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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내가 만일...

by 피터K 2021. 6. 18.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지금 막 멕시코와 벨기에의 축구가 끝이 났다.

축구는 그렇게 비기면서 끝났지만 티비에서는 아나운서와 해설자 두 사람이

한참 표를 준비하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나서 이제 만일 우리 나라가 네덜란드와

어떻게 되고,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와 어떻게 되면.... 16강에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우리 나라가 16강에 나갈 수 있다면야 나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희망 때문인지 이러한 분석에

귀를 기울여 본다. 과연 어떻게 될까.. 아마도 조금 후에 시작될

우리 나라와 네덜란드와의 시합을 끝까지 봐야 하겠지만...


역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금기 중에 하나가 '만약에...'라는 가정이란다.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 낮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잡혔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한 순간의 상황으로 역사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흘러 갔을 것이다. 그래서 늘 사실만을 다루어야 하는 역사가는

절대로 가정과 상상을 담아서는 안된다고 한단다.

하지만 이런 금기에 아주 유쾌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곤 하다.

내가 즐겨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몇번씩

작가는 이런 도전을 과감히 해 본다. 지금은 그게 어떤 가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읽는 독자에겐 참 재미 있었던 생각이었던 같다.

그렇지만 역시 그녀도 이런 단서를 달아 본다.

'나는 전문적인 역사가가 아니므로 이런 일탈도 재미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만일 그녀가 전문 서적을 적고 있었다면 이런 모험은 결코 하지 않았으리라는

말과 함께 반대로 자신은 그런 역사가가 아니므로 해 볼 수 있다는

의미 심장한 변명과 함께 말이다.


가끔은 살아 가면서 그런 생각을 문뜩 문뜩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만일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만일 그 때 그렇게 했더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해 보는건 그 때의 일들이 무척이나 후회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나 또한 여러 가지 그러했던 상황을 떠 올려 본다. 

가장 유치한(?) '내가 만일 학력고사(난 학력 고사 세대... '피터옹'이란

소리 들을만 하군. 흑)때 찍었던 3 문제가 맞지 않았더라면...' 부터

'그 때 내가 그 이에 대해서 좀 더 담담한 마음으로 대했더라면...'까지.

만일 그랬다면 나의 지금쯤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상상은 한껏 나래를 펴 볼 수 있지만 실상 그 상상이 이루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 잠시 행복해 진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후후.. 글쎄다...

살아 가면서 내가 겪은 아주 많은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순간 순간마다

내가 내려야 했던 많은 결정들에 대해서 모두 물음표를 붙여 본다.

내가 만일말이야... 내가 그 때 그랬다면...





내가 만일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도 그냥 한줌의 의미없는 영혼이었겠지요.

그리고 내가 만일 당신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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