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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 베이징 출장 & 여행 2025년 5월

중국 출장/여행기 - 한국 방문

by 피터K 2025. 9. 7.

 

From Austin (AUS) to Dallas-Fort Worth (DFW), And Incheon/Korea (ICN)

 

중국 출장/여행기이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한국 방문으로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건 Austin/TX로 이사 온 후 다음 해인 2019년 5월. 어느 정도 Austin 정착을 마치고 둘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해서 시간과 여유를 조금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해 3월 장인/장모님이 방문하시기로 예약을 잡았다가 판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오시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우리도 한국에 갈 시간과 여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베이징 출장을 가게 되면서 어떻게든 하루 들려 보려고 했던 것이다.

 

출발은 5월 10일 토요일 새벽 5시 Austin-DFW American Airlines 항공편. 새벽 5시부터 한시간 간격으로 Austin-DFW 항공편이 있어 11시에 출발하는 DFW-ICN 항공편을 타기 위해서는 아침 7시 출발편을 타도 되었지만 최근 자꾸만 국내선 연착/결항들이 생겨나 가급적 이른 항공편을 이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벽 5시는 너무 서두른 것 같은 느낌이지만 당시 예약할 때만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혹시라도 유럽 다녀 오면서 모은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나 라운지 이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려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둘 다 아무 것도 못했지만.

 

새벽 5시 비행기를 탄다는 건 공항에 새벽 3시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뜻이된다. 그래서 집에서 새벽 2시 30분에 나가기로 하고 금요일 저녁 부지런히 짐을 싸면서 일찍 잘 생각이었는데 저녁에 친구 만나러 나간 큰 아이에게서 밤 11시쯤 연락이 왔다. 차 키가 안에 있는데 문이 잠겨 버렸다고. 하는 수 없이 집에 있는 스페어키를 들고 큰 아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문을 열어 주고 집에 돌아 오니 12시가 넘어버렸다. 아애 안 잘 수는 없어 2시간만이라도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2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오래 그리고 멀리 출장 간다고 가족들이 모두 안 자고 배웅을 해 주었다. 큰 아이도 성인이고 둘째, 막내도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 걱정은 덜 되었지만 아직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일주일 조금 넘게 차를 주차해야 하니 주차비가 꽤 될텐데도 long-term/ecomony parking이 아닌 공항 건물과 조금 가까운 Blue garage에 차를 세웠다. long-term/ecomony parking은 하루 $12, Blue garage는 하루 $26이지만 어짜피 출장이니까 출장비로 해결하면 된다. 게다가 Blue garage는 주차 빌딩으로 되어 있어 아무런 커버도 없는 long-term/economy parking에 장기 주차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차를 주차시키고 공항 건물로 들어온 시간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새벽 5시부터 항공편들이 출발하기 때문에 공항이 한산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래도 피크 시간인 오전 7시-9시 출발 시간대를 피해서 그런지 대기줄이 긴 건 아니었고 check-in과 security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5시 출발편이면 보통 4시 40분부터 탑승하기 시작하니까 탑승구에서도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자리 선택을 할 때 일부러 창가를 선택했는데 잠깐이라고 자려면 창가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도 부족하고 피곤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자리에 앉아 목베게를 창가에 올리고 머리를 기대고 나서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비행기가 출발하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가 DFW에 도착해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쿵하는 느낌에 잠이 깨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AUS-DFW는 기껏해야 1시간 비행이지만 그래도 그 1시간이라도 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조금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DFW, 즉 Dallas-Fort Worth 공항은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공항이다. 전체 면적은 약 70 평방 킬로미터인데 인천공항은 약 54 평방 킬로미터로 알려져 있다. Fort Worth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도시 이름이다. Dallas와 나란히 붙어 있는 도시인데 서울-인천 같은 느낌이랄까. 서울-인천 둘 다 광역 도시라서 하나의 생활권인 것처럼 Dallas와 Fort Worth도 서로 광역 생활권처럼 느껴지는 도시이다. 이름에 Fort, 즉 부대 주둔지라는 의미의 단어가 쓰인 것처럼 도시의 시작은 1849년에 설립된 미군 주둔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Texas의 소 경매지로 부상해서 Fort Worth Stockyard는 미국 내 손꼽히는 소 거래소가 되었다. 지금도 이 Fort Worth Stockyard는 당시 소 경매소로 사용되던 건물들로 이루어진 관광지가 있다. 매일 Texas Longhorn이라는 소들을 카우보이들이 메인 거리를 몰고 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Longhorn들의 거리 행진. Fort Worth stockyard에서 매일 볼 수 있다. 2023년인가 연휴 때 놀러 갔다가 찍은 사진.

