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은.
2016년 K팝스타 시즌 5에 나왔던 가수다. 특이하게도 매번 경연에서 떨어졌지만 매번 심사위원들의 구제, 혹은 방청객들의 압도적인 투표에 의해서 Top 4까지 진출했었던, 나에겐 그 깨끗한 고음으로 기억나는 그런 가수였다.
그녀가 첫 예선 무대에서 부른 "노래할께요"라는 제목의 노래에 잠시 빠져 있을 때 뜬금없이 심사위원이던 양현석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왜 나왔어요"
"...... 제가 TV에도 나오고 잘 되면 그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이 행복하실 것 같아서요"
89년 12월. 당시에는 학력고사 시대였다. 우선 가고 싶은 학교/학과에 지원을 한 후 학력고사 당일 그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이 모두 모여 지원자들끼리 경쟁하는 그런 과정이었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 한 학년 정원이 300명밖에 되지 않아 12월 초에 시험보고 크리스마스 전에 결과가 나왔다. 며칠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합격자 발표날, 아침 출근도 미루시고 아버지께서 합격자 발표 안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 수험번호로 확인을 하셨다. 난 그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전화 너머로 합격 소식을 들으시고는 환하게 밝아지는 그 아버지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평소 출근시간보다 한참 늦으셨는데도 정말 기분 좋게 출근하셨고 며칠 후 회사에 자기랑 사이가 안 좋은 누구의 아들은 이번에 떨어졌다며 더 기분 좋았다는 그런 이야기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동기들, 동년배의 친구/지인들을 만나면 대부분 자녀들이 대학생, 혹은 졸업생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는 누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 누구는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그리고 누구 아들/딸은 이번에 졸업해 어디에 취직했다더라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명문 대학에 갔는지, 또 어느 좋은 회사에 들어갔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어께 모습이 달라지는 걸 보게된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자식 자랑의 모습인 거다.
4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큰 애가 지난 8월 NY으로 대학원 생활을 위해 떠났다. 비록 4년 학부 생활 동안 집에서 떠나 기숙사에서 2년, 그리고 근처 아파트에서 2년을 따로 나가 살았지만 학교까지 차로 30분 거리라 어쩌다 한번씩 주말 저녁에 불러내 근처에서 같이 저녁 먹고 들여 보내기도 하곤 했다. 내 스스로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지라 대학생이 되면 집 떠나 생활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경험상 그게 더 많은 걸 배우는 것 같아 얼른 얼른 나가라고 했지만 와이프는 아무래도 첫 아이가 나가 산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되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는 잠깐의 거리가 아닌 비행기로만 3시간이 걸려야 하는 NY으로 떠나고 나니 이제는 그 애가 무얼하든지 어떻게 살든지 도와 줄 수 있는 건 없고 진짜로 혼자 살아 남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와이프가 함께 NY에 가서 기숙사 입주하는 것을 도와 주고 돌아 오는 날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걱정이 되고 본인도 막상 낯선 곳에 혼자 살아야 하다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에 껴안고 울었다는데 의외로 난 좀 담담한 편이었다. 안 해 본건 배우면 되고 잘 못되면 고쳐가며 살아 가면 되니까. 난 도와 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삶을 살아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큰 애가 하는 전공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공이 아니라 큰 애 대학원 어디 갔냐고 물을 때 늘 설명이 곤란해 지는데 그래도 어디라고 말하면 잘은 몰라도 한번쯤 유명하다고 들어 본 그런 학교라 야, 좋은데 갔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소리에 어깨가 으쓱해지기 보다는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 왜 나왔어요"
"제가 TV에도 나오고 잘 되면 그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이 행복하실 것 같아서요"
이 대답에 양현석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다.
"부모님이 행복해 지는 순간은 본인이, 자식이 행복할 때에요. 그러니 본인이 먼저 행복해지세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을 때마다 별일 없냐고 물으시고 별일 없이 잘 지내요 라고 대답하면 그래 그럼 되었다라고 늘 말씀하시는 걸 보며 어쩌면 큰 문제나 어려움 없이 부모님께 걱정 시켜 드릴 일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게 가장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젠 예전처럼 명문대에 붙어서, 아니면 어디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당신들이 친구 분들 모임에 가서 내 아들은 말이야, 내 딸은 말이야라며 자랑하던 시기는 지난 것 같고 누구 아들은 이번에 이혼했데, 누구 딸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맨날 못 살겠다는 말을 한데라는 소리가 안나게 하는게, 그냥 내가 행복하게,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으면 그게 부모님께 걱정 안끼쳐 드리고 당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뭔가 좀 더 큰 걸 해 보고 싶다고 스스로 부지런히 알아 보고 NY까지 날아간 큰 아이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고 잘 안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 후회없이 노력해 보았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원하던 모습으로 살아 가기를 바래 본다. 그 아이의 학교와 직장의 밸류가 내 자랑과 행복이 아닌, 그 아이 스스로의 밸류가 스스로의 자랑과 행복이 되기를, 그렇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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