였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망루같은 모습이지만 순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바위산, 퇴수산(堆秀山)이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정형화되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주위와 어울려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다. 주변의 모든 건물들은 위용을 나타내느라 직선과 높게 뻗은 수직의 선을 강조하고 정사각형, 직사각형의 구역 모양은 규칙은 나타내지만 그 가운데 삐뚤빼뚤한 불규칙적인 모양의 조형물이 하나 있는게 규칙을 무너뜨리면서 뭔가 숨통 트이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어화원(御花园)의 출구를 나서니 바로 자금성의 후문 신무문(神武門)으로 연결되어 자금성을 빠져 나오게 된다. 아마 예전엔 이 구역도 모두 황성의 일부였겠지 싶긴 하지만 자금성 뒷부분은 너무 뜬금없는 엔딩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해자를 넘어 조금은 폭이 넓은 길을 하나 두고 커다른 언덕이 하나 있다. 이는 높이 약 90미터의 인공산으로 경산(景山; 중국어 발음을 영어로 하면 Jingshan)이라고 하는데 이 언덕, 아니 산꼭대기에는 전망대 같은 3층 기와탑 모양의 정자, 만춘정(万春亭)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오르면 사실상 자금성이 내부가 한눈에 들어 온다고 한다. 이런 장소가 황성 외부에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은 자금성과 분리된 지역이 되었지만 원래는 자금성, 황성의 일부로 어화원(御花园)과 더불어 후원, 정원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앞 쪽에 인공적인 수로, 금수하(金水河)가 있는 것처럼 뒤쪽에는 산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베이징은 정말 언덕 하나 제대로 없는 평야 지대이다. 그래서 자금성과 주변 해자, 인공 연못지 등을 만들면서 파낸 흙들을 여기에 쌓아 인공산을 만들었고 그게 지금의 경산(景山)이라고 한다. 이걸 생각하면 경복궁은 자연적으로 앞에 한강을, 뒷쪽에 북한산을 가지고 있는 최적의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공산까지 만들어가면서 조성한 곳이지만 1644년 이자성의 난 때 명나라 황제였던 숭정제가 이 경산(景山) 꼭대기에 있는 회화나무에 목을 매 자진한 슬픈 역사도 함께 한다. 황제가 목을 맨 이 회화나무는 그 이후에도 청나라 황실이 그 앞에서 숭정제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보존되어 왔지만 그 무지막지했던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베어 버렸다고 한다. 참 파란만장한 역사가 가득한 곳이다.
점심 식사 - 대차란(大栅栏; Dashilan)
신무문(神武門)을 넘어온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하고 경산(景山) 쪽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서는 아침에 내린 미니밴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각자 자기가 아침에 탔던 미니밴을 찾아 타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미니밴은 자금성 서편 담장을 따라 천안문 광장 방향으로 내려 갔는데 자금성 서편 담장을 따라 이어져 있는 길은 경비가 엄청 삼엄했다. 그 길을 따라 가는 동안 본 검색대가 두서너개는 되는 듯 했다. 지금 따라 내려가는 길을 따라 우측편은 중난하이(中南海)라고 부르는 옛 황실 정원인제 지금은 중국 공산당의 국무원, 국가 주석과 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공간이다. 한국에서는 "청와대"가 정부 자체를 가르키는 말로 쓰이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중난하이(中南海)라고 하면 중국 정부 수반들을 가르키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경비가 삼엄하다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반대쪽 자금성 동편 담장길도 그런지 잘 모르겠다.
미니밴은 천안문 광장을 옆에 두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 갔다. 어디로 가서 점심을 먹을지 궁금했는데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던 미니밴은 길가에 정차하고는 모두 내리라고 한다. 내린 곳의 건너편에는 어제 갔던 옌다이셰제(烟袋斜街)와 비슷한 골목이 보였다. 오늘 점심은 이 골목 구경과 함께 street food 인게다.
