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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 베이징 출장 & 여행 2025년 5월

중국 출장/여행기 - 첫째날 용문석굴

by 피터K 2025. 10. 27.

Journey to Luoyang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출장 일정이 잡힌 건 앞서 말했듯이 16일(금)부터 1박 2일로 전체 베이징 오피스 야유회, outdoor team building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거기에 함께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어딘가 가긴 한다고 오기 전에 들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목요일 오후에 admin이 안내 책자를 나누어주고 어디 가는지 설명해 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처음에 중국어 발음으로 Luoyang에 간다고 했을 때 어딘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영어로 검색해 보고 그 도시 이름이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 찾아 보면서 그곳이 바로 낙양(洛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낙양(洛陽).

역사 시간에 혹은 삼국지 등에서 흔히 듣던 이름이다. 주나라, 수나라의 수도였으며 당나라/송나라 때에는 제2의 수도의 역할도 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많은 고대 국가들의 수도 혹은 제2의 수도 역할을 했던지라 고대 시문에서는 낙양이라는 단어 자체가 수도를 상징하기도 한단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시대의 각축장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유물도 남아 있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관우의 머리가 묻힌 무덤도 있고 오후에 방문하게 되는 용문석굴도 있다. 

 

낙양이라는 도시가 처음 도읍으로 정해진 때는 하나라/상나라/주나라 때로 이에 대한 갑골문이 전해진다고 한다. 황하를 통한 물자 교역이 가능한 곳이라 내륙 지방임이도 광무제 유수에 의해 수도로 정해져 크게 발전했다. 후한 시대 동탁 (그 삼국지의 그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낙양에 불을 질러 폐허로 만들었지만 조조와 그의 아들 조비에 의해 다시 정비되어 예전과 같은 대도시로 발전했으며 수 양제의 의해 다시 수도가 되고 운하가 건설되지만 이 무리한 공사 때문에 수나라가 망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당나라까지는 번영을 이루며 장안 다음의 대도시로 거듭나지만 그 이후에는 원나라에 의한 베이징으로의 세력 이동, 근대의 해안 도시의 성장으로 인해 점차 역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대도시/유적들로 인한 상징성 때문에 여전히 하남의 주요 도시의 역할은 남아 있다고 한다.

 

첫날 일정표. 새벽 6시 39분 열차를 타야해서 호텔 로비에 새벽 5시 30분에 집합이다.

 

아무리 고속열차를 탄다고 해도 베이징에서 4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목요일날 admin이 새벽 5시 30분에 호텔 로비에서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만나야 한다고 전해준다. 새벽부터 부지런 떨며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admin과 몇몇 senior manager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니밴 5대 정도에 나누어 타고 호텔에서 기차역까지 가야 하는데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각 미니밴마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이가 필요해서 영어/중국어가 가능한 senior manager들이 함께 한 것이다. 우리 팀의 경우 나와 내 매니저는 한국사람, 동료 매니저는 백인, 그리고 다른 동료 매니저가 중국인이라 이렇게 넷이 함께 한 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국인 매니저 친구가 우리의 통역사가 된 셈이다.

 

서울에서도 지방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는 경우 방향에 따라 서울역과 용산역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역도 여러 곳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출발할 때의 기차역과 내일 돌아 올 때의 역이 다르다고 안내를 받았다. 어짜피 우리는 admin과 우리를 주로 전담해 줄 우리 팀의 베이징 오피스 매니저가 대부분 안내해 줄거라 그들만 잘 따라 다니면 되었다. 

 

