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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바르셀로나 여행 2024년 12월

바르셀로나 여행기 - 다섯째날 고딕 지구

by 피터K 2025. 5. 24.

 

Gothic Quarter (고딕 지구)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도시의 구 시가지의 일부 혹은 전체가 어떤 어떤 지구(Quarter)라고 해서 이름 붙어 있는 곳이 있다. 주로 관광 지구인데 New Orleans의 French Quarter (New Orleans의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 시가지), Four Quarters of Jerusalem (예루살렘은 기독교 지구, 유대교 지구, 무슬림 지구, 그리고 아르메니아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등등이 있고 바르셀로나에는 Gothic Quarter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 되었는데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했을 때 이 곳에 정착지를 세우고 그 둘레에 성곽을 쌓아 도시로 발전 시켰다. 그 이후 도시는 점차 번영해 가면서 중세의 모습이 더해지고 로마의 문화 뿐만이 아니라 카탈루냐 지방의 문화까지 더해지며 그 모습을 다듬어 갔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을 돌아 다니다 보면 아직도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성곽과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 신전의 기둥 유물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계획하려고 Google Maps를 켜고 바르셀로나를 찾으면 어쩔 수 없이 이 Gothic Quarter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일단 카탈루나 광장 바로 아래에서 해변까지 펼쳐진 지역이고 관광 구역이라 여러 볼거리도 많을 뿐더라 호텔 검색을 하더라도 이 지역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몰랐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바르셀로나 하면 Sagrada Familia를 중심으로 관광을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딱히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서울 관광하면 명동이나 동대문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상점과 골목 구경, 그리고 쇼핑 때문에 그 지역을 가게 되는 것처럼 이 곳 Gothic Quarter도 상점 구경, 골목 구경 정도가 다 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머무르는 호텔이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 있어 1분, 아니 30초만 걸어가도 대성당 광장으로 나갈 수 있다. 그 앞을 몇번이나 지나 다니면서 대성당 좌우로 커다란 탑 모양의 건물이 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생뚱맞는 건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엊그제서야 그게 고대 로마 시대 성곽 유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성당 뒷편이 Gothic Quarter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 안을 둘러 볼 생각은 그 때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일정이 꼬여서 오늘 일요일 오후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우산의 집 (Casa Bruno Cuadros)"라고 불리우는 건물. 외벽에 우산 장식과 용 장식, 일본식 그림이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다. 박물관 같아 보이지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다. Liceu 역에서 내리면 바로 눈 앞에 위치하고 있다.

 

에스파냐 광장 (Placa d'Espanya) 역에서 메트로 L3을 타면 La Rambla 길 한복판에 위치한 Liceu 역으로 갈 수가 있다. 메트로 L3 라인이 La Rambla 길 아래를 관통하는 지하철이라 역사를 빠져 나오면 La Rambla 길을 두고 한편은 Gothic Quarter이고 반대편은 El Raval (라발 지구)라고 불리운다. Liceu 역에서 나오자 마자 "우산의 집 (Casa Bruno Cuadros)"라고 불리우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특이하게 건물 외벽에 높은 층에 우산 장식이 달려 있고 그 아래에는 부채 모양과 일본식 그림이 2층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건물 모서리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커다란 등을 입에 물고 있는데 외관만 본다면 마치 박물관 같은 모습이지만 박물관은 아니고 지금은 사무실로만 사용되고 있어 외관만 멋진 건물이다. 그냥 외관의 특이함으로 시선을 사로 잡는 건물이랄까.

 