 

기존의 Dallas 공항, Dallas Love Field가 포화상태가 되자 새로운 공항 부지를 찾았는데 그 부지가 Dallas와 Fort Worth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항 이름이 Dallas-Fort Worth (DFW)가 된 것이다. 종종 미국의 어떤 장소/건물이 크다라는 표현이 나올 때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안 올 때가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다음의 이미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어떤 경우 미국에서 크다 그러면 정말 엄청나게 큰 경우가 있다.

 

DFW 공항과 NY 맨하탄을 겹쳐 놓은 그림. 공항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 DFW는 Terminal A부터 E까지의 터미널이 있고 현재 Terminal F를 2027년 완공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전체 크기가 맨하탄과 맞먹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활주로, 유도로가 차지한다. 그렇다고 터미널들의 크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큰 공항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터미널 사이를 도보로 이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DFW에는 각 터미널을 연결하는 2량짜리 무인 열차가 24시간 운행되고 있다. Skylink라고 불리우는 이 열차는 security 구역 안쪽, 즉 탑승구역 내에서 운행되는 것으로 보통 환승할 때 이용하게 된다. 

 

4.81마일 (7.74km); 38mph (60km/h), 2004년 6월 개통 (출처: DFW 홈페이지)

 

Skylink의 내부. (출처:DFW 홈페이지)

 

AUS에서 도착한 비행기는 Terminal A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국제선은 Terminal D에서 출발하고 내가 타는 인천행 American Airlines도 마찬가지로 Terminal D에서 타야 한다. Austin/TX에 이사 오고 나서 첫 겨울이 결혼 20주년이라서 가족들이 다 같이 Cancun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DFW에서 환승했기 때문에 이 Skylink를 당시에 처음 타 보았었다. 그런데 워낙 오래 전이라 어땠는지 별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전체 여정이 환승이라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면 baggage claim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transfer 방향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한국이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따로 출국 심사가 없다.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서 각 항공사 카운터에서 check-in 하는 것만으로 정보가 전송된다고 들었다. 예전에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아니면 I-94라는 흰색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거기에 입국 심사관이 어떤 체류 신분으로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지 수기로 적어 주고 여권에 스테이플로 찍어 주었었다. 그래서 출국할 때 항공사 카운터에서 그 I-94 용지를 수거해 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도 다 없어졌다.

 

Transfer 방향을 따라가면 이 Skylink 방향 표시도 찾을 수 있다. 같은 터미널에서 환승하는 경우 그냥 다른 게이트로 가면 되지만 다른 터미널에서 환승하는 경우라면 Skylink로 이동하면 된다. Skylink는 탑승층보다 하나 윗층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로 한층 올라 가게 된다. 그러면 바로 승강장이 나온다. 워낙 터미널도 크기 때문에 보통 하나의 터미널에 앞쪽에 하나, 뒷쪽에 하나 승강장이 두개 있다. 그리고 승강장 기준으로 좌우로 두개의 Skylink 트랙이 있는데 각각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터미널들을 계속 운행한다. 자기가 가야 할 터미널 방향을 고려해 타면 된다.

