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바르셀로나 여행 2024년 12월

바르셀로나 여행기 - 여섯째날 몬주익 성

by 피터K 2025. 6. 7.

 

Monjuic 성 가는 길

 

Monjuic 성에 가는 길은 같은 Monjuic 산등성이에 있는 카탈루냐 예술 박물관 가는 길과는 조금 다르다. 호텔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박물관 앞까지 한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Liceu 역에서 메트로 L3를 타고 Parallel 역으로 간다. 그러면 그 역에서 Monjuic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Funicular를 탈 수 있다.

 

Funicular는 일종의 케이블카 같은 것인데 다른 일반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연결된 케이블에 달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탈길에 철로를 깔아 놓고 그 철로 위로 전차/열차 같은 형태의 객실을 케이블로 연결해 당겨 올라가는 철도 시스템을 이야기 한다. 상당히 가파른 경사로에 놓이는 철도 시스템이라 일반 열차의 동력 시스템으로는 오르내릴 수 없는 곳에 주로 설치된다. San Francisco의 케이블카도 비슷한 시스템인데 Funicular와 다른 점이라면 Funicular는 케이블이 객차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San Francisco의 케이블카는 지하에 설치된 케이블은 계속 움직이고 있고 케이블카 안에서 차장이 레버를 이용해 이 케이블을 잡거나 놓는 방식으로 케이블카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차장이 서고 싶을 때와 가고 싶을 때를 정할 수 있다. 그래서 San Francisco 케이블카를 타 보면 안에서 차장이 정말 열심히 여러 레버를 조정하며 케이블카를 조정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나서 바닥에 보면 가운데 길게 파인 홈 안에 굵은 케이블이 쓱쓱 소리를 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가 있다. 

 

메트로 L3의 Parallel 역에서 Funicular로 갈아 타는 건 일반 메트로 노선을 갈아 타는 것과 비슷하다. Parallel 역 플랫폼에 내려 Funicular로 환승하는 안내하는 표식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Funicular를 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나게 된다. 환승 거리는 일반 메트로 환승 거리보다는 조금 더 길었던 걸로 기억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환승하며 Monjuic 산으로 올라가는지 Funicular 플랫폼 가까이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설 수 있는 라인이 바닥에 그려져 있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근차근 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갔던 그 날 그 시간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줄을 서지 않고도 바로 Funicular를 탈 수 있었다. 완전 다른 시스템이라 Funicular를 탈 때 새로 티켓을 사야 하나도 궁금했는데 그런 건 필요없었고 환승처럼 플랫폼에서 대기하고 있는 Funicular를 바로 타면 되었다. 

 

"Funicular de Monjuic" 내부. 경사로를 계속해서 올라 가기 때문에 열차 안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상당히 급한 경사로를 올라가는 열차라서 그런지 내부는 일반 메트로 열차에서 보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라 바닥이 계단처럼 중간 중간 턱이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이여야 경사를 올라가는 동안 바닥이 수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전망을 보면서 올라가면 좋을 것 같아서 맨 앞칸을 찾아갔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나보다. 벌써 첫번째 칸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차 맨 앞에 운전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첫번째 칸에 탑승하면 앞이 훤하게 뚫려 있어 경관을 구경하기에 좋아 보였다. 어중간 하게 중간에 앉기 보다는 그럼 차라리 후경이라도 보면서 가자라는 생각에 아애 맨 뒷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확히 몇량의 열차칸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대강 4량 정도가 연결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사람들이 맨 앞칸에만 몰려 있었고 두번째 칸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잠시 후 출발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닫히고 나서 Funicular는 서서히 Monjuic 산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작되는 플랫폼은 메트로 역과 연결되어 있어 지하 부분이었지만 조금만 지나자 지상 부분으로 올라 왔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바르셀로나 전경을 구경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Funicular 노선이 놓은 곳은 주택가, 상가 부분을 지나게 되는지라 지하로 반쯤 묻힌 선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고 소음 때문인지 좌우로 방음막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올라가는 동안 뭔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전체 노선도 길지 않아 3분 정도면 Monjuic 중턱에 위치한 역에 도착할 수 있다. Funicular 도착역의 바로 길 건너에는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공중 케이블카가 따로 있었는데 바르셀로나 전경을 구경하면서 올라 오고 싶으면 차라리 이 케이블카가 더 나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건 일반 메트로 시스템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따로 티켓을 구매하고 타야 한다.