미니밴을 타고 호텔에서 30분 정도를 이동하고 나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긴 시간동안 베이징 시내를 가로질러 가면서 특이하게 생긴 여러 건물들도 보았는데 미처 사진을 찍어 두지는 못했다. 이번 베이징 출장/여행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는데 왠지 함부로 찍었다가는 찝찝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일 없었을텐데 괜한 선입관 때문에 여행기 자료를 모으는데만 어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도착한 기차역은 Beijing Fentai Station(北京丰台站)이란 기차역으로 베이징 남서쪽에 위치한 기차역이었다. 2022년에 새로 리뉴얼된 역사라고 하는데 상당히 규모도 크고 시설도 깨끗했다. 특이하게 역사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안 검색을 하게 되는데 공항에서나 보는 X-ray 검사와 신체검색대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기차표를 확인하게 되는데 따로 티켓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 친구들은 신분증으로, 외국인은 여권으로 스캔하면 티켓 정보가 화면에 뜨게 된다. 그래서 미리 admin이 우리에게 열차표 예매를 위해서 여권 정보를 보내 달라고 알려 왔었고 이번 여행에도 꼭 여권을 소지 하라고 알려 주었다. 중국인들의 신분증은 거민신분증(居民身份证)이라고 부르는데 스캔하는 시스템이 다른지 중국인 스캔하는 곳과 여권을 스캔하는 곳이 나뉘어져 있었다. 특이한 건 대만에서 온 친구들인데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국민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대만 국적자가 중국으로 출장 올 때는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하지 않고 중국이 발행하는 대륙여행허가증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대만 신분증은 중화민국국민신분증(中華民國國民身分證)이라고 부르며 admin이 대만에서 오는 이들에게는 열차 예매를 위해 신분증 카드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었다.

 

신분증/여권 스캔으로 열차 탑승여부가 확인되고 나면 대합실 구역으로 가게 되는데 일반 기차역의 대합실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거기서 admin이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용으로 먹을 수 있는 삶은 달걀/바나나/요거트/샌드위치/작은 물병이 든 종이봉투들을 나누어 주었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시간에 잘 맞추어 왔기 때문에 적당히 그 앞에서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동안 출발 시간이 되었고 방송 안내에 따라 이제 최종 개찰구로 향했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 본 것이 하도 오래 되어서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 대합실은 2층 부분에 있고 그 앞에 개찰구를 통해서 아래 1층에 있는 열차 플랫폼으로 내려 갔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개찰구 자체도 없고 바로 내려가는 걸로 알고 있다. 여기 베이징 기차역에서는 일단 개찰구 같은 것이 한번 더 있어 거기서 신분증/여권을 스캔하게 된다. 그리고 특이하게 위로 올라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한참을 올라가면 거기에 플랫폼이 있었다.

 

아직 KTX를 타 본 적은 없고 이탈리아에서 로마/피렌체, 그리고 로마/나폴리 사이의 이탈리아 고속열차만 타 보았고 아주 예전, LG 반도체의 초청으로 97년쯤에 일본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신간센을 타 본 적이 있다. 오늘 우리가 타는 열차는 중국 고속열차로 열차 객실 안으로 들어 가니 3x3 배열로 되어 있었는데 그냥 평범한 스타일의 열차 좌석이었다. 

 

베이징 기차역을 출발한 후 10분쯤 지난 때라고 기억되는데 정말 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에서 이 일대가 산자락 하나 없이 평평한 지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속 열차답게 기차 내부에 현재 속도를 보여 준다. 시속 300km/h에 금방 도달해 버린다. 비교적 소음과 진동도 없고 조용한 편이었다.

 

제 시간에 출발한 열차는 조금씩 속도를 높이더니 교외로 빠져 나오자마자 바로 고속 열차 이름답게 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열차 객실 입구에 보이는 안내판에 열차 속도가 표시되는데 금방 300km/h를 찍어준다.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은 정말 평평한 땅 그대로 펼쳐진다. Austin에서 Dallas를 잇는 35번 프리웨이를 달리다보면 이런 산등성이 하나 없는 평원을 볼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이름 자체가 Great Plains 혹은 Great Prairie라고 불리우며 그냥 저 멀리 지평선이 끝도 없이 보인다. 이곳 베이징을 벗어나 낙양 지역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런 끝없는 지평선만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이 괜히 중원이라고 불리우는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열차는 특별한 진동이나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편안했다. 주변에 앉은 다른 이들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이제 서서히 졸음이 몰려 왔다. 아침, 아니 새벽부터 부산 떨었던 것들이 열차에 앉아 쉬면서 긴장이 풀어지니 그제서야 피곤이 몰려 오는 것 같았다. 지난 며칠동안 일하고 미팅하고 긴장하던 그 순간도 지났고 이제 여행이라는 것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선글라스 너머로 스르르 잠기는 눈을 숨기고 잠을 청해 본다.

