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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지금 거신 번호는...

by 피터K 2021. 6. 18.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늘 느끼는 것이지만 키즈란 곳은 참 묘한 곳이다. 

비단 키즈라는 곳뿐만이 아니라 통신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란

곳은 말이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과 같이 탄생과 성장, 그리고

사춘기와 성숙함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리고 나도 포함해서, 일상 생활의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생활을 가끔씩 혼동하는가 보다.


며칠 전 문뜩 누군가의 아이디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과의 친분 관계를 구지 따지지 않더라도 눈에 익던 어느 한

아이디가 사라졌다는 것은 왠지 나의 마음을 하루 종일 가라않게

만들었다. 

흔히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아이디 삭제는 자살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디를 삭제하는 곳을 농담삼아 자살 바위라고

빗대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사람이 실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이버 스페이스도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가깝던 친구 하나가 정말로 함께 숨 쉴 수 없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일년쯤 전의 일인가 보다. 포스비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동안

누군가가 톡을 걸어 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살아 가는 자잘한

이야기와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화면을 가득 채운 적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다른 과 후배였지만 내가 얼굴을 알거나 지나 가면서

본 적은 없는 그런 후배였다. 나로써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지만

학교 후배라는 사실과 톡을 걸어준 반가움 때문에 그 이름은 오래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더구나 이제 곧 졸업을 하게 되어서 학교를

떠난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아쉬움과 사회에 나가서 주어진 가지를

넓게 뻗기를 바라는 마음을 빌어 보았던 기억도 남는다.

그러나 몇달 후 난 너무나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후배가 집에서

교통 사고로 숨졌다는 이야기였다.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 후배의 죽음이 남달리 들렸던 것은 어떤 조화였을까?

내 기억에는 아직도 환하게 웃으며 내게 글자를 화면에 뿌리던

그 상황이 생생한데도 말이다. 


오래된 친구 하나는 자기와 친하게 지내던 이성 친구와 어색해진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고 그래서 가끔씩 그 사람의 삐삐를 쳐 보곤 했단다.

어떠한 번호나 음성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저 그 인사말을 들어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디에선가 함께 이 햇살을 받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는 전혀 색다른 인사말을

듣게 되었단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이디를 지운 친구와 삐삐를 해지한 친구는 결코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친구의 죽음과 같은 묘한 감정을 받았다는 건

어쩌면 늘 변하고 싶지 않는 마음 속의 어떤 저항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끔은 누군가 주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무한한 외로움으로 자신을

가두어 놓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곤 그 사람의 기억들 중에서 

나쁜 것들은 하얀색으로 바래 버리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아 

가끔씩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 너무나 많이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해 주었으면 한번쯤 그 사람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어떤 아쉬움.


사람을 하나씩 잃어 간다는 것은 가뜩이나 기대고 싶은 어깨 한편이

더욱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 나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묘한 충동과 함께...




.....

너 지금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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