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오늘은 친가인 일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오전. 안사람은 건강 검진 때문에 어제 병원으로 먼저 떠났고 오늘 아침은 나와 아이들만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한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간단한 베이글, 와플 같은 걸로 아침을 먹다가 며칠 내내 제대로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많이 안 먹던 습관에 매 아침마다 부담일 수도 있지만 다행이 지금까지는 할머니가 챙겨주시는 아침을 잘 챙겨 먹고 있다.
어머니도 아이들이 간단한 아침만 먹는다는 걸 아시니 준비 하실 때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걸 준비 하신다. 적당한 양의 떡국이라든가 오늘 아침처럼 새알 미역국 같은 종류로 말이다. 이 새알 미역국은 한국에 있을 때 안사람이 집에서도 종종 만들었기 때문에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미국에 가고 나서는 별로 먹은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주한 새알 미역국이 참 반가웠다. 아이들도 먹어 보지 못했던 아침이라 신기해 하면서도 잘 먹었다. 미역국은 생일마다 그리고 어쩌다 평소에도 끓여 먹으니까 생소하지는 않았을테지만 그 안에 찹쌀 새알은 처음이었을거다. 찹쌀 새알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맛 없을수가 없을 것이다. 아이들과 나도 뚝딱 한 그릇 해 치웠다.

일산 호수 공원
아버지는 약속이 있으셔서 조금 있다가 따로 나가신다고 해서 나와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만 일산 호수 공원에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나가기 전 짐은 다 싸 두고 점심 식사 후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는 다 해 두었다. 안사람의 건강 검진이 점심 때쯤 끝난다고 했으니 조금 이른 점심 후 출발하면 바로 픽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국 가기 전에 거의 격주마다 일산 부모님 집에 왔었으니 몇번 이 호수 공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 큰 아이가 3살 무렵이었기 때문에 여기 데리고 와서 세발 자전거를 타기도 했었다. 그 때 기억하는 호수 공원은 꽤나 넓은 광장을 끼고 옆에 바로 호수가 보였더랬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라고 찍어 주신 호수 공원 주차장으로 가니 호수가 바로 보이지도 않았고 건물에 둘러 쌓인 큰 광장만 나왔다. 내가 기억하던 장소와는 사뭇 달랐다. 어머니께 여쭈어 보니 여기는 호수 북쪽 광장이고 내가 기억하는 장소는 좀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 쪽은 넓은 광장과 더불어 북쪽 호수 주변으로 긴 산책로가 위치하고 있고 말로만 듣던 일산 꽃 박람회 같은 걸 계최하는 장소란다. 살짝 흐린 날씨 때문에 너무 덥지는 않았지만 나무로 둘러 쌓인 산책길을 아이들과 어머니와 함께 걷고 있으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살면 이런 숲진 산책길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San Jose/CA에 있을 때에는 워낙 날씨가 좋아 조금만 나가도 선선한 숲길을 찾을 수 있지만 Austin/TX으로 오고 나서는 이런 산책이 쉽지가 않다. 물론 숲진 산책로, 공원들은 참 많은데 너무 더워서 잘 안 나가게 된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건 Austin/TX은 내륙 한복판인데 은근히 습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에 흠뻑 젖는다. 오죽하면 아이들 놀이터도 in-door에 있을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산책로 주변에서 발견하는 여러 조형물들과 공원 한복판에서 발견한 정자에서 사진도 찍으면 나름 여유를 찾는다. 벌레 걱정 없이 산책로를 걷는 건 또 다른 행복이고 축복이다. 나는 어머니와 천천히 아이들을 따라가면서 그동안 밀렸던 가족들 이야기, 사촌 형들과 그 조카들 이야기를 듣는다. 일일이 찾아 뵙고 안부를 물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세상이 참 좁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랑 10살이 채 차이가 나지 않는 고종 사촌형이 있는데 아주 어릴 때 고모네가 근처에 사셔서 참 친하게 지냈더랬다. 겨울날 방바닥에 누워 둥근 딱지로 딱지 놀이를 하던 생각도 나고 같이 레슬링하며 부대끼던 생각도 난다. 결혼 후 두 딸을 두었는데 그 첫째가 몇년 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사위되는 친구가 학부는 다르지만 석사 과정을 내가 졸업한 실험실에서 했다는 것이다. 지금 그 실험실은 내 지도 교수님이 은퇴하시고 같은 실험실 후배가 맡아 지도 교수가 되어 있는데 그 밑에서 학위 공부를 했단다. 참 재미 있네라는 생각만 했는데 사촌 형이 전하기를 그 친구가 나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전설(?)로 회자 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평소에 말조심, 행동조심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Six Degrees of Kevin Bacon)"이 절로 생각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다 핑게이기는 하지만 지난 몇년간은 정말 정신없이 빠쁘고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아무런 고민, 걱정 없이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걷는 것만 하더라도 어떤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주는 것 같다. 