 

오랜만에 탔는데 승차감은 그다지 편하지가 않았다. 부드럽다기 보다는 상당히 덜컹거리며 움직인다고 느꼈졌다. 마치 NY 지하철 타는 듯한 느낌? 물론 NY 지하철보다야 훨씬 깨끗했지만.

 

 

Terminal A에서 Terminal D까지 시간은 몇분 걸리지 않았다. 종종 DFW를 통하는 경유편들을 찾을 수가 있는데 어떤 경우는 환승 시간이 50분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시간에 어떻게 환승할까 싶은데 비행기들이 제시간에만 도착한다면 터미널간 환승이라도 Skylink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일찍 Terminal D에 도착해서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AA 마일리지를 이용해 라운지 day pass을 구매해서 거기서 시간을 보낼걸이란 생각이 든다.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 할 것 같아서 Terminal D를 여기 저기 돌아 다녀 보았지만 아침으로 먹을 만한 마땅한 것이 없어 그냥 McDonald's 아침 메뉴로 간단히 해결했다. 물론 출장이니 영주증 잘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꽤나 크다는 Terminal D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구경도 해 보고 여유를 부린다고 부려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결국 한국/인천행 게이트 앞에 빈 자리 하나를 차지 하고 가져간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9시 정도 되니 너무 졸려서 가방을 세워두고 기대며 졸 수 밖에 없었다. 시간아 어서 가자꾸나....

 

 

졸다가 책 읽다가 유튜브도 보다가, 그나마도 시간이 남으면 운동 삼아 Terminal D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구경도 다니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한국/인천공항행 American Airlines 항공편에 타게 되었다. 일반석, Economy 좌석도 정말 basic economy 좌석이 있고 조금 더 좌석 간격이 넓은 좌석이 있는데 American Airlines은 이를 각각 Main Cabin, 그리고 Main Cabin Extra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American Airlines의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AAdvantage program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많이 탔는지에 따라 등급이 있다. 등급이 높으면 Main Cabin을 예약했더라도 자동으로 Main Cabin Extra로 승급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Main Cabin에서 Main Cabin Extra로 옮겨 가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이 추가 금액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창가 좌석이냐, 복도 좌석이나 아니면 가운데 좌석이냐에 따라 금액이 다르고, 그리고 앞쪽으로 가면 갈수록 추가 금액이 높아진다. 

 

처음 예약했을 때는 Main Cabin이었고 혹시나 해서 American Airlines에 연락해 Premium Economy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 Main Cabin Extra로 업그레이드를 할지 어떻게 할지 한동안 고민을 했더랬다. 업그레이드 비용은 $127. Main Cabin Extra는 좌석 폭은 같지만 Main Cabin 보다 앞뒤 간격이 3인치 더 길다. 이 3인치를 위해 $127을 쓸 것이냐 말것이냐 고민하다가 출발하기 며칠 전에 업그레이드를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자면 하길 잘 했다였다.

 

막상 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그 차이를 잘 몰랐다. 하지만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항공기 뒷편으로 가면서 Main Cabin 좌석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3인치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게 되었다. Main Cabin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대부분은 무릎 부분이 앞 좌석에 거의 닿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앉은 Main Cabin Extra는 여유가 있어 필요하면 다리도 꼬을 수 있는데 말이다. 

 

 DFW에서 ICN까지 비행 시간은 무려 15시간. 내 좌석은 복도쪽 자리였고 중간 좌석, 창가 좌석에 앉은 분들은 플로리다에 사시는 부부이셨는데 도착하기 5-6시간 전부터는 거의 매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셔야 한다고 나를 깨우셨다. 내가 일어나야만 나가실 수가 있어서. 나중에는 굉장히 미안해 하셨지만 나는 그런 것에 별로 불편해하는 성격이 아니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덕분에 나도 자주 일어나 복도를 걷기도 하고 뒷편 갤리로 가서 스트레칭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게이트까지 움직이는 동안 잠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단체 관광으로 한국/일본을 방문하신다고 했다. 일본은 전에 한번 가 보았지만 한국은 처음이라며 한국/서울에 가면 무얼 보고 무얼 하면 좋을지 물으셨다. Good question!!!   그런데 나도 뭐라고 대답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 떠난지 20년이 지났고 마지막으로 온 게 6년 전이니 또 얼마나 변했을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6년만의 한국 방문; 인천 공항 입국기

