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
2024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날이다. 늘 아이들 겨울 방학에 맞추어 여행을 다니다 보니 크리스마스, 한 해의 마지막 날, 혹은 새해의 첫날은 여행지에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바쁘게 살아온 만큼 그래 수고했어라는 작은 도닥임과 함께 나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런 여행의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2024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이 바르셀로나 여행의 마지막날을 시작해 본다.
마지막날의 시작은 돌아가는 비행편의 자리 선택으로 시작한다. 비지니스 좌석을 예매했더라도 British Airways는 자리 설정을 바로 할 수가 없다. 출발 24시간 전에 online check-in이 열리는데 그 때 자리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 전에 미리 마음에 드는 자리를 선택하고 싶으면 일인당 $170 혹은 그 이상을 주고 선택할 수가 있다. 첫번째 먼 해외 여행이었던 작년의 로마 여행 때는 아직 14살이 안 된 막내가 신경 쓰이기도 해서 미리 돈을 내고 좌석 선택을 했더랬다. 당시에는 귀국편인 FCO-LHR-AUS 구간만 British Airways라서 FCO-LHR편은 일인당 $60씩, LHR-AUS편은 일인당 $160씩 추가로 지출했는데 이 좌석 선택에 따로 들어간 금액만 무려 $1,100이었다. LHR-AUS/AUS-LHR 국제선의 비지니스 석은 reverse herringbone 스타일의 독립된 좌석이라서 한번 경험하고 나니 아이들이 떨어져 앉더라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online check-in 때 무료로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런던 구간의 출발 시각은 내일 새벽 6시 40분. 그래서 오늘 새벽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추어 두고 미리 일어나 British Airways app을 열고 online check-in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정확히 40분이 되었을 때 online check-in 버튼이 활성화 되었고 클릭을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인건지 자꾸만 reloading을 반복하며 원래 페이지로 돌아 왔다. 조금 짜증이 날 즈음에 제대로 check-in 페이지가 열렸고 연결편이라 그런지 12시 10분 LHR-AUS 구간도 check-in이 가능했다. 이 때는 미리 항공사가 자리를 지정해 주는데 다들 안쪽 자리라 창가쪽 자리를 선택하려면 뒷편 비지니스 좌석 밖에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창가쪽이 그나마 덜 답답할 것 같아 와이프와 큰애, 막내는 좌측편 창가로, 나와 둘째는 우측편 창가로 자리 선택을 마쳤다. 이제 집에 갈 준비도 대충 마친 셈이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올라 오는데 큰애와 막내가 속이 살짝 불편하다고 했다. 어제 밤에 자기 전에 간식으로 챙겨 두었던 프링글즈를 먹고 바로 누웠는데 그 때부터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와이프도 쉽게 체하는 스타일이라 손 따는데는 아주 도사인데 둘 다 우리 방으로 불러 간단히 손을 따 주었다. 아무래도 체한데에는 손 따는 것만한 것이 없는지 금방 효과가 있는 듯 조금 편해진다고 한다. 다행이 더 심각해 지지는 않고 조금만 더 휴식을 취하면 될 것 같아 보였다. 오늘은 특별한 큰 스케줄이 있는 것이 아니니 무리하지 말자고 하고 방에 돌아가 일단 쉬라고 했다. 다행이 체크아웃이 12시까지여서 짐 싸 놓고는 11시까지 방에서 쉬라고 했다.
11시에 우리 짐을 들고 아이들 방으로 건너가니 그 사이에 속이 편해져 잠깐 잤는지 아침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아 보였다. 여행 중에 아프면 제일 고생이고 걱정이 된다. 미국에서도 병원 찾아가는게 쉽지 않지만 머나먼 유럽 한복판에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문득 몇년 전 New Orleans에 갔던 기억이 난다. Pier 근처 Aquarium에 갔었는데 갑자기 막내가 식은 땀을 흘리며 복통을 호소했다. 어디 벤치에 앉아 좀 누워 있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몇걸음 걷지 못하고 다시 불편하다고 주저 앉았다. 결국 막내를 업고 호텔까지 20분 여 정도를 걸었는데 정말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날이 없었다. 아마 다른 일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지 싶다. 난 아빠야라고 되뇌이며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업고 왔는데 정말 내 아이이니까, 내가 아빠니까라는 생각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다만 아이가 건강하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것이 문제인거지.