 

Funicular 도착역이 바로 Monjuic 성 앞은 아니었다. 도착역은 Monjuic 성의 중턱쯤 되는 곳에 있고 도착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Monjuic 성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다. 메트로 10회 이용권을 샀기 때문에 매번 메트로/버스를 탈 때마다 몇번씩 타는지 숫자를 세고 있었는데 이렇게 갈아 타는 경우가 있어 10회 이용이 넘어 갈 것 같아 걱정을 했더랬다. 메트로를 타려고 개찰구를 통과할 때 이 이용권의 남은 이용 숫자가 뜨는데 내가 계산하고 있던 남은 이용 횟수보다는 더 높게 나와서 나중에 찾아 보니 한국 환승 개념과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 내에 버스/메트로 환승의 경우 따로 횟수가 차감되지 않는다고 한다.   

 

 

Castell de Monjuic (Monjuic 성)

 

급히 서두르지도 않고 꽤나 느긋하게 움직인 것 같은데도 입장권 예매 시간인 10시 30분보다 훨씬 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바로 입장하지 않고 그 앞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 보며 전경을 구경할 수도 있었고 앞에 전시된 오래된 포대에 올라가서 사진도 찍으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개관 시간인 10시가 되어가자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고 입구 역할을 하는 다리 앞에 미리 줄을 서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서두를 이유가 없어서 성 외곽을 더 둘러 보다가 입장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입장을 하고 입구가 한산해진 다음에 입구로 향했다. 아직 예약 시간인 10시 30분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입장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들어 가기로 했다. 보통 인터넷 예약을 하는 경우 ticket booth에서 예약한 내용을 보여 주고 일반 입장권으로 교환하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이 곳은 인터넷 예약줄이 따로 있었고 그 안내를 따라 가니 테이블에 한사람이 앉아 프린트된 예약자 명단에서 내가 제시한 예약 번호를 확인하고는 입장을 시켜 주었다.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모이는 곳이라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특이하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 보았다.

 

그 사람 뒤로 오디오 가이드를 위한 디바이스들이 있어 이건 어떻게 사용하냐고 물었더니 빌리는데 2 Euro라고 했다. 예매를 할 때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는 정보를 본 것 같은데 물어 보니 오디오 가이드를 스마트폰에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걸로 봐서 디바이스를 빌리지 않고 내 스마트폰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오디오 가이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서 더 자세히 알아 보지 않아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다.

  

Monjuic 성 입구. 앞 부분은 해자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꼭대기에 있는 성체에 물을 가둘만큼의 해자를 둔다는 건 불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내부로 들어 가게 된다. 성에 올라 옆에서 보면 입구 위쪽에 도개교로 사용된 듯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성체이니 당연히 도개교가 있었을거라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었을 때는 아직 입장 시간이 안 되어서 한가해 보이지만 막상 개관 시간이 되자 엄청 복작복작해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 서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우선 아래로 내려 가니 커다란 전시 공간이 있어 "Inspired by Gaudi"라는 이름으로 의상 전시장이 있었다. 여러 패션 디자이너들이 가우디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옷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문뜩 가우디는 이런 걸 별로 안 좋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우디하면 곡선의 미학을 들 수 있는데 큰 아이가 둘러 보더니 여긴 왜 이리 직선 디자인이 많은거냐며 영 가우디 답지 않다고 촌평을 남긴다. 동감이다.

 

정말 뜬금없는 듯한 전시 공간. 뭐라고 어떻게든 가우디에 기대보려는 모습처럼 보여서 씁쓸했다.

 

조금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쌩뚱맞은 전시실을 벗어나 아까 그 입구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가면 Monjuic 성의 가장 낮은 성채 부분에 올라서게 된다. 탁 트인 전경을 즐기며 넓은 성채의 외곽을 따라 걷다보면 각 모서리마다 관측, 보초를 서던 작은 망루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들어온 입구와 그 다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입구 바로 앞에 도개교 흔적을 볼 수 있다. 대체로 모든 성체가 그렇듯이 외곽은 톱니 모양의 블럭처럼 생겨 그 사이로 총/포를 쏠 수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 처음 맞이하는 성채의 전경. 사방이 탁 트인 전망에 이 정도면 이 곳에 성체를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걸 한번에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것처럼 중간에 또 하나의 내부 성체가 있고 군인들의 숙소와 창고로 쓰인 방들이 있다.