 

 

점심 식사 / Empress Wu's Feast 

 

혼자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을 데리고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상황도 아닌, 그냥 이 열차 한칸이 전부 회사 사람들이라 혹시라도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걸 걱정할 일은 아닌데도 낙양에 도착해 갑자기 깨고 싶지가 않아 알람을 맞추어 두고 잠을 청했더랬다. 낙양에 도착하기 15분전쯤 일어나 정신도 좀 차리면서 낯선 중국이 지방 전경을 눈에 담으려 이리저리 둘러 보는 동안 열차는 낙양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일행들과 함께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쪽으로 향했다. 거기서도 다시 한번 신분증/여권으로 스캔을 해야 출구를 통과할 수 있다. 역사를 벗어나 조금 트여진 장소로 나오니 저 앞에 각 가이드들이 회사 이름과 색상이 다른 작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이미 출발 전에 전체 인원들을 4 그룹으로 나누어 놓고 그 명단이 안내 책자에 있었는데 그 그룹별로 버스에 탑승해 이동한다고 한다. 내가 속한 팀은 미국, 한국, 그리고 대만에서 왔는데 Group 3에 배당되어 항상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열차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42분. 어수선한 출구를 통과하고 사람들이 모여 그룹별로 나뉘어지고 하다 보니 기차역을 떠나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해 출발 준비가 된 시간은 11시 조금 넘은 시간. 거기서 바로 점심 식사를 할 장소로 이동한다.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창가에 앉은 나는 낙양이라는 낯선 새로운 장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눈에 담고자 했는데 한국의 어느 중소 도시와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듯한 느낌의 풍경에 아,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에 훅 빠지게 만들었다. 주차장을 출발해 점심 식사로 이동하는 동안 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가이드 분인 마이크를 잡고 중국어로 열심히 낙양이란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외국인이 있다는 걸 미리 연락 받았는지 다시 한번 영어로 낙양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그 분의 영어 실력은 꽤나 괜찮았다. 덕분에 낙양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특이했던 건 설명이 다 끝나고 나서 뜬금없이 노래 하나 하겠다며 걸죽한 중국 노래 하나를 뽑아 내셨다.

 

대규모 인원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인데 버스가 낙양 시내를 돌아 돌아 도착한 곳은 어떤 빌딩 앞이었다. 특이하게 전면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두대가 있었는데 마치 전망대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처럼 건물 외부에 설치 되어 있었다. 3층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과거 시대의 모습으로 꾸며 볼 수 있는 연애인 대기실에 있을 법한 분장실 거울들이 있었고 한쪽편에는 여러가지 덧붙일 수 있는 장신구들이 선반에 전시 되어 있었다. 대체 어떤 곳의 식당일지 궁금했는데 안내를 따라 분장실 건너편으로 옮겨 가니 거기엔 검은색 커다란 장막이 있었다. 그 장막을 헤치고 들어서니 눈앞에 특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식당, 아니 점심 식사의 이름은 武皇盛宴, 영어로는 Empress Wu's Feast. Empress Wu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를 가르킨다. 즉 측천무후의 만찬이라는 뜻이된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초 그리고 유일한 여황제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 말기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서태후도 어린 아들을 황제로 삼고 그 섭정을 통해서 권력을 휘둘렀지만 결코 황제 자체를 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실제 황제로 즉위했다. 

 

그녀는 당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하며 궁중 생활을 시작한 이다. 하지만 태종의 총애를 받지 못한 그저 그런 여러 후궁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당태종이 죽은 후 관례에 따라 비구니가 되어 인근의 절로 향하게 된다. 그 후 태종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고종의 눈에 들어 다시 후궁으로 입궁한다. 일설에는 당태종이 병으로 쓰러져 있을 때 그를 간호하던 후궁 중에 한명이었는데 태종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고종과 이미 눈이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스스로 황제에 올랐을만큼 정치력은 상당했다고 한다. 정치력이 모자랐던 고종을 대신해 왕실에 대항하는 원로대신들을 죽이거나 귀향 보냈으며 결국엔 모든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656년 자신의 장남인 이홍을 황태자로 세웠으나 곧 죽어 버렸고 차남 이현이 황태자가 되었지만 음모로 자리에서 쫓겨나고 삼남 이현이 황태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외척/공신들과의 권력 다툼, 반란들을 제압하면서 결국 690년 당나라의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낙양으로 천도, 무주(武周) 시대를 열게 된다. 이런 권력 다툼에는 어쩔 수 없는 공포정치와 압제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그녀의 치세는 백성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 주어 "무주의 치"라는 약 15년 동안의 태평성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705년 병으로 건강이 나빠졌을 때 당 황실로 돌아 가려 했던 신하들에 의해 물러났던 황태자였던 이현에게 제위를 넘겨 그가 중종이 되었으며 국호는 다시 당으로 되돌아간다. 정변은 성공했지만 당시 황실의 후손/일가들은 모두 고종과 측천무후의 자손들이라 측천무후를 처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퇴위 후에도 황태후로써 대우를 받으며 같은 해 조용히 80세로 눈을 감는다.

