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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시간 빌리기

by 피터K 2021. 4. 12.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며칠 전에 항상 모이는 친구들중의 한명이 생일이어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려고 6시에 서점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생일이었던 친구에게 해당되는 일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5시 30분까지 오게 했다. 그래야 먼저 모여서 카드도 쓰고 돈도 걷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막상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갈때 한두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한 친구는 실험때문에 늦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6시까지는

꼭 온다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는, 케익을 맡았는데, 시내에 있다고

차가 밀려서 아마도 제 시간에 도착을 못 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만 혼자 5시 40분부터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나야 항상 이 모임에 총무(?) 자격으로 모임을 만드는 입장이니까 말이다.

시간은 흘러 6시가 다 되어 가도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생일인

친구도 나타날 시간인데... 일부러 그 친구 있는 자리에서 카드를 쓰지

않으려고 미리 모이라고 한 것인데...

그냥 멍하니 서점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모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으려니 괜시리 부아가 치밀었다. 별의별 생각도 다 들고..

이러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정말 시간만 얌얌 잡아 먹고 있는듯한

생각도 들고... 나도 일을 별려 놓고 그냥 내려 왔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아니 혼자 열을 내고 있다가 조금 분(?)이 

삭아지자 서서히 친구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 서로 바쁜

것을 다 알고, 또 미리 연락도 했잖아...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헐레벌떡 뛰어서..

그것도 그 78계단을 날아서... 후후... 역시 좋은 친구들이야....

그렇게 잠시 시간약속을 못 맞춘 것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화가 났던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잠시지만...

후후... 하지만 나도 지난 주에 그만 똑같은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L^;


서울에서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신촌에서 7시 30분... 여기서 내가 6시

비행기로 떠나니 조금은 아슬아슬 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을 하니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그만 연착을 해서 도착을 한 것이다. 서울서 오는 비행기가 5시 30분에

도착을 해서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 6시에 떠나야 하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5시 50분에 도착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덩달아 6시 2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했고... 그러니 서울 김포에 도착을 하니 7시 20분..

어찌나 마음이 급하던지 버스는 탈 생각이 들지는 않고 무작정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 갔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택시를 타려던 줄은 또 왜 그리

길던지... 순간 떠 오르는 생각... 모범택시...

후후.. 하지만 그건 생각만 했지 차마 타려는 용기(?)는 나지가 않았다.

친절하게도 택시 정류장 앞에 두 택시 운임에 관해서 비교를 해 두었는데

모범택시가 일반 택시의 2.5배쯤 되었다. 

암튼, 나는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왜 그리 마음에

초초하던지... 그리고는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이 초초해 지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신촌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친구도 전에 서점앞에서 오지 않는 친구들을

기다리던 그때 내 심정과 같겠지... 하는 생각에...

후후... 그러면서 웬지 나도 모르게 씨익 웃어 버렸다. 나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그 친구, 나를 만나서 마구 화를 낸다거나 아니면

삐지더라도 꾹 참고 들어 줘야지... 하는 생각에... 애써 괜한 변명은

하지 말자....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는 기간동안에 1/3은 잠으로 보낸다고 한다.

깨어있는 시간은 그럼 2/3가 되는 셈인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깨어있는 시간이 참 모자를 때가 많다. 할 일들이 그렇게 많은데

내가 그 사람과 약속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시간을 빌리는 것이

아닐지... 그런 약속에 늦게 간다거나 하는 것은 그렇게 귀중하게 빌린

시간을 웬지 소비해 버린다는 느낌이 있다. 어렵게 빌린 시간을 나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냥 흘려 보내 버리고 있는 셈이다.

약속에 늦는다는 것 보다 더 시간을 아깝게 버리는 것은 그 약속마저 깨어

버리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나는 약속을 하고 나면 일부러 조금 일찍 나가려고

노력을 한다.(후후... 가끔은 아까처럼 잘 안 될때도 있지만.... 에고..)


마치 korean time처럼 우리 학교에도 묘하게 POSTECH time이란 것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행사이던지 아니면 모임이던지 항상 30분정도 늦게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제 시간에 모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고 있는 셈이된다.

쓰레기 종량제에 해당도 안 되는 아주 귀중한 것을 말이다.


나에게 시간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나는 참으로 좋은 것으로 갚고

싶다... 그 시간이 항상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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