프론트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큰 짐은 다 맡겼다. 그리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탐험을 떠나 본다.
Souvenir Magnets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행 다니기 초반 언젠가부터,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을 때부터 국내 여행이라도 어딘가 가게 되면 다녀 온 곳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마그넷을 샀다. 그동안 많은 곳을 다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갈 때마다 하나씩 사서 모으다 보니 꽤나 많은 양이 되었다. 집에 study room이 따로 있어 그 앞 벽면에 IKEA 철판 액자를 세개쯤 달아 그동안 모은 마그넷들을 붙여 놓았는데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 중에도 Sagrada Familia, Monserrat 수도원, Monjuic 박물관/성, Parc Guell, Casa Battlo 등등 방문지마다 하나씩 마그넷을 구해 왔다. 그런데 어제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갔을 때 그 마그넷을 못 구했다.
보통 이런 마그넷은 내부 구경을 다 마치고 나오는 출구쪽 Gift shop이 있어 거기에 있기 마련인데 어제 마지막 Cloister를 돌고 나올 때 사람들에게 치어서 서둘러 나오느라 미처 찾아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Ramblas로 가기 전에 찾아 보고 들려 보기로 했다. 어짜피 가는 길 위에 있으니까. Google Maps로 검색하니 특이하게 대성당 광장 좌측 건물 1층에 Gift shop이 있었다. 이걸로 또 하나의 숙제 끝.
Mercat de la Boqueria (a.k.a La Boqueria)
La Rambla 혹은 Las Ramblas라고 불리우는 길은 카탈루나 광장에서 해안까지 길게 뻗은 바르셀로나의 관광 거리이다. 한쪽에 Gothic quarter를, 그리고 그 주변에 수많은 박물관들과 유적들로 가득찬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 명동쯤 된다고 할까. 카탈루나 광장을 기준으로 반대편 북쪽 Eixample 지역으로 뻗은 길은 Pg. de Gracia라고 하는데 거기는 온갖 명품 가게로 들어찬 신시가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서울의 강남, 혹은 핫플레이스로 뜬다는 성수, 홍대 거리 같다고나 할까. 카탈루나 광장을 기준으로 위, 아래가 이렇게 분위기나 느낌이 확 달라진다.
검색을 하거나 여행 책자를 읽으며 알아 볼 때 어떤 곳은 La Rambla라고 하고 다른 곳은 Las Ramblas라고 조금은 다르게 부르고 있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궁금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Google 검색창에 "La Rambla vs" 까지만 입력했는데 자동 완성으로 뒤 따라 오는 단어가 "Las Ramblas"였다.
La Rambla는 단수형의 카탈루나 이름이고 Las Ramblas는 복수형의 스페니쉬 이름이란다. 나중에 여행기 에필로그에서 한번 언급하겠지만 카탈루냐 지방은 카탈루냐어에 대해서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CA/TX 등 멕시코와 인접하고 히스페닉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영어와 스페니쉬가 같이 병기 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바르셀로나에서는 카탈루냐어로 먼저 써 있고 그 다음에 스페니쉬로 적혀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오늘 오전에 Las Ramblas 길위에서 제일 먼저 방문할 곳은 Mercat de la Boqueria, 정식 이름은 Mercat de Sant Josep de la Boqueria인 시장이다.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 여행기들을 보다 보면 체험적인 관광으로 광장 시장을 찾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시장 상인들의 불친철과 바가지 요금으로 다들 가지 말라고 말리는 분위기인데 그래도 소위 말하는 Street K-food를 맛볼 수 있는 톡특한 장소로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장소로 여겨지는 듯하다. 구경도 구경이고 여러 다른 종류의 음식을 조금씩 먹고 즐겨보는 체험이 가능하니까. 집에서 한식을 주로 먹고 떡뽁기 등 한식 군것질에 익숙한 우리 애들도 한번 가 보면 신기해할 장소이긴 한 것 같다. 그런 광장 시장 같은 곳이 바로 이 Mercat de la Boqueria이다.