사실 살다보면 그렇게 허둥지둥 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물론 필요한 것에 대해서 노력하는 건 필요하지만 노력이나 시작, 시도도 해 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과 걱정, 혹사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할 때 일단 한걸음 시작해 보면 또 다 어떻게든 일이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든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늘 어렵다. 그 때 산책로에서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다잡고 왔건만 미국에 돌아와 일상으로 되돌아 가고 나선 다시 아둥바둥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산 트레이더스 그리고 점심
긴 산책으로 여유를 만끽하고 나서 발걸음을 트레이더스로 옮겼다. 엊그제 들려서 산 것들중에 안사람이 리턴했으면 좋겠다는 물건이 하나 있었고 2층에 가면 식당가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트레이더스 고객센터에 가서 한 물건을 리턴 했는데 리턴 하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 미국에서는 해당 상품 가격만큼만 사용한 카드 어카운트에 크레딧으로 돌려 준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결재한 금액 전체를 취소하고 해당 가격만큼을 제하고 나서 남은 금액에 대해서 다시 청구한다. 전체적으로 +/- 계산을 하면 결국 해당 상품 가격만큼 돌려 받은 셈이 되지만 뭔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그런지 상당히 낯설었다. 게다가 크레딧 카드 특성 상 청구 금액은 바로 transaction에 뜨지만 refund는 바로 뜨지 않고 며칠 걸린다. 이게 트레이더스만의 방식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방식인지 문뜩 궁금해졌다.
물건 리턴 후 2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식당들이 있었는데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그다지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 간단한 걸로 먹자고 하고 아이들에게 식당을 골라 보라고 하니 덥썩 회전 초밥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식당에 가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초밥을 골라 먹을 수 있는 회전 초밥집이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안사람으로부터 곧 검사가 다 끝난다고 문자 메세지가 와서 식사 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짐 가방을 들고 내려와 차에 실어 보는데 미니밴을 빌렸음에도 여행 가방이 워낙에 많은지라 겨우 겨우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쇼핑하기 시작하면 짐이 분명 더 늘텐데 이걸 다 어떻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와는 가기 전에 식사 같이 한번 하기로 하고 일단 거기서 헤어졌다. 몇년만에 아이들을 보신게 반가우셨고 더 오래 보고 싶으셨을텐데 더 오래 지내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출발해 본다.
삼성역 현대 백화점 / KOEX
처가는 용인이라 결국 서울을 완전히 가로질러 내려가야 한다. 안사람이 건강 검진을 받은 병원은 신림동에 있어 내려가는 길에 태울 수는 있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사람도 마땅히 기다릴 만한 곳도 없었고 나도 그 근처에 가면 어디서 만나 태워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안사람과 약속한 장소가 KOEX 내에 있는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이었다. 근처에 앉아서 기다릴만한 곳도 많았고 심심하지 않게 기다리는 동안 상점 구경도 할 수 있는데다가 나도 바로 옆 현대 백화점에 주차를 하면 되니 말이다.
2000년 학위를 받고 처음 직장 생활을 한 곳은 지금의 하이닉스, 당시에는 현대전자였다. 석사 과정 때부터 산학지원을 받았는데 그 때는 LG 반도체. 98년 IMF가 있고 나서 현대 전자가 LG 반도체를 합병했고 당시 우면동 LG 연구소 단지에 있던 반도체 연구원들은 선릉역 근처 "영동빌딩"이라고 부르던 건물로 옮겨 갔다. 나는 바로 이 선릉역 "영동빌딩"으로 배치가 되었고 거기서 퇴사 할 때가지 내내 근무했더랬다. 그러다 보니 삼성역에 있는 현대 백화점을 꽤나 많이 이용했었다. 당시 현대 그룹 계열사인 경우 현대 백화점의 소위 "12" 카드라는 것을 발급 받을 수 있었다. 백화점 카드 번호가 12번으로 시작해 그렇게 불렀던 걸로 기억한다. 검색해 보니 아직 현대 백화점 그룹 및 계열사에 대해서 발급한다고 나오는 걸로 보아 아직 사용되고 있나 보다. 그 "12" 카드가 있으면 백화점에서 상시 10%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꽤나 많이 이용했다. 맨날 무슨 명품을 사는 것은 당연 아니었고 당시 3-4세였던 큰 아이의 현대 백화점 문화 센터를 이용할 때, 그리고 지하에 있는 식품점 등을 이용할 때 꽤나 쏠쏠하게 쓸 수 있었다. 그런 추억 아닌 추억이 있어서 쉽게 만날 장소로 정했더랬다.
