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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미국 취업 이야기

그렇게 결국 미국 취업 성공

by 피터K 2021. 11. 10.

2004년 여름, 처남이 대학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준비가 끝난 8월 말 처남을 배웅하기 위해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출국장에서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나는 처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도 잘 풀렸으면 이 길이 우리가 출국하는 길이었을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쉽다는 말에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나와 비슷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리 그럼 한번만 더 알아 볼까라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렇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도전을 해 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메일들을 보냈다. 그 중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지난 번 출장 때 인터뷰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그 일본인 친구가

 

이번엔 헤드헌터에게 연락해 보라며 헤드헌터 연락처를 알려 주었고 그 사람에게 새로 정리한

 

레쥬메를 이메일로 전달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헤드헌터로 부터 내가 하는 분야에 경력 있는 사람을 찾는 회사가 있다며 만나

 

보겠냐고 연락이 왔다. 무슨 회사냐고 물어 봤더니 그 회사는 바로 예전에 나한테 넌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구나 칭찬해 주었던, 그리고 지난 번 New Orleans에 갔을 때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고 나서 그 회사 demo booth에 찾아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 두어시간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 회사였다.

 

 

반가운 마음에 헤드헌터에게 그 회사 CEO를 잘 안다고 이야기 해 주었고 그 CEO에게 헤드헌터를

 

통해서 네 회사를 소개 받았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바로 몇시간 후 그 CEO에게 답장이

 

왔고 너에게 연결이 되어 너무 반갑다고, 바로 인터뷰 준비를 하겠다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이틀정도 지나 그 회사 엔지니어에게 이메일이 와서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 동안 내가 학회에서 발표했던 논문들을 보내 달라고 해서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 바로 offer가 왔다.

 

 

다시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자고 일본인 친구에게 연락한게 2004년 9월 초.

 

그리고 헤드헌터를 통해 소개를 받은게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회사의 사람들, 그리고 그 전부터

 

나를 인상 깊게 보아 주었던 그 CEO. 그를 통해 불과 2주만에 지난 2년간 노력하던 것이 순식간에

 

해결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2003년 초쯤 첫 offer가 무산된 후에 이 CEO에게도 따로 이메일을 보내 알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EDA 업계가 연합종횡을 하던 합병과 어려움의 시대라

 

그 CEO가 지금 현지의 상황이 어떤지 정말 기나긴 이메일로 설명과 분위기를 전달해 주었고

 

지금 자기네 회사에 내가 하는 부분을 담당하는 엔지니어가 있어 지금은 너와 함께 하기 어렵겠다는

 

답장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 회사에서 그 부분의 엔지니어가 막 퇴사를 한 상황이었고

 

그런 때에 딱 맞추어 헤드헌터를 통해 내가 연결 되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 뭐가 되려면 때와 장소, 그리고 정말 운이란게 다 맞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번 구르기 시작한 돌은 정말 숨돌릴 틈 없이 순식간에 속도가 붙어 버렸다.

 

Offer에는 예전에 받았던 내용을 참고해서 연봉 $99,000, relocation package로 총 $10,000 까지.

 

거기에 영주권 지원 할 것이고 그 비용도 전부 부담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Offer 사인해서 보내자 바로 취업비자 신청이 premium service로 신청 되었고 2주 후에 바로

 

승인이 났다. 모든 필요한 서류가 FedEx로 전달 되었고 2주 후에는 미국 영사관 인터뷰까지

 

마치고 여권에 취업비자, H1B와 가족들의 H4까지 일사천리로 완료 되었다. 그렇게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 안에 모든 것이 다 해결 된 것이었다. 

 

불과 두어달 전만 하더라도 이젠 모든 것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되자 바로 이사 준비를 해야 했는데 살고 있던 아파트를 전세를 놓고

 

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와이프가 동네 부동산에 내려가 전세를 놓겠다고

 

이야기 하고 나서 한시간 후에 누가 보러 오겠다고 하더니 다시 한시간 후에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다. 정말 뭐가 되려고 하니까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8월 말에는 처남 배웅하고 돌아 왔는데 석달만에 우리도 그렇게 나가게 되었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며칠 전, 처가집에서. 이사짐은 벌써 배에 실어 보냈고 이렇게 소위 말하는 이민가방만 남았다.

 

출국하기 전까지 주변 친척분들 인사 다니느라 상당히 바빴던 걸로 기억난다. 갑자기 아들과 딸이 모두 미국으로

 

모두 나가게 된 장인, 장모님은 많이 아쉬워 하셨다.

 

2004년 11월 8일, 배웅하러 나갔던 인천공항에서 이제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San Francisco에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잠시 머무르게 된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일요일 오후.

 

긴 여정에 지친 와이프와 큰 아이가 잠이 들자 나 혼자 잠시 내일부터 출근하게 될 회사에 잠시 다녀

 

왔다. 일요일이라 문은 다 잠겨 있었지만 그 주차장에서 한동안 그 건물을 바라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미국으로 취업을 해야 겠다 다짐했던 것이 2001년 여름. 그리고 몇번의 도전과 실패 끝에

 

드디어 이 자리에 섰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이제 정말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도 되었고, 이런 힘든 곳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고생 시키는 건 아닐지,

 

그리고 이제는 오롯이 모든게 내 책임이라는 부담감까지,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는 정말 어떻게 되었든지 내일 아침이면 저 문을 열고 들어 갈 것이고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내 미국 생활은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 표는 이렇게 생겼다. 무슨 쿠폰처럼 한장씩 뜯어서 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으로 교환하는 식이었다. Singapore Airline이 제일 저렴해서 이용하게 되었고 인천에서 San Francisco까지 편도 항공권이다. 가격은 124만원. 비수기였는데도 그다지 싸지 않았고 편도나 왕복이나 가격은 거의 비슷했던 걸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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