이제 이 건물 옆으로난 긴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Gothic Quarter 탐방이 시작된다. Gothic Quarter의 특징은 골목이 아주 좁고 1층에 상점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미로 같이 구불 구불한 길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데 모습이 서로 비슷비슷하다 보니 몇 블럭을 걷고 나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호텔 근처의 길도 이렇게 생긴 길들이 많아 처음엔 별로 신기하지 않았는데 그 때는 상당히 짧은 골목만을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길이 끝도 없이 미로처럼 코너를 돌 때마다 이어지니 마치 해리 포터 속의 Diagon Alley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골목을 헤매는 맛이란 것 처음 느낀 것 같다. 마치 인사동 뒷골목이나 북촌 한옥 마을을 가게 되면 그 동네 자체를 돌아 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 있고 구경하는 맛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에도 이런 골목을 지나 호텔에 도착했는데 당시에는 정신없는 골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미로같은 이런 골목들로 이루어진 Gothic Quarter를 지나다니다 보니 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몇번의 코너를 돌다보면 길을 잃어 버리기 쉽상이다. 그만큼 미로같고 서로 서로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그게 이 골목을 헤매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을 일단 목표로 하고 대강 방향만 잡고 골목 골목을 헤매며 돌아 다니던 중에 뜻밖의 넓은 광장 하나를 만났다. 그 앞에는 반짝이는 별을 나타낸 것 같은 커다란 조각 상이 있었는데 Google Maps 켜서 확인해 보니 광장을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바르셀로나 시청 건물이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가 갑자기 맞이한 광장이라 그런지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관공서 건물, 그리고 딱히 특징이 있어 보이지 않는 건물과 그 앞의 큰 조형물 조각마저도 마치 긴 여정 중에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자 쉼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스쳐 지나며 복작복작한 공간이었지만 살짝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골목길에서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바르셀로나 시청 건물. 그냥 Gothic Quarter 안을 헤매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광장과 시청 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잠시 광장에서 탁 트인 여유를 만끽하고 나서 다시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대강 가야 하는 방향만 잡고는 골목이 나올 때마다 헤매기도 하고 쭉 늘어서 있는 가게들에게 눈길을 주다 보면 정말로 내가 어디쯤 있는지 잊어 버리게 된다. 정말 Google Maps 같은 것이 없었다면 엄청 헤맸을 것 같다. 그러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한 골목을 돌아 나아가다 좌측 골목에서 뜻하지 않은 것도 발견하게 된다.

 

"주교의 다리 (El Pont del Brisbe)"라고 알려진 다리. 이 다리도 미로를 헤매다가 어쩌다 발견했는데 이런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는 맛이 있다.

 

"주교의 다리 (El Pont del Brisbe)"라고 이름 지어진 이 다리는 두개의 건물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이다. 이 골목들 안에서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인데다가 장식도 이뻐서 사람들이 즐겨 찾고 사진도 많이 찍는 명소이다. 지금은 주 정부 청사 건물과 주지사 집무실을 연결하고 있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교가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주교 집무실과 성당을 오가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석조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석조 다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목조로 이루어져 있어 다리를 장식하는 조각과 문양이 꽤나 화려하다. 

 

 

Barcelona History Museum (MUHBA;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

 

Gothic Quarter를 헤매면서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Museu d'Historia de Barcelona; MUHBA). 너무 헤매는 것 같아서 Google Maps의 도움을 받아 가며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홀로 우뚝 서 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Gothic Quarter 내의 여러 건물들 사이에 있어 입구가 쉽게 눈에 띄이지 않는다. 작은 입구로 들어서면 그 안에 중정처럼 작은 공간이 있고 그 안쪽에 ticket office가 위치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일요일 오후에는 무료이냐고 확인 했더니 3시 이후에는 무료란다.

 

Ticket office 기준으로 좌측과 우측으로 갈 수 있는데 우측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좌측은 고대 로마 유적으로 내려 가는 계단이었다. 일단은 좌측, 로마 유적으로 가는 걸로 먼저 선택을 했다. 

 

사실 바르셀로나가 고대 로마 때부터 만들어진 식민지 도시라는 것을 몰랐다. 만일 알았더라면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의 높다란 건물이 옛 성벽이라는 것도 미리 알았을테고 이런 고대 로마 유적이 있다는 것도 알았을텐데 말이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계획하려 Google Maps로 여기 저기 뒤져 보고 있을 때, 그리고 Rick Stevens의 "Best of Spain" 책에서도 아우구스투스 신전의 유물에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로마 전성기 때의 신전 유물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던 기원전 218년 즈음에 이 이베리아 반도는 한니발이 개척한 카르타고 영토였기 때문이다.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기원전 15년 경 로마인들이 이 곳에 몬 타베르 (Monte Taber) 라는 언덕을 중심으로 군사 기지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르셀로나의 시작이 되었다. 말이 언덕이지 전체 높이가 해발 17미터에 불과한 구릉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기반으로 전형적인 로마 식민 도시로 발전했고 Gothic Quarter은 전형적인 로마 시대의 격자 모양의 도시 구획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들은 그 위로 새로운 건물들이 쌓이면서 지하에 묻히게 되어 잊혀지게 마련이고 경주나 로마처럼 땅만 파면 유적이라 함부로 개발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바르셀로나의 Gothic Quarter가 딱 그런 모습이다. 고대 로마 유적지라며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만 보고 내려간 계단 아래에서 뜻밖의 과거를 만난다.

