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출장 일정들
출장이란 결국 일하는 장소가 여기에서 저기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낯선 곳에 와서 낯선 분위기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일하러 왔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원래 일하던 것이 바빴다면 출장지에서는 보통 그보다 더 바쁘면 바빴지 결코 덜하진 않게 된다. 월요일 오후부터 목요일 저녁까지 딱 그렇게 일을 하게 된다.
호텔과 회사 건물이 한 단지 내에 있어서 걸어서 5분이면 오갈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길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좋긴 했다. 만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면 그것 나름대로 피곤했을텐데 말이다. 이미 오기 전에 미팅/전체 회의 일정들이 다 예정되어 있었고 중간 중간에 갑자기 생긴 미팅들도 있어 배정해 준 cubicle에 앉아 이메일 확인 하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은 Sheraton Grand Beijing Dongcheng Hotel. 꽤나 고급이었고 매일 아침 부페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쉬고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ATT International pass로 로밍을 해 갔는데 처음 잡힌 모바일 서비스는 자꾸만 연결이 끊어졌다. 베이징 지역의 통신사는 China Mobile, China Unicom, China Telecom 등이 있는 걸로 아는데 처음 스마트폰을 켰을 때 자동으로 잡힌 것이 China Unicom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처음 하루는 괜찮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인터넷 브라우져를 열면 금방 offline/no service로 끊어지는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스마트폰은 계속 네트워크에 연결하려고 했고 베터리도 금방 금방 줄어 들었다. 회사 내에서는 회사 wifi에 연결해 쓸 수 있었지만 저녁에 식사를 위해 다른 곳으로 간다거나 호텔방에서 쉴 때, 그리고 아침에 식사를 할 때는 도무지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잠시 시간이 빌 때 검색을 해 보았더니 한가지 팁이 다른 서비스로 바꾸어 보라는 것이 있어서 carrier 자동선택을 끄고 매뉴얼 선택에 들어가 China Telecom을 선택하니 짜잔!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
아직도 왜 이런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Reddit이나 ATT 커뮤니티 글을 보아도 China Unicom을 사용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Carrier/서비스 통신사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쓰던 Galaxy Fold 4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도 그 다음부터는 연결이 자꾸 끊어져 고생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중국에 오기 전에 사설 VPN을 설치하고 가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도 그래야 하나하고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와서 연결을 하고 나니 의외로 구글, 유튜브 등등 중국에서 막아 두었다는 서비스가 제대로 잘 연결되었다. 다른 동료가 미국 서비스 번호로 로밍 접속하는 경우 이런 제약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말이 얼마나 맞는지 모르겠다. Reddit 검색할 때는 구글/유튜브 접속이 안 되어 VPN을 깔아서 썼다는 글도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특별히 접속이 막혀 있는 사이트는 없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사용할 때와 별반 다름없이 편하게 쓰긴 했다. 물론 ATT International pass의 비용은 출장비 처리로.
어떤 문제/논의든지 conference call을 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비단 영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 있는 R&D와 일을 할 때도 있어 그 때는 한국어로 서로 이야기하는데도 아무래도 말로만 뭔가 전달하는 건 2% 늘 부족하다. 비록 PPT나 screen share를 하며 뭔가 그려가며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직접 와서 얼굴을 마주보며 미팅을 하고,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화이트보드 앞에서 같이 문제를 풀어보는 건 정말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미리 잡혀 있는 미팅 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일하는 PE (Product Engineer)들을 부지런히 찾아 다니며 같이 이야기 했고 그 이외에도 매번 이메일로 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던 다른 이들도 찾아가 인사 나누며 친분을 쌓으려고 했다. 한번이라도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며 인사를 나누는게 생각보다 친밀감을 가지는데 도움을 주고 결국 다음 번에 일하는데 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출장의 목적의 반은 이런 networking이기도 하니까.