그날 갔을 때에는 이 곳이 어딘지 잘 몰랐고 그냥 담뱃대 골목과 비슷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블로그를 작성하기 위해 지도에서 대강의 위치를 검색해 보고는 이 장소가 대차란(大栅栏; Dashilan)이라고 불리는 곳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한자 이름 자체의 뜻은 "큰 펜스/담벼락"이란 뜻인데 이 길 끝, 반대편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 문, 혹은 펜스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 길을 거의 다 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의외로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사진 상의 Dashilan 문을 본 기억은 없다.


나는 어제 담뱃대 골목, 옌다이셰제(烟袋斜街)를 둘러 보았기 때문에 골목이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어제 함께 하지 않았던 다른 동료 매니저들은 장소가 신기했나 보다. 특히나 미국 친구들은 이런 길거리 음식, street food는 동네 페스티발 같은데 가면 food truck이나 간단한 food stand tent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특이하게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을 구경하면서 양고기 꼬치도 하나씩 사 들고 먹으며 구경했고 결국 한 건물 안으로 들어 갔는데 3층쯤 되는 건물 전체가 푸드 코트였다. 각자 조금씩 다른 음식들을 파는 가게들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니 한편에 좌석까지 갖춘 정식 식당도 있었다. 1층 가게 중에는 탕후루를 파는 집도 있었는데 과일과 더불어, 전갈 등을 포함한 곤충류 탕후루도 있었다. 모두들 신기해 했지만 그 누구도 먹어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2층에 구석에 위치한 그 식당은 꽤나 유명한지 그 앞에 대기줄이 있었고 우리도 그 줄에 서서 10여분 정도를 기다리다가 안에 들어가 앉았다. 메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같이 간 admin과 다른 베이징 매니저가 옛날북경식 짜장면(老北京炸酱面)과 다른 만두류, 그리고 취두부 하나를 주문했다. 나온 음식들을 조금씩 나누어 덜어서 먹었는데 이 취두부는 내 매니저가 먹겠다고 따로 시킨 것이다. 어제 밤에 골목에서 한번 먹어 보겠다고 시켜 먹더니 먹을만하고 맛있다며 오늘 하나를 더 주문해 달란다. 생각보다 냄새가 심하지 않고 가까이 코를 가지고 가야 냄새가 역해졌지만 듣던 그 악명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원래 취두부는 이보다 심한데 약간 현대적으로 바뀐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던 그 역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어제 잠깐 귀퉁이 한조각을 떼어 먹어 보긴 했지만 아주 못 먹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뭔가 모를 느낌 때문에 다시 찾아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었다.
배를 어느 정도 채운 다음에 다시 골목으로 나온 우리는 거리 구경을 마저 하고 미니밴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헤어지게 되었다. 대부분이 미국으로 돌아 가는 United 항공편을 함께 타지만 일부는 대만에서 온 분들이라 그 분들과는 그 주차장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집으로...
이제 정말 긴 여정이 끝나고 집으로 갈 시간이다. 공항에 도착해 각자 항공사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안으로 들어 가는 입구는 국내선과 국제선 입구가 달랐는데 국제선 입구로 가는 길은 일단 지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상당히 길이 구불구불 미로를 찾아 가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일단 여권과 탑승권을 한번 확인하고 일차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한다. 난 처음에 여기가 출국 심사장인 줄 알았다. 보안검색대는 꽤나 엄격했는데 보통 작은 라이터들은 들고 탑승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한지 검색대 앞에 작은 라이터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미국 내에서는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더라도 그냥 랩탑 정도만 꺼내 놓으면 되어 랩탑만 꺼내 따로 바스켓에 넣어 통과 시켰는데 엑스레이 통과후 가방 안을 뒤지더니 보조 충천 배터리와 남는 시간동안 보려고 넷플릭스 영화를 담아간 테블릿, 그리고 reMarkable 테블릿을 전부 꺼내서 하나씩 바스켓에 따로 담으라고 한다. 그런데 검색대에 있는 분들의 태도가 꽤나 딱딱했다. 마치 아이 귀찮게 이런거 하나 딱딱 못 맞추고 그래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 입국 심사대의 이민국 직원이나 공항검색대 직원들도 불친절 한걸로 유명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딱딱함이었다.
