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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나 그렇게 고백할께요...

by 피터K 2021. 6. 18.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잠시 어두운 복도 끝에 서서 멀리 반짝이는 포철의 불빛을 보며

한동안 복잡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담배 연기에 실어 보냈죠.

그러다 문뜩 당신과 함께 나의 문집을 읽던 자그마한 카페가 생각이 났어요.

당신이 선택해서 읽던, 아니 내가 내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며

읽어 보라고 그랬던 글은 아주 예전에 적어 두었던 '넌 날 어떻게

생각해?' 였지요.

그 글을 따라 읽으며 우린 아주 짧막한 문단에서 잠시 눈길을 멈추었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끼면 그 느낌을 강하게 믿어야 한다고....

그래요, 어떻게 자기 스스로 그 느낌을 믿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느낌을 믿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아마도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건 참 우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냥, 담배 연기를 흩으며 그리고 강남의 그 카페를 떠올리며

그 문장이 떠 올랐어요....


오늘은 하루에도 몇번씩 나의 삐삐를 꺼내 보았답니다.

삐삐 건전지가 다 되어 가서 그런지 헐거운 삐삐 지갑 안에서 진동으로

울리는 삐삐를 알아 채지 못하고 며칠씩 당신의 소식을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죠. 그래요, 며칠 전엔 당신이 남겨준 삐삐 음성을

나중에서야 듣게 되었어요. 그때까진 난 참 속좁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죠. 당신에게 아무런 소식이 전해져 오지 않아서 말이에요.

참 많이 기다렸었나 봐요. 당신의 소식을 말이죠.

거의 매일 당신에게 음성을 남기면서 내게 연락을 해 주지 않는 당신에게

조금은 속상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답니다. 지금쯤 당신을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죠. 당신은 내게 바쁘다고 말했죠. 

그건 알 수 있었어요.  늘 늦게 들어 가고 집에 들어 가면 다시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을 청해야만 하는 당신에게 난 참 많은 것을 바래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그걸 그렇게 다 이해 못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자기 전에 내가 남긴 소식을 들었다면 한마디쯤 

'너무 피곤해서 이만 끊을께요'라는 말이라든가 '잘 지내요'라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이유는 말이에요. 그게 나의 투정이죠.

그래서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를꺼에요, 당신은...

늦게나마 당신의 놓쳐 버린 음성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리곤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일에 그렇게 철없는 아이처럼 반가와 했다는 사실에

말이에요.  



나 아직 당신을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해 왔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물음표를 자꾸만

찍어 왔던 이유는 말이에요. 그래요, 그러다가 그 문장이 생각난 거에요.

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면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말라는... 내가 쓴 글의 한 문장이....


나 아직 내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늘 고민스럽죠.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사실 당신을 마음 깊이

품고 있다고 고백하지는 못해요. 그저 때때로 실험실에서 식당까지

아니면 기숙사까지 가는 길 위에서 가끔씩 당신 생각을 떠 올려 본다는 것 

이외에는 말이에요.   .........

아뇨, 실은 늘 생각해요. 당신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죠.


나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진 못해요. 그래서 늘 아쉬워 하죠.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당신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두운 복도의 끝에서

담배 연기를 흩으며 고민에 빠졌던 건 말이죠.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하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 사람이 내게 때론

무관심해도, 아니면 나를 챙겨 주지 못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가만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네요. 아니, 나 사실 그렇게 못해요. 예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그런 식으로 상처를 입힌 적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당신의 연락 없음을 속상해 하면서도 나중에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걸 다 이해 할꺼라는 건 어리석은 믿음이며 다짐일 것 같군요. 

아마도 그 땐, 당신을 늘 마음에 품고 있다고 느낄 때에는 당신에게 

바라는게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어떤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삐삐를 들추어 보는건 말이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당신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을 보면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조금씩 바라는 것이 있는가 봐요.

그렇게 문뜩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



나 그렇게 고백할께요....

나, 아무래도 당신을 조금씩 좋아하고 있는거 같다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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