이 시장은 무려 1217년에 첫 기록이 있을만큼 오래된 시장 구역이다. 당시에 옛 바르셀로나 도시 입구에 고기를 팔던 상점들이 이곳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15세기까지만 해도 Mercadi Bornet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그 때는 특정 건물이나 시장 구역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Placa Nova라는 광장의 일부로 여겨졌단다. 현재의 La Boqueria라는 이름은 염소를 뜻하는 카탈루나어 boc에서 유래 했다고 하니 Boqueria는 염소 고기를 파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1840년 바르셀로나 시가 정식으로 여기에 시장 건물을 짓기로 하고 Mas Vila라는 건축가에게 의뢰해 1853년에 관공, 1911년에는 fish market이, 그리고 지금의 금속 지붕은 1914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정말 오래된 장터의 느낌이 된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말 그대로 시장 골목이다. 구획별로 잘 나뉘어진 시장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지금은 식료품이나 생선, 정육 코너들보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먹거리 상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 안을 돌아다니면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이 있으면 몇개 주문해서 손에 받아 들고 먹는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 눈요기를 좀 하며 안쪽으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얼마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 앞에 시장의 끝이 보였다. Google Maps에서 보았을 때는 꽤나 크고 넓은 공간처럼 보였는데 실제 돌아다녀 보면 그다지 넓은 곳은 아니다. 게다가 주문해서 먹을거리를 받으면 그 앞에 앉아 먹을 수 있는 좌석도 없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파는 먹을거리는 finger food라고 불릴만한 걸으면서 먹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말로만 듣던, 그리고 호텔 조식에서 보았던 하몬, 다른 여러 종류의 햄들, 과일류, 빠에야를 커다란 팬에 만들어 놓고 일인분씩 덜어 파는 상점, 설탕이나 초콜렛으로 코팅한 견과류, 중간 정도 크기의 해산물 튀김, 한손에 들어 오는 작은 빵/파이류, 크로와상, 미니 바게트 안에 햄이나 너겟류를 넣은 샌드위치 등등. 이렇게 기억나는 대로 적고 나니 괘나 다채로웠던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게 전부였던 것 같다. 서로 다른 가게들이 각각의 특색이 있다기 보다 서로 비슷한 종류들만 팔고 있었다.
그래도 분위기라고 사람들로 북적 북적하고 먹을거리가 가득한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푸짐하게 하나를 시켜 먹는 것이 아니라 군것질 거리로 조금씩 사 먹는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아이들 각자 입맛이 달라 같이 다니기 보다는 나와 막내가 한팀, 와이프와 큰애 둘째가 한팀으로 나뉘어 각자 돌아 다니며 알아서 먹고 싶은 것 골라 먹기로 했다. 크레딧 카드 설정에 transaction이 있으면 금액에 상관없이 바로 notification이 뜨도록 설정해 놓았는데 나와 막내가 무얼 먹을지 몰라 아직 구경 중인데도 저쪽팀은 정말 여러 종류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사 먹는지 결제한 내용의 notification이 줄줄이 떴다. 나중에 물어 보니 환전한 유로 남은 것도 탈탈 털어서 뭔가 사 먹었다고 한다. 그래, 시장 구경이란게 뭐 별거더냐, 이렇게 물건, 사람 구경하면서 하나씩 맛보는게 시장 구경이지 뭐.
나랑 같이 다니게 된 막내는 아침부터 안 좋았던 컨디션이 아직 안 풀렸는지 여러 가게를 돌아 다니면서 구경하면서도 선뜻 먹고 싶은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뭐라도 사 보려 했지만 오히려 속이 불편한데 억지로 먹으면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너무 강요하지는 않기로 했다. 골목을 헤매다가 눈에 띄인 꼬치 하나, 파이 하나를 샀고 너겟이 보이길래 그것도 하나 샀다. 마땅히 앉아서 먹을 곳이 없었는데 시장 끝쪽에 가니 조그마한 광장이 있어 일단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중간 중간 턱이 있어 걸터 앉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꼬치와 파이를 들고 앞에 가고 있었고 막내가 뒤에서 너겟을 들고 따라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내가 비명을 지른다. 뒤돌아 무슨 일인가 살펴 보니 주변에 있던 갈매기, 비둘기들이 막내가 들고 있던 너겟을 노리고 일제히 달려 들었던 것이다. 막내는 부리나케 내쪽으로 달려 왔고 자리를 찾아 앉고 나서 보니 막내가 들고 있던 너겟 접시는 이미 비어 있었다. 놀라서 쏟아 버렸는줄 알았는데 막내 왈, 새들이 일부 채어가고 나머지는 쏟았는데 새들이 다 집어 갔단다. 광장 바닥이 깨끗한 이유가 다 있었던거다. 헐...