그래도 비교적 외국 국적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깐깐하지는 않지만 어느 여행 유튜브를 보면 중국인들에게는 더 더욱 깐깐하다는 언급이 있다. 그 유튜버가 검색대를 통과할 때도 나처럼 보조 배터리부터 하나 하나 다 따로 담아 다시 검사를 받고 통과했지만 자기 뒤에 있던 중국인 남자 분은 자기보다도 짐이 작았는데 뭔가 잘못된 것처럼 secondary room, 즉 옆의 다른 사무실로 불려 갔다고 무엇 때문인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일단 이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공항 내 트램, 무인열차 Skytrax를 탈 수 있다. 거기서 실제 탑승동인 Terminal 3E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거기서 실제 출국 심사대를 만나게 된다. 일주일전 입국 심사대로 통과했던 그 장소였다.
회사 출장에서 좌석 등급은 기본 일반석으로 되어 있어 그 이상 등급으로 가고 싶으면 미리 GM의 승인을 받거나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난 번 DFW/ICN 구간에 American Airlines의 Main Cabin에서 Main Cabin Extra로 추가 비용을 내고 탔는데 그 몇인치의 차이가 그래도 쓸만하다고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 돌아 갈 때도 United의 Economy에서 Economy Plus로 $186을 추가로 내고 업그레이드를 했다. 미리 하지 않고 낙양 여행 중에 했던가 아니면 베이징으로 오던 열차 안에서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조금은 늦게 해서 그런지 업그레이드 하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남은 Economy Plus 좌석이 많지 않았다. 장거리 비행인 경우 복도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복도쪽 자리는 남은 것이 없었고 3-4-3 배열의 좌석 중 가운데 4석 좌석 중에서도 안쪽 자리 밖에 없었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 안으로 들어 갔더니 여기 저기 같이 온 다른 매니저들이 보였다. 다들 서로 다른 미니밴들을 타고 왔기 때문에 체크인하고 들어 오는 동안 다 흩어졌다가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내 매니저는 GM이 비지니스를 탈 수 있게 해 주었고 다른 매니저들 일부는 프리미엄 이코노미인 United Premium Plus에 앉아 있었다. 나도 이제 직급이 어느 정도되고 11년차 노병이지만 여기 다른 매니저들은 대부분 이 회사에서만 20년이 넘은 고인물 매니저들이었다. 아직 명함 내밀 상황이 아니었다. 내 자리를 찾아 옮겨 갔는데 의외로 내 옆자리 복도 좌석이 Austin 오피스 다른 매니저, 중국계인 매니저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서로 맞춘 건 아니지만 어떻게 옆에 앉아 가게 되었다. 사실은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탈 수 없었던게 살짝 불평이었는데 이 친구는 나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데도 여기 앉아 있는 걸 보니 정말 회사 정책은 얄짤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친구는 당연히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탈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말이다.
DFW/ICN의 15시간 비행에 비하면 PEK/SFO 까지의 11시간 30분의 비행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잠도 꾸역꾸역 자고, 테블릿에 담아 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보면서 오다 보니 11시간 30분은 훌쩍 지나갔다. SFO에 도착해 바로 입국심사장으로 나가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MPC(Mobile Passport Control)이란 앱을 사용해 보게 된다. 출발하기 전 이런 저런 여행 정도를 찾아 보다가 이 MPC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공항 검색, 입국 심사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Global Entry 혹은 TSA PreCheck 같은 시스템과 더불어 입국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서비스였다. 미리 여권정보를 입력해 놓고 입국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거기에서 앱을 열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submit을 하면 입국 심사대 줄에 MPC 심사대가 따로 있어 거기로 가면 된다. 미리 여권 정보를 다 입력해 놓았기 때문에 여권만 건네 주면 따로 질문도 없고 그냥 간단히 통과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Global Entry 대기줄 보다도 짧고 일반 시민권/영주권 대기줄 보다는 당연히 훨씬 쉽게 들어 올 수 있다.