 

대부분의 로마 시대 유적은 지하에 묻혀 있어 관람 동선은 지하 세계 탐방이 된다. 파란색 레이저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 건물과 그 옆 길의 경계를 나타내는 부분. 사진 좌측 안내판에 보면 과거 로마 시대 성 내부 지역 중 어디쯤 해당하는지를 붉은선으로 나타내고 있고 그 확대부분과 지금 보고 있는 파란색 경계 부분이 어디인지도 상세히 나와 있다.

 

첫 계단을 내려 갔을 때 일부 고대 로마 성벽 유적이 있었고 다시 한번 한층을 내려 갔을 때 과거 로마 시대의 길과 그 길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 벽 유적을 보고 조금은 뜻밖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 보니 이게 시작일 뿐 광대한 지하 세계가 그 안에 펼쳐져 있었다. 와우....

 

워낙 오래된 로마 시대 유적이라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입구에서 시작된 지하 세계 탐험은 긴 탐방로를 따라 널리 펼쳐져 있는 고대 로마로 이어진다. 상당히 넓은 지역을 지하로 걸어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실제 살았던 집터, 상점터들을 줄줄이 만나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지는 지하 세계에 대체 얼마나 넓은지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약 4,000 평방 미터 (43,055 sqft, 약 1 에이커) 정도의 넓이에 유적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축구장 최소 넓이가 45m x 90m, 즉 4,050 평방 미터라고 하니 축구장 하나 정도의 크기가 펼쳐져 있는 셈이다.

 

"가룸 (Garum)"이라고 부르던 고대 로마 시대의 fish source 제조 공장.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항아리는 가룸 제료를 담아 삭히는데 사용한 항아리라고 한다.

 

이 "가룸 (Garum)"이라는 말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처음 들어 보았다. 그런데 탐방로를 따라 걸어 가던 중 커다란 항아리 유적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 곳이 "가룸 (Garum)" 제조 공장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가룸 (Garum)"은 일종의 fish source, 즉 생선으로 만드는 젓갈같은 소스인데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반드는 방법은 커다란 항아리에 향이 강한 향신료를 바닥에 깔고 기름기 많은 생선과 소금을 층층히 깔아 일주일정도 삭힌 다음 다시 20일동안 막대로 저어 숙성시키면서 그위에 뜬 액젓을 떠낸다고 하며 그 맑은 액젓이 "가룸 (Garum)"이 된다고 한다. 삭히고 발효시키는 과정이 들어 가기 때문에 엄청난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숙성된 맑은 액젓은 냄새가 괜찮아 우리내 간을 맞추는 간장 정도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로마인들의 식탁에서 결코 빠질 수 없었던 소스라 로마인들이 살았던 곳이면 당연히 "가룸 (Garum)"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이 장소는 찐 고대 로마의 유적인 셈이다. 

 

두어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포도주 제조 시설. 포도주를 저장, 숙성 시키는 항아리라고 한다.

 

로마인들이라고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포도주. 역시나 골목 골목 탐방로를 따라 돌다 보니 포도주 제조 공장이라는 푯말이 있었고 "가룸 (Garum)"과는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살짝 작은 포도주 숙성용 항아리 유적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땅 속에 묻힌 폐허의 공간이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 돌아 다니던 번화가 골목이었을거라는 상상을 해 보며 2000년의 시간을 살짝 접어 본다. 바쁘게 길을 제촉하는 어느 고대 로마인이 내 어께를 툭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긴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옛 바르셀로나 성당의 유적에도 도착하게 된다. 재미 있는 건 지금 이 지하 유적 위에 현재의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서 있다는 점이다. 어두운 긴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옛 성당의 세례당 유적에 다다르게 되고 지금은 일부만 남은 세례를 주기 위해 성수를 담아 두었던 작은 욕조 같은 유물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금 바로 머리 위가 현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세례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두 장소를 겹쳐 그려 놓은 도면도 있다. 

 

넋이 나가 지하 세계를 탐색하느라 사진을 충분히 찍어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너무 그 시대에 빠져 잊어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지하 세계를 다 구경하고 나오면 바깥 Placa de Rei라는 광장으로 나오게 된다. 처음 박물관 입구에서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올라가던 전시실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이 전시되고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왠지 박물관 전부를 보지 못한 기분이 들어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남겨 두어야겠다.