며칠 지내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물가가 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베이징은 그래도 여전히 비싼 축에 들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훨씬 싸다고 한다. 물가가 싼 건 조만간 여행을 하면서 느끼게 된다. 회사가 베이징 변두리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비교적 도심에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아무리 cooperative price, 회사와 계약된 금액이라고 하지만 호텔 가격도 꽤나 저렴했다. Sheraton hotel이면 비교적 상급 호텔로 여겨지고 머무른 방도 꽤나 넓직하고 잘 갖추어져 있는데 하루 비용이 $138 정도였다. 게다가 이 room rate에는 아침 부페 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도 일의 일부
출장을 가게 되면 밥 먹는 것도 일의 일부가 된다. 일부 팀원들이 San Jose HQ에 있어서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San Jose HQ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매일 점심 약속이 생기게 된다. 하루는 팀원들과, 다른 하루는 내가 속한 그룹이 Director랑, 그리고 시간이 또 빈다면 같이 일하는 Product Engineer (PE) 그룹의 Director가 같이 점심 먹자고 초대해 준다. 다행이 저녁 식사는 조용하게 아니면 지인들과 함께 할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점심 식사는 아무래도 일의 연장선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번 베이징 출장에서는 점심은 대부분 미팅과 겹쳐서 admin이 주문해 준 도시락으로 대부분 해결했지만 저녁 식사 만큼은 각 부서별 사람들과 하게 된다. 그래서 매일 저녁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혔다. 첫날 월요일은 베이징 오피스의 senior manager들이 참석하는 welcome dinner로, 화요일은 우리 팀 베이징 오피스 R&D 사람들과, 수요일은 내가 속한 그룹 전체 senior manager들과 (여긴 50명도 넘은 대규모 식사였다) 목요일은 함께 일하는 PE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결국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회식인셈인데 나름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회식이란게 사실 그런 걸 위한거라 소위 밥 한번 같이 먹고 나면 묘하게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매일 서로 다른 식당에 갔음에도 아쉽게도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매일 꽤나 근사한 식당들이었는데 말이다. 늘 15명 혹은 그 이상, 하루는 거의 50명 넘게 함께 식사를 해서 그런지 늘 정해진 room에서 우리끼리만 식사할 수 있었다. 둥글게 앉아 식사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바로 옆에 앉은 좌우 사람들과 주로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이런 식사 자리에서 딱딱하게 업무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애들은 있는지 어떤 걸 취미로 가지고 있는지 이 회사 오기 전엔 어떤 걸 했는지 등등 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아마 그래서 식사 후에 좀 더 편안한 느낌을 가지는게 아닐까 싶다.
자리에 앉아 식사가 시작되면 정말 이 Lazy Susan 위에 음식이 끝도 없이 차려진다. 너무 종류가 많아 일일이 기억도 못하겠고 생각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못 먹을만한 것들은 없었다. 중국 음식은 알다시피 꽤나 기름지지만 함께 제공되는 따뜻한 차를 마시면 그 느끼함이 쓰윽 풀리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저녁이 꽤나 맛있었다.
San Jose HQ에 출장갔을 때에도 종종 이런 중국식 식당에 가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 때에도 중국계 친구들이 음식을 시키는 걸 보면 꽤나 많이 시키는 걸 볼 수 있다. 위에 검색해서 올린 사진이 결코 꾸며진 것이 아닌 정말로 저녁 식사 내내 음식이 끊임없이 계속 나온다. 너무 많이 나와 다 먹은 접시는 치우고 새 음식을 내온다거나 조금 남은 것이 있으면 옆의 다른 접시에 덜어 자리를 만든 다음 새 음식 접시를 가져다 놓는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나오니까 다 먹지도 못한다. 매일 저녁 나온 음식의 2/3 정도는 사람들이 다 먹었지만 1/3 정도는 늘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게 중국 식사 문화 중에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음식을 시킬 때 다 먹을 수 있을만큼 주문하고 모자르면 추가로 더하지만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시킨다고 한다. 간단한 룰로는 주문하는 요리의 갯수를 참석한 사람 수 + 1 만큼 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이건 식사 대접을 체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나온 음식을 손님들이 다 먹으면 준비한 음식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이 남아야 부족하지 않게 준비한 셈이 되고 손님에게 부족함 없이 대접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식사하는 베이징 오피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음식이 나와도 그리고 꽤나 많은 양이 남아도 별로 신경 쓰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베이징 오피스 사람들과 San Jose HQ에서 함께한 중국계 친구들과의 다른 점은 미국에서는 남으면 싸간다는 것이다. 반면에 매번 식사 후 꽤나 남은 음식이 남았어도 베이징 오피스 사람들은 싸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남는 걸 싸가는 건 미국적인 문화일지도 모른다.