 

내부 성체에 꼭대기로 올라 오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훤하게 보인다. 그만큼 최적의 요새라는 뜻이다. 사진에 보이는 붉은색/노란색의 깃발은 카탈루냐 자치주 깃발. 분리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올만큼 카탈루냐 지방은 스스로의 자부심이 강하다.

 

해안가 시내 뿐만이 아니라 북쪽으로 펼쳐진 신시가지까지 한눈에 들어 온다. 왼쪽 산꼭대기가 첫날 가려다 못 간 Tibidabo 산.

 

문외한이 보더라도 Monjuic 산은 바르셀로나 전체를 내려다 볼 뿐만이 아니라 바다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에 해안 관측을 위한 망루와 봉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요새가 세워지기 시작한 건 1640년, 스페인의 왕권 강화와 프랑스 전쟁에 따른 징집에 대한 반발로 카탈루냐 지방에 반란이 일어나면서부터라고 한다. 반란은 1652년 펠리페 4세에 의해 진압되며 12년에 걸친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로 인해 Monjuic 요새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게 되며 1688년 프랑스와의 전쟁 중에 바르셀로나 공방전을 거치며 요새는 점차 성채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1730년 카탈루냐 지방의 방위를 맡게된 Giovanni Antonio Medrano가 각 지역 성채를 보강하게 되면서 Monjuic 성의 새로운 설계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 새로운 설계에 따라 기존의 성채는 1751년에 철거되고 1779년에서 1799년까지 스페인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인 Juan Martin Cermeno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완공될 당시에는 무려 120문의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808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하면서 이 Monjuic 성을 차지하게 되는데 의외로 성을 방어하는 군대는 프랑스 군대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나폴레옹 군대는 총 한방 쏘지 않고 이를 손에 넣게 된다. 

 

전쟁의 시기에는 이러한 성채는 듬직한 방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적군에게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공포스러운 공격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는 건 성채에서 쏘는 대포가 바르셀로나 시가지 한복판에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근처 가우디가 다녔다는 작은 성당이 있는데 그 앞 광장에 가면 도시에 떨어진 대포로 생긴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군대의 성채라는 것은 정치적 압박의 시대에는 공포의 장소가 될 수 밖에 없다. 무시무시한 정치적 수용소/감옥으로서 말이다.

 

성채 내를 돌아 다니다 보면 한쪽 조용한 구석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은 평지에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뭔가 역사적인 이야기를 잔뜩 적어 놓은 안내판이라 궁금해서 읽어 보았더니 스페인 내전 당시 카탈루냐 지방 정치 대표였던 Lluis Companys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프랑코 독재 시절 이곳 Monjuic 성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가 1940년 10월 15일 아침 6시 30분, 바로 이 자리에서 사형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유럽 파시즘 시절 유일하게 처형된 민선 대표라고 한다. 지금은 한가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기 저기 둘러 보는 장소이지만 사실 어두웠던 과거를 품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슬픈 장소이기도한 복잡미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채 중간에 보면 한번 더 우뚝 솓은 내성채가 보이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성채를 둘러싼 회랑 부분의 안쪽은 다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 군대가 주둔할 때 장교의 숙소, 혹은 무기고, 창고 등으로 사용된 장소라고 한다. 일부는 현재 카페로 변경되어 간단한 차와 샌드위치등을 파는 곳으로, 일부는 전시실로 꾸며져 Monjiuc 성의 역사와 당시 사용되었던 여러가지 무기,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와 그 뒤에 숨은 슬픈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내전의 격동의 시절에는 참 복잡한 시대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해서 어느 한쪽 편에 서야 했던 사람들과 그로인해 생겨났던 차별과 고통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남의 나라와 싸우는 전쟁과는 달리 서로의 이웃과 동족이 반목해야 하는 내전은 더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게 마련인 것 같다. 성채 위에서 서서 탁 트인 주변을 살펴 보며 참 아름다운 곳이다라는 것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할텐데 그 안에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이 배어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플 따름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Monjuic 산 정상에 서 있는 전망 좋은 성채. 그 하나만 알고 온다면 그 위에 올라 아름다운 전경과 손 때 묻어나 있는 것 같은 성벽들을 둘러 보며 예쁜 사진을 찍는데만 신경 썼을지 모르겠다. 여행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야기가 동반되지 않는 여행은 그냥 왔노라, 보았노라, 갔노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불과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비슷한 일을 겪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일부는 경험해 보았던 터라 Monjuic 성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성채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본다.