하나의 어카운트로 가족들 모두 등록할 수 있는데 지난 7월 가족 여행으로 Mexico Cozumel에 다녀 오면서 DFW에서 MPC로 입국심사를 받았더랬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심사대까지는 가는 복도에서 가족들 사진 하나씩 찍어 submit 하고 MPC 심사대 줄로 갔는데 내 여권을 먼저 냈더니 뒷쪽에 서 있는 가족들을 보고 가족이냐고 묻고는 그냥 다 지나 가랜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여권조차 보여 주지도 않고 그냥 다 통과했다. 혹시라도 시민권자/영주권자이신 분들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등록 비용과 심사를 받아야 하는 Global Entry와는 다르게 MPC는 무료이며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인지 심사대 줄도 짧다. 안내에는 모든 국제 공항에서는 안 되고 가능한 국제 공항 리스트가 나오기는 하는데 우리가 다니는 대부분의 국제 공항은 리스트에 다 포함되어 있다.
SFO에서 AUS으로의 환승 시간은 4시간 정도였는데 가족들과 전화하느라 Austin으로 가는 일행들과 다시 흩어졌다. 어짜피 결국 Austin행 같은 비행기 탑승구에서 만나게 되니 일부러 어디 있냐고 찾을 필요 없이 편하게 근처 자리에서 남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저 보면서 저녁도 공항 내 식당에서 해결하고 여유롭게 보냈다.
서울-베이징의 비행시간보다도 더 긴 3시간 30분의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드디어 Austin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일요일 밤, 아니 정확하게는 월요일 새벽 0시 30분. Baggage claim carousel 앞에서 서로 짐을 찾는대로 good night 하며 헤어지고 집에 들어 오니 거진 새벽 2시가 가까워졌다. 이제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내 침대에 누워본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그동안 한번도 가 보지 못했던 베이징/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베이징에 오피스가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쩌면 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매년 야유회를 겸한 summit 미팅이 있어 또 다시 GM이 전체 매니저들을 부른다면 가지 않을까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왔다. 한달 전 팀 개편이 있으면서 베이징 오피스에 있는 한 팀이 내 소속으로 변경되어 갑자기 베이징 팀 하나를 매니징 하게 된거다. 매니저와 팀원들이 내내 리모트로만 일을 하는 경우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면 팀원들은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 경우는 이미 산호세에 팀원이 따로 있어 일년에 한번씩 산호세에 일부러 출장을 갔더랬다. 직접 대면하면서 프로젝트 진행이나 계획을 이야기하기 위함도 있지만 어느 정도 친밀도를 높이고 team building의 의미도 있었다. 이번 새로 맡게된 팀원들은 이 베이징 출장/방문동안 잠깐 얼굴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 한마디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내가 이들과 함께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일단 한번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26년 1월 중순에 베이징에 다시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한국 오피스도 하루 방문하며 정말 일만 하러 간다.
베이징을 떠나 오면서 일년에 한번 정도 오기는 하려나 싶었는데 이제는 매니징하는 팀원들이 생기는 바람에 어쨋든 일년에 한번은 꼭 가야 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10년짜리 중국 상용 비자가 이렇게 쓰이게 될지 몰랐다. 이제 나도 연차가 쌓여 오피스에 앉아 코딩이나 실무를 하는 자리가 아닌 매니징하는 일이 더 커지는 그런 자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한번 경험했으니 이제 1월에 다시 가게 될 베이징은 조금은 달라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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