 

 

성녀 에우랄리아의 길

 

Placa de Rei에서 조금만 돌아 가면 바르셀로나 대성당 뒷편을 만나게 된다. 대성당을 끼고 길을 돌아 나가면 대성당 광장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앞쪽으로 따라 나가던 중 아내가 Google Maps에서 "성녀 에우랄리아의 길"이 바로 근처라는 것을 발견했다. 성녀 에우랄리아를 알몸으로 날카로운 물건들이 가득 든 통에 넣어 굴렸다는 그 길이다. 골목 골목을 헤매지 않고 그냥 대성당 옆에 직각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만 가면 그 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런 내용을 몰랐더라면 지금까지 Gothic Quarter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골목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 것 같다. 따로 특별한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벽 한편에 길 이름이 새겨진 판과 눈높이에서 만날 수 있는 성녀 에우랄리아에서 바쳐진 시 벽판이 아니라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좁은 경사로는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이 곳이 실제 그 잔인한 고문이 있었던 장소라면 살짝 소름끼치기는 장소이긴 했다. 기록엔 13번이나 굴렸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통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과연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더더욱 끔찍한 장소일 수 밖에 없다. 참 사람만큼 잔인한 동물은 없는 것 같다. 마음 한편으로 그 기적이 사실이었기를 바래 본다. 끔찍했던 수많은 고문들과 그 모습만을 그려낸 그림들은 모두 다 잊고 그냥 순순히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을 순수하게 믿었던 그 하얀 신앙심만 기억해 보려 한다. 13살의 또래 여자 아이처럼 그냥 아름다웠기를.

 

오전 박물관에서 알게 된 성녀 아우랄리아가 날카로운 물건이 가득 든 통안에 알몸으로 넣어진 후 13번이나 굴려졌다고 알려진 골목, 성녀 에우랄리아의 길 (Baixada de Santa Eulalia). 지금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서 아래 쪽으로 살짝 경사가 져 있는 골목길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 머리 위에 성녀 아우랄리아의 성상이 있다는 걸 몰랐다.

 

 

Luigi Restorante

 

바르셀로나 대성당 광장을 지나 호텔 쪽으로 돌아 오니 6시 정도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얼른 마치고 호텔로 들어가 쉬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호텔 바로 옆 이탈리안 식당이 눈에 들어 왔다. 매일 여러 장소로 가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눈에 들어 오던 식당이었고 저녁 때 호텔로 돌아 올 때면 늘 바깥에 줄이 길게 서 있던 곳이라 꽤나 괜찮은 식당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더랬다. Google Maps에서 검색해 보니 리뷰도 4.4. 언젠가 한번은 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마침 조금 이른 시간이라 바로 가 보았더니 바로 들어 갈 수 있다고 했다. 앞쪽에는 공간이 좁아 보였는데 안쪽으로 길게 안내되어 들어 가니 뒷쪽으로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음식이 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음식의 양이나 질은 만족스러운 정도였지만 왠지 또 올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식당이었다. 문뜩 너무 맛있어서 두번이나 갔었던 콜로세움 근처 그 로마의 식당이 생각이 났다. 

 

"Best of Spain"이란 책에서 식당에서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이런 항목이 필요한 이유는 나라마다 식사의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식사는 가족들, 지인들과 함께 하는 개인적인 시간이라 가급적 서버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방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먹고 있으면 서버가 중간 중간에 여러번 와서 음식은 괜찮은지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계속 물어 본다. 그 때 필요한 것들, 물을 새로 더 채워달라거나 필요한 것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만 자꾸 와서 물어 보는 것도 때론 귀찮기도 하다. 그냥 조용히 가족들끼리 우리끼리 식사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말이다. 반대로 바르셀로나 (아니 어쩌면 다른 유럽에서도? 적어도 로마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에서는 왠만해서는 서버가 오지 않는다. 미국은 팁 문화 때문에 내 테이블을 담당하는 서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나가는 다른 서버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서버를 찾아야 하고 중간 중간 찾아 오기 때문에 부탁하기가 쉽지만 여기서는 그게 쉽지 않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서버가 필요한게 아니다. 식사를 다 하고 이제 호텔로 돌아 가고 싶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서버는 찾을 수 없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서버도 전혀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버에게 계산하겠다고 하면 서버가 체크, 즉 음식값이 적힌 종이를 가져다 주고 거기에 크레딧 카드를 주고 나면 사인할 수 있는 계산서를 가져다 주는게 당연한 미국에서의 룰이지만 여기서는 계산 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게 눈치 싸움이 되어 버렸다. 서버를 기다려서 체크/계산서를 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가서 계산을 해야 하는 건지.

 

결국 기다리다 기다리다 먼저 일어나 앞으로 가 보니 계산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거기서 계산을 하고 호텔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이제 눈치 싸움은 그만. 앞으로는 그냥 식사 다 하고 나면 가서 계산하기로 했다. 그게 맘이 편하다.

 

 

 

내일은 다시 Monjuic 산으로 돌아 간다. 아마 내일도 한참을 걸어다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