 

내부 성채 안쪽에 들어서면 주변을 둘러친 회랑 공간이 있다. 각 회랑마다 방이 있는데 일부는 장교들 숙소로, 일부는 병참 창고, 무기고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쪽 회랑에는 방들을 연결해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내성채 안쪽 공간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서 아이들에게 젤라또도 사주고 둘째가 여기저기 보이는 것들을 스케치 하는 동안 잠시 고단한 발을 쉬며 따뜻한 스페인의 햇살을 즐겨 본다. 오후에 가야 할 곳은 다시 호텔 근처라 점심은 돌아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Monjuic 성 근처에 적당한 식당은 있을리 만무했고 암튼 Monjuic 산을 내려가긴 해야 했으니 말이다.

 

 

찐 빠에야를 먹어 보기 위한 모험, a.k.a, 점심 식사

 

스페인에 온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빠에야라고 한다. 아주 간단히, 그리고 급하게 첫날 Sagrada Familia 앞에서 주문해서 먹었던 빠에야는 추운 길거리에서 먹어서 그런지 반을 먹기도 전에 차갑게 식어 버려 사실 어떤 맛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된 빠에야를 먹어 보기로 했다. 와이프가 이런 저런 검색을 하더니 카탈루냐 광장 근처의 빠에야 맛집을 찾아 내었다. 네이버 블로그들을 찾아 보며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고 언급하는 가게를 찾아낸 건데 오후 일정에 가야 하는 곳 방향이라 지금이 딱 방문하기 알맞은 시간이었다.

 

일단 성을 빠져 나와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에스파냐 광장(Placa d'Espanya)까지 내려 갔다. 거기서 메트로를 타면 카탈루냐 광장으로 돌아 갈 수 있다. 아까 Funicular를 타고 도착한 역 앞을 지나쳐 갔는데 벌써 내려가는 줄이 역사 밖에까지 기다랗게 만들어져 있었다. 내려가는 동안 Monjuic 산중턱에 위치한 올림픽 경기장 옆을 지나게 되는데 주 경기장 바깥쪽에 높이 솟아 있는 성화대가 보였다. 신선했던 성화 점화 방식이 기억나 유튜브에서 찾아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아이들이 꽤나 신기해 했다. 뭐 당시에 직접 텔레비젼에서 볼 때도 신기했었으니까. 

  

이미지에 유튜브 링크를 연결해 놓았다. 연결이 안 되면 유튜브에서 "barcelona olympic torch lighting"을 검색하면 된다. 화살을 쏘신 분은 Antonio Rebollo라는 분으로 스페인 팰럴림픽 양궁 선수라고 한다. 엄청나게 연습을 많이 했고 실제로 화살을 정확히 성화대에 올릴 수 있었지만 현실은 화살이 성화대를 살짝 지나가고 성화대는 거기에 맞추어 자동으로 불이 붙게 했다고 한다. 이건 실수하면 큰일나는 것이니까.

 

 

 

종종 빠에야와 리조또를 헤깔려하는데 둘은 분명 다른 음식이다. 우선 빠에야는 스페인 음식, 리조또는 이탈리아 음식이다. 리조또는 쌀을 불리지 않고 삶기보다 육수와 크림과 함께 볶는 것과 비슷해 먹어 보면 설익은 쌀밥을 먹는 것처럼 딱딱한 식감을 느끼게 된다. 육수를 나누어 부어 가며 익히고 졸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죽처럼 걸죽한 모양이 된다. 반면에 빠에야는 높이가 낮은 팬이나 냄비에 샤프란이란 향신료를 사용하며 육수를 한번에 부어 졸이는 형식으로 볶음밥 형태로 바닥에 눌러 붙지 않게, 그리고 설익은 느낌이 나지도 않게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다. 그리고 뒤적이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밥알이 눌러져 떡지는 모양이 되지 않게 흔들어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빠에야는 손잡이가 달린 냄비가 사용되고 그 냄비채로 식탁에 올려진다. 이 손잡이 달린 냄비/팬의 이름이 빠에야다. 조리 도구 이름이 음식 이름인 셈이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고 소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주문하면 항상 2인분 혹은 그 이상으로만 주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종종 시장통에 가면 훨씬 큰 냄비/팬에 만들어 놓은 다음에 1인분씩 덜어서 팔기도 한다.