나와 막내는 더 돌아 다녀 봐야 별로 관심 있는 것도 없어 보여 둘은 시장 정문을 통해 다시 Las Ramblas 길 위로 올라 왔다. 남은 가족들에게 우리 여기 있다고 문자 메시지 보내고 길 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사람들이 건너편 Gothic quarter 쪽에 다른 건물을 올려다 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을 따라 우리도 눈길을 돌려 보니 3층쯤 되는 곳 발코니에 마릴린 몬로 의상을 입은 어떤 이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주목을 끌고 있었다. 그 건물 1층에 보니 간판이 하나 달려 있었다. "Erotic Museum". 아, 그래, 이런거 하나 있다고 여행 책자와 인터넷 검색 중에 본 기억이 났다.
... 사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긴 했더랬다.
Palau Guell
와이프와 큰애, 둘째도 이제 배를 채웠는지 시장에서 나왔고 이제 함께 다음 장소로 옮겨가 보기로 한다. 다음 목표는 Palau Guell.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엘 궁전"이며 그 Parc Guell에 나오던 그 Guell이다. 오후에 이 곳에 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것 저것 구경하려고 했기 때문에 얼마나 시장에서 시간을 보낼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장은 작았고 별로 먹으며 구경할 장소도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광장 시장 같은 곳을 가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로 보았을 때 여기 저기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서 여기도 그럴거라고 했는데 그만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Palau Guell이 바로 Las Ramblas 위에 있지는 않고 한블럭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내려 가다 보면 Ras Ramblas 길위에서 골목 안을 들여다 보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Palau Guell은 Eusebi Guell이 우리가 아는 그 안토니 가우디에게 의뢰하여 만든 집이다. Eusebi Guell의 아버지는 Joan Guell Ferrer로 쿠바에서 노예무역으로 큰 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래서 Eusebi Guell은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 그는 1871년 또다른 노예무역상의 딸인 Luisa Isabel Lopez y Bru와 결혼하였고 모두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고 직물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게되어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 중의 한명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1878년 파리 무역 박람회에서 안토니 가우디를 만나게 되고 그 때부터 그의 후원자이자 동료로 지내게 된다. 그렇게 Parc Guell과 Palau Guell이 탄생하게 된다. Palau Guell은 원래 구조물이 약해지고 부서지기 시작해 2004년 리노베이션을 위해 관광객 입장을 금지했다가 2011년 4월 완전히 restoration을 거쳐 재개장 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가우디 작품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Las Ramblas에서 그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앞에 긴 줄이었었고 ticket office에 가니 "Sold out today"라고 적혀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 보았다면 Casa Battlo처럼 가우디의 상상력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들어가 볼 방법이 없었으니 아쉬움에 그 앞에서 외관만 사진 몇장을 찍고 발걸음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아쉬워라...
Columbus Monument
발걸음을 계속 재촉해 Las Ramblas 길의 끝에 도착하니 바로 눈 앞에 지중해 앞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곳에 작은 광장과 함께 높은 기념탑이 서 있다. 바로 Columbus Monument이다. 우리가 아는 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맞다.