당시에도 삼성역 근처는 교통 지옥이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정도가 훨씬 더해 진 것 같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쭉 따라 왔는데 삼성역 사거리에서 지하 상가 및 복합 환승센터 공사로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삼성역 사거리를 지나는데 신호등이 서너번이 바뀌고서야 겨우 지나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콘티넨털 호텔 앞에서 현대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에 택시 한대가 움직이지도 않고 길을 막고 서 있어 교통 체증을 더하고 있었다. 옛날엔 대체 이 복잡함을 어떻게 지내 왔는지 모르겠다. 물론 20년 전에는 조금은 여유롭지 않았을까.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현대 백화점 1층으로 올라 왔다. 정말 20여년만에 다시 온 것 같다. 변한건 크게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작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꽤나 넓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새 미국 사이즈, 아니 텍사스 사이즈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지하로 내려가니 예전 그 식품점과 여러 작은 식당들과 빵집들이 그대로 있었다. 이런 건 너무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여기서 추억에 잠겨 있기 보다는 벌써 1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안사람을 찾으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KOEX 내부가 복잡하기도 하려니와 "별마당 도서관"도 꽤나 규모가 있어 안사람 만나는데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 쉽게 만났다. 다만 오랜 검사에 오늘 오전 내시경 검사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새 속을 비워 내느라 고생한 안사람이 너무 피곤해하고 힘들어 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만나고 나서 이런 저런 수다를 조금 떨고는 기운을 차렸는지 백화점으로 돌아 가는 길에 아이들과 악세사리 가게에 들어가 이런 저런 걸 둘러 본다.
그 때는 몰랐다. 가게 밖에서 안사람과 아이들이 쇼핑을 마칠 때까지 내내 기다리는 것이 남은 여행의 내 일상이 되리라는 것을....
용인 처가집으로
현대 백화점을 나서 봉은사 길 앞을 지나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내달렸다. 정말 렌트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짐을 들고 대중 교통을 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의 차를 빌리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한국에 올 때마다 미니밴을 렌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긴 시간을 달려 용인 동백 지구에 사시는 처가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 근처에는 주차면이 넉넉하지 않아 어디 세울 곳이 없어 일단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다음에 여행 가방을 바리 바리 싸들고 아파트 입구까지 올라 갔다. 연락 드렸더니 바로 내려 오신다. 그렇게 엄청 반가워해 주시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일단 집에 올라가 짐을 대강 정리한 다음에 거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나서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저녁을 푸짐하게 준비하셨을텐데 이제 벌써 여든이 훌쩍 넘으신 두 분에게 그런 호사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가급적 우리가 있는 동안은 맛있는 것 같이 먹으러 다니는 걸로 하기로 했다. 이미 두 분께서 오늘 저녁 장소를 정해 놓으셨단다. 근처 이마트가 있는 건물, 쥬네브 썬월드 건물에 꽤나 괜찮은 부페집이 있다고 거기로 가자고 하신다. 집에서도 한식을 주로 먹긴 하지만 아이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 부페로 가면 알아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아서 고르셨다고 한다. 게다가 점심 때까지 죽 밖에 먹지 못한 안사람도 괜시리 부담스러운 걸 먹기 보다 부드러운 음식들과 골라 먹을 수 있어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용인에 들어온 날이 목요일 저녁이라 처남네 식구들은 다 보지 못하고 처남만 함께 했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 소식 전하며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침거리를 위한 빵, 죽 들을 사러 이마트에 내려갔다. 미국에도 여러 한국 마켓과 H-mart 등이 있어 왠만한 한국 제품들을 다 구할 수는 있지만 종류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이마트 식품점을 이리 저리 돌아 다니며 신기한 것들을 많이 찾아 왔다. 특히나 컵라면 종류는 정말 무궁무진 했던 것 같다. 그래 기회 있을 때 다 도전해 보자꾸나.
오늘 하루는 이동하는데 내내 시간을 다 보냈다.
이제 다시 짐을 풀렀으니 새로운 일정을 시작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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