 

El Glop이라는 하나의 식당인줄 알았는데 "아웃백" 같은 식당 체인 이름이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El Glop이라는 식당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바르셀로나 빠에야"를 검색하면 빠짐없이 이 식당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해 식당에 들어 갔더니 군데 군데 한국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엔 이 식당 이름 자체가 El Glop인 줄 알았는데 이 이름은 식당 체인의 이름이었다. Google Maps에서 찾아 보면 바르셀로나 시내 여러 군데에서 El Glop이란 식당이 검색된다. 그많은 El Glop들 중에서 다들 이 카탈루냐 광장 근처의 이 El Glop을 이야기 하고 있어 제대로 찾아오긴 한 것 같다. 

 

한참 점심 시간인 것 같은데 아직 빈자리는 많았다. 그런데 30분쯤 지나 2시 가까이 되자 그많던 자리가 꽉 다 찼다. 처음에 한적하고 조용하던 곳이 왁자지걸한 식당이 되자 왠지 활기넘치는 장소로 변해 버린 느낌이다. 빠에야를 먹기 위해서 왔으니 일단 해물 빠에야 하나,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먹물 빠에야 하나, 그리고 아이들이 자기네 먹고 싶다고 치킨이 들어간 다른 요리 하나를 골랐다. 이 먹물 빠에야의 경우 "먹물"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black rice"라고 표현되어 있으니 나중에 메뉴판에서 "먹물"이 무엇인지 찾는 수고는 하시지 말길 바란다. 서버가 빠에야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빠에야를 먹기 위해 왔는데 그게 뭐 대수랴 생각해 당연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해산물 빠에야와 먹물 빠에야, 이렇게 두개를 시켰는데 블로그를 위해 사진을 찾아 보니 먹물 빠에야 찍은 사진이 없었다. 정말 까맸는데 누가 이야기 해 주지 않으면 다 태운 음식 내왔다고 말할 정도로 까맸다.

 

마침내 받아든 빠에야는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빠에야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지난 번처럼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먹지 않아도 되고 그러다 보니 빠에야도 차갑게 식지 않아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먹는 양이 늘어서 그런지 해산물이 잔뜩 들어가 있고 바닥에 깔린 밥이 넉넉해 보였는데도 두 사람이 먹기에는 조금 적은 느낌이었다.

 

그 유명하다는 먹물 빠에야는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올리지 못했지만 처음 나왔을 때 이건 아애 음식을 태운 걸 가져다 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까만 모습이었다. 탄내가 나지 않는 걸로 탄 음식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처음 한입을 가져다 먹을 때까지만 해도 이게 제대로 나온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맸다. 먹물 빠에야라고 해서 뭔가 좀 특이한 맛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냥 옆에 있는 해물 빠에야와 크게 다른 맛이 나지는 않았다. 무딘 내 입맛으로는 사실 뭐가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좀 특이한 음식을 먹는다는 듯한 느낌 정도? 워낙 유명하다니 시도해 보았지 다음에 일부러 찾아서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다, 그래도 다홍치마라고 어쩌면 빠에야를 시킨다면 먹물 빠에야를 시키긴 할 것 같았다. 일단 특이하니까.

 

식사가 다 끝나고 나니 다시 서버와의 눈치 싸움 시작. 그래도 이번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그냥 앞에 계산대 같은 곳을 찾아 계산을 하고 나왔다. 

 

 

둘째가 자기 미술 선생님에게 포스트 카드를 부치고 싶다고 해서 다른 가족들은 일단 휴식을 취하러 호텔로, 나는 둘째를 데리고 근처에서 검색한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국제 우편으로 부쳐야 했기 때문에 직원이 있는 우체국을 찾았어야 했는데 다행이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하나가 있었다. 처음에 들어 서니 여러 창구가 보였는데 그냥 줄을 섰다가 빈 창구로 가면 되는건지 어떤 건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번호표 뽑는 기계가 보였다. 종류는 두개였는데 하나는 일반 우편 업무, 다른 하나는 금융 업무 대기표였다. 다행이 너무 헤매지 않고 우편 업무 창구에서 무사히 포스트 카드를 부쳤다. 작년 바티칸에서도 둘째가 똑같이 미술 선생님에게 포스트 카드를 보냈는데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후인 한달쯤이나 지나 도착을 했더랬다. 이번에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우리가 먼저 집에 갈 거라는 거다. 그래도 이게 다 추억이자 경험이다.

 

 

 

일단 호텔에서 잠시 쉬고 오후에는 맨날 그 앞을 지나 다니기만 하던 바르셀로나 대성당 안으로 떠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