 

그녀의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회를 만들었으니 화려함과 내용이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앉자 본격적으로 식사가 아닌 공연이 먼저 시작되었다. 중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내용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와 관련된 일화들로 내용이 짜여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의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시녀의 복장을 한 서버들이 하나씩 준비된 코스 요리의 접시들을 가져다 준다. 그러면 다음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다시 공연이 끝나 다음을 준비하는 동안 다음 음식이 나오는, 정말 연회 같은 식사가 되었다.

 

검은색 장막을 헤치고 들어가니 등장한 식사 장소와 무대. 아니 뭐 이런 장소가 다 있어라는 어리둥절함이 먼저 와 닿았다. 저 앞쪽에 무대가, 그리고 좌우로 길게 식탁 겸 관람석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다.

 

바닥이 뚫려 있는 자리라 앉으면 마치 의자에 앉은 듯한 모습이지만 밖에서 보면 낮은 상에 양반다리하고 앉는 모습처럼 보이게 된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라 앉아 있는 동안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한사람당 사진에 보이는 상차림이 하나씩 놓여지게 된다. 이미 에피타이저로 작은 음식들이 담겨져 있다.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앉는 동안 과거 모습의 복식을 한 서버들이 각 잔에 따뜻한 차를 부어 주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뒷편 검은 장막을 통해 안으로 들어 왔다.

 

전체적으로 요리는 코스 요리로 제공되었는데 중간 중간에 이렇게 과거 복식의 서버들이 무대에 정렬을 한 후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로 사라져 요리들을 하나씩 가지고 나와 각자 앞에 하나씩 놓아 주고 간다. 큰 접시에서 각자에게 덜어주는 것이 아닌 각자 각자에 서빙되는 크기로 나뉘어져 있는 걸 놓아 주는 방식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문뜩 극장식 식당...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찍어오지 못해 검색을 하다 보니 해당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https://www.trip.com/things-to-do/detail/95702247/

 

Luoyang, Henan ● Empress Wu's Feast | Immersive Experience of Imperial Banquet [Imperial Cuisine + Imperial Music and Dance +

Answering Empress Wu's invitation to a grand imperial banquet. A peaceful realm welcomes envoys from all nations amid singing and dancing. Step into this living painting and feast like royalty for a night that transports you back a thousand years! About lo

www.trip.com

 

당시 식사가 끝나고 나서 admin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녀가 이렇게 먹고 구경을 해도 일인당 $25 밖에 안 했다고 그랬다. 그 때 우리는 그 돈이면 미국에서 기껏해야 햄버거 세트 하나 사 먹는게 전부라며 정말 물가가 싸구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위 페이지를 처음 찾아서 확인했을 때에도 가격이 $28 정도로 나왔는데 오늘 다시 확인하니 $47로 올라와 있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올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공연/식사가 $50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갚어치는 충분히 하는 그런 점심 식사였다. 이 글을 포스팅하고 할 때쯤 더 올랐을까?

 

 

용문석굴 (龍門石窟; Longmen Grottoes)

 