출장 온 다른 이들에게 생긴 에피소드
월요일 오후, 나는 서울에서 출발해 도착했지만 Austin에 같이 있는 다른 미국인 동료와 San Jose HQ에서 출발하는 다른 이들은 United 항공편으로 San Francisco에서 출발해 나보다 1시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중에 두명 정도가 월요일 저녁 식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식당에 오지 못했다. 일단 출발이 1시간 늦어졌는데 그 이후에 막상 출발하려니 갑작스러운 군사 훈련 일정 (당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새로운 비행 경로를 설정하고 항공류를 더 실어야 한다고 1-2시간 더 늦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남쪽으로 돌아 오는 바람에 총 비행시간도 1-2시간 더 길어졌다고 들었다.
시간만 늦어지면 큰 문제는 아니었겠다만 문제는 더 길어진 비행시간 때문에 더 많은 항공류를 실어야 했다는 것이다. 연료 때문에 비행기의 무게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어디선가 무게를 덜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 도착한 미국인 동료의 말에 따르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을 때 United 항공사 직원이 스무명 정도의 승객 명단을 부르더란다. 처음엔 그게 짐이 실리지 않은 승객들 명단인줄 알았는데 반대로 짐이 실린 승객들 명단이었다고 한다. 즉 그 스무명을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짐은 그대로 San Francisco 공항에 남은 것이다. 이 미국인 동료와 더불어 San Jose HQ에 온 다른 이들 전부 짐을 받지 못했다.
화요일 오전, 회사로 출근한 미국인 동료를 만났다. 개인적인 중요 짐들, 회사 랩탑, 카메라 가방등은 가지고 탔지만 대부분의 옷가지가 든 짐가방은 받지 못해 어제밤에 양말과 속옷을 세면대에서 빨아 말렸다고 한다. 갈아 입을 옷도 없던터라 짐을 받지 못한 다른 몇몇은 오전에 쇼핑하러 나갔다고 했는데 자기는 오늘 오후 다음편으로 짐이 온다고 해서 하루 정도 견뎌 본다고 했다. 덕분에 베이징 오피스 admin만 United 베이징 사무소랑 이리저리 연락하고 쇼핑해야 하는 친구들 도와 주느라 정신없게 되었다.
나도 지난 번 둘째의 짐이 낙오가 된 경험이 있어 이게 참 골치 아픈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United 베이징 사무소에서는 오후편에 도착하면 호텔로 보내 주기로 했다는데 그게 그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날 오후 그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자기 아이폰 화면을 보여 주었는데 짐가방에 airtag 넣어 놓았다며 태평양 한 가운데 찍혀 있는 airtag 위치 표시를 보여 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잘 건너 오고 있는 중이라며 얼굴이 환하게 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 친구에게 잘 받았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울상이다. 베이징에 도착은 했는데 분류하고 각각 보낼 곳 정리하는게 쉽게 안 되는지 아직도 베이징 공항 어딘가에 있다며 다시 아이폰 화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어제 밤에 다시 빨래 했다고. 다른 이들은, 그 중에는 중국 본토 출신도 있어 어제 간단히 갈아 입을 옷들을 사 입은 모양인데 우리 팀 이 미국인 친구는 오늘 밤에는 오겠지라고 희망을 가지는 쪽이었다. Admin이 정말 짐 찾아 온다고 열심히 알아 보고 다녔다.
결국 수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admin이 공항에서 직접 짐들을 찾아 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잃어 버리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하나 쉬운게 없는 것 같다. 몇년 전 이 친구가 베이징 출장 왔을 때는 결항 때문에 베이징으로 바로 오지 못하고 상하이로 가는 항공편으로 변경, 상하이를 통해 겨우 베이징에 도착한 경험도 있어 자기는 베이징 출장 올 때마다 무슨 일이 꼭 생긴다며 투덜투덜 거렸다. 나 같아도 자꾸 이런 일이 생기면 베이징 출장 가는게 매번 걱정일 것 같다. 내년에 아니면 그 이후에 또 오게 될텐데 그 때도 그런 일이 생기려나, 적어도 그 때도 이 친구와는 같은 비행기는 타지 말아야겠다.....
목요일 저녁 식사를 마지막으로 일단 공식적인 출장 일정, 일을 하는 일정은 끝났다. 이제 내일 아침에 1박 2일로 야유회 같은 여행을 떠난다. 기대 반 설렘 반.
이번엔 어떤 걸 경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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