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안녕? 잘 지내니?
벌써 첫 눈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을
느끼는 것을 봐서 아마도 곧 하얀 천사들을 맞이 할 것 같기도 해.
넌 그 준비가 잘 되어 가는지 모르겠구나.
.... 후후.. 편지를 너무나 오랜만에 쓰나 봐. 어떻게 시작하는지조차
잊어 버렸으니 말이야. 계절의 인사로 시작을 하면 된다고 했던가?
그럼 이미 난 충실하게 시작을 한 것이 되나? 후후... 암튼 이렇게라도
편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야. 처음엔 하얀 백지를 두고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단다. 그 작은
공간에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우리가 만난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가는 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설래임부터 이제는 늘 편안한 사이로 차츰 변해 왔지.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는 가끔 다투기도 하면서 말이야. 후후.. 기억 나니? 언젠가
서로의 기분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토라져 버렸던 때를...
그 땐 나도 많이 속상하고 화도 났지만 그러는 동안 내게 있어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단다.
그래, 언제나 내 마음 한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너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이지. 때론 서로 전화를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냐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서로의 마음 속에 품어 놓은 서로의 둥지가 잘 있는지 말이야.
그래, 난 내 마음의 한 구석을 누군가를 위해 비워 두었다는 것이
참 행복해.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잠시 쉴 수 있다는
것에도...
그래서 그런지 어떨 때는 네가 내 마음 속의 둥지를 떠나 훨훨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척 겁이 나기도 했단다. 새가 지키지 않는
둥지는 시간이 갈수록 황폐해 지고 다시는 어떠한 새도 둥지를 만들지
않듯이 내 마음도 네가 떠나면 어떻게 될까 걱정도 했었지.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아마도 내 스스로 자신이 부족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
난 정말 너를 생각하지만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야. 이제 네가 그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런 두려움이 없어져서 그럴꺼야. 예전에 가지던 작은
두려움들은 이제는 점점 단단해 지는 믿음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내게서 늘 떠나지 않는 생각, 나도 네 마음 속 둥지에
영원히 머물겠다는 다짐으로 말이야...
첫 눈이 오는 날 우리 서로 만나기로 약속은 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창 밖에 눈이 내리면 우리 서로 하늘을 쳐다 보며 잠시만
서로를 생각하기로 하자. 눈을 감고 두 손을 가만히 포개면
늘 잡고 있던 서로의 손의 따스함이 느껴 질지도 모르지.
그 때만은 우리 서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진정 서로의 마음 속에
영원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될꺼야.
첫 눈이 오는 날. 우리 그렇게 보내도록 하자.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하얀 종이가 이제 내 글씨들로 가득 차 버렸구나.
때론 하얀 백지에 내 글씨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담았으면 좋겠어.
늘, 그런 마음 가지면서....
좋은 하루 보내렴. 안녕.
피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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