뜻하지 않은 멋진 점심 식사를 한 후 차에 다시 오른 우리들은 이제 오늘의 원래 목적지, 용문석굴(龍門石窟)로 향하게 된다. 처음 여행 책자를 받아 들고 오늘 가는 곳이 Longmen Grottoes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게 한자로 용문석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버스들이 용문석굴 주차장에 섰는데 실제 용문석굴 입구와는 꽤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5분쯤 걸어 가면 전기 트램이 있어 거기서 트램을 타고 용문석굴 입구까지 가게 된다. 생각보다는 주차장과 입구가 먼데 그 길을 다시 걸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정확한 온도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꽤나 더웠기 때문이었다. 더운게 TX와는 다른 느낌인데 TX에서는 100도가 넘어가면 햇살이 따가울 정도의 뜨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는 더운게 소위 후덥지근하다는 느낌이었다. 햇살이 따갑지는 않은데 습도가 높아 조금만 걸어도 땀으로 흠뻑 젖는 그런 날씨였다. 1박 2일 일정이라 속옷 팬티는 여분으로 챙겨 왔지만 위에 보통 입는 흰색 면티는 하나만 가지고 왔더랬다. 그런데 이 용문석굴을 보느라 강을 따라 걸어 다녀 오고 나니 그 면티가 땀에 훌쩍 젖어 버렸다. 덕분에 그날밤 호텔 방에서 에어컨 나오는 곳에 맞추어 밤새 말려야 하긴 했지만.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석굴암처럼 하나의 부쳐님이 모셔진 석굴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석굴이 군락을 이루는 장소 자체를 말한다. 여러 개라고 하니 또 그 숫자가 작아 보이는데 알려진 석굴/동굴의 수는 2,345개로 이하(伊河)라고 부르는 강을 중심으로 좌우로 약 1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하(河)라는 단어 자체가 강을 뜻하는 한자이니 "이"라는 이름의 강이라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처음 석굴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북위의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494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대체로 당나라 시대인 640년에서 675년 사이에 절정기를 맞이한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거대한 석굴로 조성된 봉선사동(奉先寺洞)은 측천무후가 기부한 기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중앙에 위치한 비로자나불의 얼굴이 측천무후의 얼굴을 본 뜬 것이 아니냐는 설화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아니다라는 쪽에 가깝다고. 석굴들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건 석굴에 비문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규모에 있어서는 이 봉선사동의 비로자나불은 높이가 13m에 달하기도 하고 전체에서 가장 큰 불상은 높이만 17.1m, 반면에 가장 작은 건 2cm에 불과하기도 하단다. 그렇게 여기에 총 10만여개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강을 따라 양편에 석굴들이 위치 하기 때문에 관람 동선도 한쪽 강가에서 출발해서 1km 정도를 걸어가면 반대편으로 건너 갈 수 있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서 다시 내려오며 관람하게 된다. 대부분의 중요 석굴들은 출발하는 쪽 강변에 몰려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고 나서는 많은 이들이 강을 따라 운행하는 보트를 타고 되돌아 오게 된다.

 

용문석굴에 들어서기 전에 멀리서 절과 같은 사원이 보인다. 저 사원 같은 곳은 오늘의 방문지가 아니다.

 

석굴이라고 해서 하나의 석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2000여개가 넘는 석굴로 이루어진 석굴군이다. 갯수가 많은 것이 다가 아니라 하나 하나 예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대단하다. 사진에 보이는 석가상 천장에 정성스럽게 연꽃 조각도 만들어 놓았다.

 

시간이 지나 채색이 변해버렸겠지만 아직도 아련한 색이 남아 있다. 처음 완성했을 때는 꽤나 화려했을 것 같은 모습.

 

구멍 구멍 굴로 이루어져 있어 환공포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 놓아도 좋다.

 

저 높은 곳까지도 올라가 만들어 놓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진에 보이는 잔도는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저 위에까지 석굴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저기까지 올라가는 구조물을 만들었으리라. 이렇게 하나 하나를 다 보다 보면 한나절이 모자를지도 모른다.

 

용문석굴 전체를 통틀어 하이라이트인 봉선사동(奉先寺洞). 측천무후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고종 때 완성된 것인데 대불의 얼굴은 측천무후의 외모를 본 뜬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있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봉선사동.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정말 이 모습만 보고 있노라면 없던 환공포증도 생길 것 같다. 하지만 그 동굴 하나 하나에는 당시 불심을 가득 담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부처님 상이 하나씩 놓여 있다. 그만큼 기원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다는 뜻이될까나.