 

비행기에서 내려 긴 복도를 따라 입국 심사대로 향하면서 굉장히 낯선 기분이었다. 분명히 익숙해야 할 공기, 분위기일텐데도 묘하게 낯섬이 느껴진다. 한국을 오래 떠나 있다가 돌아오게 되면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익숙하면서도 뭔가 낯선 느낌. 아마 자기가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수십년이 지나 돌아가 보면 반갑고 익숙한데도 어딘가 달라진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향수병은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았던 우리의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맞는 말인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내가 떠난 2004년에서 멈추어 버렸으니까.

 

종종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 한국에 입국할 때 내국인줄에 서도 되냐는 질문들을 볼 때가 있다. 누구는 된다하고 누구는 안 된다 하는데 법적/서류상으로는 외국인이니 외국인 줄에 서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종종 내국인줄이 조금 더 짧아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에 입국하는 경우에는 방문자 줄은 항상 길고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은 상대적으로 짧으니까.

 

인천 공항 입국 심사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느 나라 입국 심사대에 서면 괜시리 주눅들게 된다. (출처: theseoulguide.com)

 

출발하기 전에 미리 K-ETA를 작성해서 제출/승인 받았기 때문에 따로 입국 심사 서류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었다. K-ETA를 작성하고 승인이 났을 때 이메일로 승인 코드 번호와 함께 승인이 되었다는 안내만 왔지 따로 보여 주어야 할 QR 코드나 다른 정보는 없었다. 어짜피 여권 정보를 함께 넣었기 때문에 여권을 스캔하면 입력한 정보가 다 뜰테니 구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해당 이메일을 스마트폰에 띄어 놓고 입국 심사관 앞에 섰지만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는게 오히려 묘했다. 여권 스캔 후 얼굴 사진과 지문 채취를 하지만 얼굴 사진을 찍을 때 마스크를 쓰고 있던 입국 심사관은 나한테 손짓으로만 안경 벗으라는 제스쳐만 했다. 나야 오늘 하루 이 사람을 마주할 뿐이지만 이 입국 심사관은 오늘 하루 종일 몇백이상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응대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입국 심사관은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맨처음 맞이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남기게 된다. 웃거나 환대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손짓으로 안경 벗으라는 체스쳐에 대한 내 첫인상은 상당히 무뚝뚝하고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 귀찮으니 얼른 얼른 할거 하고 지나갑시다... 라는 느낌?

 

언젠가 게시판에 이런 입국 심사관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국 이름을 가진 외국국적자에게만 이러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나오고 한편으로는 일일이 몇백명을 상대해야 하는 이에 대한 고충도 이해해 주자라는 말도 나왔더랬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첫만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러한 면도 조금은 고려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미국 입국 심사 때 입국 심사관 앞에 서면 잘못한거 하나도 없으면서 왠지 주눅들게 되는 그런 분위기, 그리고 예전에 이탈리아/로마에 갔다가 Austin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대놓고 시민권/영주권자와 방문자 줄을 차별하던 딱딱한 분위기의 미 이민심사관과 비교하자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겠다.

 

 

타지 생활에 있어서 한국의 가족이란...