1451년 이탈리아, 정확히 말하면 제노바 공국(Republic of Genoa)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을 처음으로 횡단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여기가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인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중앙 아메리카에 사는 원주민을 "인디오 (indios)"라고 부르는데 이는 인도라고 착각한 콜럼버스가 "Indians"라고 생각하고 지어준 이름이다. 한때는 새 대륙을 발견하고 유럽 대륙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시초를 마련해 주었다고 영웅 취급을 받았으나 그로 인해 유럽으로부터 전파된 전염병은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고 노예와 착취의 역사로 이어져 최근에는 특히 중앙/남 아메리카에서는 영웅이 아닌 침략자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과거 영광에 대한 향수랄까, 그를 영웅으로 기리는 이들도 많다. 여기 바르셀로나 끝자락에 서 있는 Columbus Monument도 그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정작 스페인의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뉴스에 "한국계" 누군가의 성공을 보도하는 걸 많이 보아 왔다. 열심히 노력한 누군가의 결실인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한국 사람이면 늘 "한국계"임을 강조하곤 했다. 나도 때론 그 뉴스를 보며 자랑스러워했지만 막상 미국에 와서 20년 정도 살다 보니, 그리고 내 아이들은 여기서 태어나서 커가는 걸보니 이 아이들은 한국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나는 서울 태생이고 서울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버지 친가쪽은 전부 경상도 분들이다. 그럼 내가 경상도의 자랑스러운 자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살면서 한번도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4번에 걸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대서양 항해가 끝난 후 말년의 콜럼버스는 당시 스페인 왕국이라 할 수 있는 카스티아 연합왕국에 자신 발견과 그에 따른 부의 수입 1/10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연히) 거절 당한다. 그리고 1506년 54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그가 죽은 후 유해는 당시 수도였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위치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묻혔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안식을 찾지 못한다. 여러번의 이장이 있었고 1536년쯤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성당으로 옮겨져 온다. 콜럼버스는 생전에 이 섬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다. 1793년 프랑스가 이 섬을 점령하자 쿠바로 다시 옮겨졌고 쿠바가 독립한 후 유해의 일부가 세빌 (Seville)에 있는 Seville Cathedral에 옮겨져 왔다. 이렇게 유해가 여기저기 옮겨져 다니고 나뉘어지면서 2003년에는 세빌에 있는 유해에 대해서 유전자 감식까지 이루어졌는데 다행이 그의 형제들 유전자와 일치해 진품(?)임은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1877년 한 수도자가 "Discoverer of America, First Admiral; Last of the remains of the first admiral, Sire Christopher Columbus"라고 적힌 납상자를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 도밍고에서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한쪽 팔/다리 그리고 총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Columbus Lighthouse(콜럼버스 등대)라고 하는 곳에 옮겨져 안치되어 있다. 그래서 콜럼버스의 무덤을 검색해 보면 이 두 곳, 세빌 대성당 안의 무덤과 콜럼버스 등대 안의 무덤 두개가 나온다. 이 콜럼버스 등대 안의 유해에 대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보려고 했지만 산토 도밍고 측에서 허락은 안 하고 있다고 한다.
높은 기념탑 위에 우뚝 서서 자신이 항해했던 방향을 가르키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그 흉내를 내며 사진 포즈를 잡았는데 그가 가져온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그에 따른 잔혹한 원주민의 역사, 그리고 미국이라는 대형 국가의 탄생까지 일련의 일들은 그 때 콜럼버스가 항해를 나서지 않았더라도 몇년 후 혹은 몇십년 후 누군가의 의해 어짜피 이루어졌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좋은 결과이었든지 나쁜 결과이었든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름을 남기고 기념탑 위에 서 있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기억하자, 언젠가 일어났을 그 시간에 바로 그곳에 있던 사람.
L'Aquarium de Barcelona
생각보다 짧았던 Mercat de la Boqueria 방문과 들어가 볼 수 없었던 Palau Guell 때문에 생각/예정했던 스케줄보다 한 3시간쯤이 비어 버렸다. 아침에 체크 아웃을 하고 저녁에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어디 들어가 쉴 곳도 없었고 공항에서는 저녁 식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 이 곳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해야 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그래서 찾아 낸 곳이 바르셀로나 수족관 (L'Aquarium de Barcelona). 아이들이 수족관을 좋아해 어느 도시에 가든지 수족관이 있다면 한번쯤 방문하게 된다. Google Maps에서 위치는 찾았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부둣가쪽으로 한참을 돌아서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외관은 어느 여타 수족관보다는 화려했다. 내부는 생각한 것보다는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많은 수족관들이 커다란 수조 밑을 통과하는 회전 터널을 가지고 있지만 바르셀로나 수족관의 회전 터널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실 수족관은 내용 면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것들을 어떻게 배치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바르셀로나 수족관은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쉬면서 잔잔한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을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휴식 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했던 수족관을 나서니 5시쯤 되었다. 일찍 저녁을 먹고 짐을 찾아 오늘 밤을 보내기로한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라 지난 번 빠에야를 먹었던 El Glop에 가 보기로 했다. 마침 호텔 근처라 어짜피 그 방향으로 가긴 가야 했기 때문이다.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Google Maps로 검색해 방향을 잡으려는데 안내에 오늘은 오후에 일찍 문을 닫는다고 나와 있었다. 아, 오늘이 2024년의 마지말 날, 12월 31일이었다는 걸 깜빡 했다. 호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보니 벌써 문을 닫은 상점/식당들이 꽤나 있었다. 첫날 저녁을 먹었던 일본 라면집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기도 들어가려 하니 마감 되었다고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 저녁으로 꽤나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런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래도 관광 도시라 카탈루냐 광장까지 나간다면 여러 식당들이 아직 문을 열었을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너무 멀리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마침 호텔 옆 며칠 전 들렸던 일본 라면 식당이 아직 문을 열고 있어 거기서 마지막 저녁을 해결했다.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일본 라면집이 꽤나 많았다. 미국에 있을 때 종종 일본 라면집을 가곤 했는데 대부분은 먹고 나면 후회를 하게 된다. 너무 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녀본 미국 내 일본 라면집 중에 짜지 않았던 집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면과 챠슈 정도만 건저 먹고 말게 되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일본 라면집들을 짜지 않고 맛있었다. 국물이 짜지 않다 보니 면과 챠슈 외에도 진한 육수 국물도 숫가락으로 계속 떠 먹게 된다.