 


그 긴 관람로를 따라 2/3 정도까지 갔을 때는 더위에 지쳐 녹초가 될 지경이었지만 그즈음에서 만난 봉선사동(奉先寺洞)의 거대한 석굴에 피로가 확 달아나며 저런 예술품을 담아낸 장인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게 된다. 만들라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이름이 남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만들어 낸 이의 이름도 어딘가 남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전체적으로 어떤 규칙이나 감독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사람들이 각자의 염원을 담아 만들기 시작해 모인 석굴 단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일정한 패턴이나 스타일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의 불심을 담아 무언가를 염원하며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를 본받고자 만들었을텐니 어떤 욕심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석굴을 만드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저녁 만찬 at Luoyang Marriott Hotel

 

더위에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으로 끝나긴 했지만 용문석굴의 경험은 독특한 느낌을 선사했다. 지난 2년 동안 유럽의 서구 문명의 섬세함과 미려함을 감상했다면 용문석굴의 동양적인 아름다움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렇지만 거기에 담겨진 사람들의 소망을 보는 것 같아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내 경우 한국에서 사찰이나 불국사, 석굴암 같은 불교 관련 유적을 많이 보아 왔었기 때문에 익숙한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함께 있던 미국인 친구는 또 다른 낯섬에서 오는 감탄을 가져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로마/바르셀로나에서 받았던 서구적 낯섬이 이 미국인 친구에게는 동양적 낯섬으로 다가 오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모두 다시 주차장으로 모이자 버스는 인원 확인 후 오늘 묵을 숙소인 Luoyang Marriott Hotel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서 방배정에 따라 룸키를 나누어 주고 6시 30분까지 4층 그랜드 볼룸으로 모이라고 했다. 일단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땀을 좀 씻어낸 후 땀에 젖은 면티는 옷걸이에 걸어 말리기로 했다. 방에서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휴식을 좀 취하고 나니 기운이 좀 돌아 오는 듯 했고 시간에 맞추어 그랜드 볼룸으로 내려가니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하는 저녁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머무른 Marriott Hotel. 바로 앞에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시원한 전경을 선사해 준다. (출처: Google Maps 이미지 검색)

 

특이하게 고대 연회 민화에 회사 이름으로 현판을 만들어 합성한 사진을 띄워 주었다. 게다가 오늘 하루 사진사로 활약한 이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슬라이드 쇼로 식사 내내 화면에 띄워 주었다.

 

나는 술을 거의 못하는 편인데 연회가 끝나갈 무렵 친하게 된 대만의 매니저가 오더니 40도가 넘는 술을 한잔 권한다. 워낙 도수가 높다 보니 이 작은 잔에 마시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한잔 했는데 처음으로 술이 목구멍을 타고 위로 내려가는 느낌을 생생히 느껴 보았다.

 

저녁 만찬 자체는 특별한 것 없이 지난 월요일부터 매일 해 오면 그 방식 그대로 8-10명씩 앉은 둥근 테이블에 여러가지 음식들이 서빙 되어 테이블 중간 Lazy Susan 앞에 놓이면 거기서 덜어다 먹으면 되었다. 너무 낯선 사람들과 함께 앉으면 어색할 것 같아 그래도 대만에서 온 같은 팀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런 자리에서 조금은 부담스럽고 미안한게 10명쯤 앉은 우리 테이블에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이는 나 혼자 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기네들끼리도 중국어로 계속 이야기 하다가 내가 끼어들거나 혹은 내 좌우에 있는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나와 영어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만찬은 9시가 조금 넘어 끝났는데 일부 사람들, 나와 같이 미국에서 온 내 매니저와 한국에서 온 분들은 베이징 매니저, admin과 함께 구 시가지 구경을 간다고 했다. 난 그 시간에 나가면 자정이나 되어야 돌아 올 것 같아 사양했는데 같이 일하는 PE팀 사람들은 호텔 앞 호수에 산책을 나간다고 해서 거기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시원한 호수가 바람으로 분위기를 식히고 잠을 청하는게 더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에 걸려 호수 한바퀴를 함께 걷게 되었는데 산책을 함께 하면서 이 회사에 들어와 얼마나 되었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같은 이런 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하면서 조금 더 친해 질 수도 있었다. 그동안은 매번 conference call을 하면서 일에 대한 논의만 했는데 개인에 대해서 조금 더 친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앞으로 일을 하면서 조금 더 부드럽게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매년 이런 야유회가 있었는데 2020년 판데믹부터 중단 되었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는데 내년에 또 하게 되면 다시 불러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정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년에 한번 정도 이렇게 같이 부닥치며 화이트 보드에서 못다한 문제들을 함께 풀면서 얼굴을 익히는 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이제 하루 더 남은 일정을 위해 피곤함을 뒤로 하고 얼른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