 

아버지 어머니 두분 모두 이제 여든이 넘으셔서 괜히 마중 나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그랬다. 아무리 한국을 오래 떠나 있었다고 해도 인천공항에서 일산 부모님집 하나 찾아 가지 못할까. 그런데 마침 그날 매제가 홍콩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내 도착편보다 1시간 정도 빨리 2 터미널에 도착한다고 여동생이 신랑 먼저 픽업하고 1 터미널에 도착하는 나를 픽업하러 온다고 했다. 다행이 대중 교통에 헤매지 않고 집에 갈 수 있었다. 6년만에 방문하느지라 어머니께서 집에서 저녁 준비를 하신다고 했었는데 나도 여동생도 극구 말렸다. 여든 넘으신 어머니께서 집밥을 준비하신다는 말은 결국 여동생과 제수씨 두사람이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머니, 여동생, 제수씨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내가 저녁 살테니 가족들 전부 모여 식사할 수 있는 식당만 찾아봐 달라고 했다. 당신 손으로 아들 한끼 식사 준비해 주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다음날 아침 식사로 간단히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고르신 식당은 불고기 전문집.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큰 조카는 지금 군복무 중이라 한사람이 빠진 남동생네 식구 세명, 그리고 여동생네 식구 세명, 그리고 나까지 모두 9명이서 일산 근처 식당에 모였다. 모처럼 보는 얼굴들이라 반가웠고 이런 저런 근황들을 전하며 정말 간만에 가족들과의 식사였다. 미국에서는 가족, 혹은 친척들이 모일 일이 없고, 판데믹 전에는 종종 아는 가족들끼리 모여 식사를 했지만 요즈음엔 이렇게 아는 여러 가족들도 전만큼 모여 함께 밥 먹는 일이 적어졌다.

 

9명이서 불고기 정식으로 식사를 했는데도 내가 결제한 총금액은 $148. 여전히 한국 식당 물가는 싸다고 할 수 있겠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단 아버지 어머니 집으로 다 같이 가서 차 한잔 하고 나서 밤 9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내일이 월요일이니까 다들 또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과 연락이 잦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일주일에 한번씩 하던 전화는 이주일에 한번으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길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부대끼며 사는 한국의 가족들과는 조금씩 소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몇년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가족들의 대화, 그래 그거 있잖아, 맞아 그거 있지. 그런데 난 "그게" 뭔지 모르겠는 상황.

 

그리고 10년쯤 지나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면 주말이나 명절 때 만나는 가족이 아닌 "손님"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든다. 왠지 보이지 않는 인너서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밖에 서 있는 느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이런 느낌을 알지 못한다. 너무나 가끔씩 오는 "손님"이지만 자기네들은 여전히 우리가 가족이라고 느끼며 동질성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기네들도 매일 만나는 사이가 아닌 주말, 한달에 한번, 혹은 명절 때만 만나더라도 그게 어색하거나 멀지 않으니까. 

 

이렇게 표현하니까 가족이 아닌 "남"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낀다고, 그리고 그렇게 되어간다고 불평, 멀어지는 느낌을 토로하는 것같은데 그건 아니다. 이런 것들이 서글프다거나 뭔가를 잃어간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난 담담하게 여기고 있다. 그냥 그게 현실이니까.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여든이 넘으시니 요즈음은 꼬박꼬박 2주마다는 전화를 한다. 그렇다고 전화할 때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용은 늘 한결같다. 건강은 어떠신지 날씨는 어떤지 우리는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 말이 조금은 섬뜩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직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는지에 대한 확인, 그리고 전화할 때마다 이게 부모님과의 마지막 통화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든다.

 

이제 20년쯤 지내고 나니 한국은 "고향"이라는 느낌이 많이 옅어지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가족은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 감정이 있고 그래도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지만 부모님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고민도 해 본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촌들과는 거의 연락할 기회가 없다. 아마 아이들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한국의 가족/식구들이 "손님"처럼 느껴지지나 않을까. 그냥 타지에 오래 살면서 그렇게 변해갈 수 밖에 없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라고.

 

 

그래서 한번이라도 기회가 있을 때 시간 조절해 가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을 보러 온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출장/여행 일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