마지막 식사가 아쉬웠는지 아이들은 안쪽 골목에 위치한 전통 이탈리아식이라고 쓰인 젤라또 가게에서 젤라또를 하나씩 집어 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행와 일본 라면과 이탈리아 후식으로 마무리를 하는게 아이러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스페인 음식이라고 하면 딱히 떠오는 것이 없다. 기껏해야 빠에야와 tapas 정도인데 tapas는 특정된 음식이 아니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 가서 뭐 맛있는거 먹고 왔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마땅치 않다. 입이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눈이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은 후에 막내에게 공항 버스 타야 할 장소를 막내의 아이폰에서 보여 주고 앞장 서라고 했다. 늘 언니들, 엄마 아빠 뒤만 따라다니느라 수동적인 것만 같았는데 막상 또 시키니까 잘 찾아가는 걸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우리가 머무를 공항 내 호텔은 바르셀로나 공항 Terminal 1에 위치하고 있어 Aero bus A1을 타면 된다. 카탈루나 광장 옆에 위치한 Aero bus 정류장에 가면 그 앞에 자판기가 있어 거기서 티켓을 구매하고 바로 탈 수 있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눈에 담아 보고 싶었지만 바깥은 벌써 캄캄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은 어둡고 차 안은 밝은지라 창가에는 내 모습만 비쳐질 뿐 창 너머의 모습은 그냥 어둠 그 자체였다. 문뜩 첫날 도착해 공항에서 카탈루냐 광장에 올 때까지 지켜 보았던 그 바르셀로나의 첫 느낌이 창 너머 모습으로 투영되어 진다. 그렇게 온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되돌아 갈 시간이다.
바르셀로나 공항 Terminal 1에 위치한 Sleep & Fly 호텔은 공항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어 예약을 하고 나서 도착한 확인 이메일에 어떻게 찾아와야 하는지 설명이 첨부 되어 있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Aero bus로 Arrival에 도착하는 경우 탑승동 wing side 건물쪽으로 오면 작은 호텔 안내 표지판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있는 인터컴으로 연락하란다. 그런데 그 호텔 표지판이 작아 쉽게 눈에 띄이지 않았고 꽤나 헤맨 후에야 겨우 입구와 인터컴을 찾을 수 있었다. 인터컴을 들어보니 자동으로 신호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구가 덜컹하고 lock이 풀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2층으로 내려가 좁은 복도를 따라가니 그제서야 호텔 리셥션이 나왔다.
호텔에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새벽 6시 40분 비행기라 4시에 체크 아웃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아침에 카운터에 가서 baggage check-in 하고 다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해도 된다고 한다. 일단 내일 아침 스케줄을 보고 움직이기로 하고 방을 찾아가 쉬기로 했다. 호텔은 작은 business hotel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로마 공항에 있던 호텔보다는 훨씬 호텔 같은 분위기와 정돈된 객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일단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 본다.
바르셀로나와도 이제 안녕이지만 2024년도 안녕을 고해야 한다.
항상 시간이 지나면 후회되는 것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래도 2024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 보련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또 다시 이렇게 먼 곳까지 여행 올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Adieu Barcelona, Adieu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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