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호텔에서의 조식
한번 좋은 것을 경험하고 나면 다음번 경험들은 그 기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작년 로마/피렌체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호텔 조식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품질 또한 어디 내어 놓아도 아쉽지 않을 그런 품질이었다. 그래서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 때도 가급적 조식이 포함된 호텔을 찾았고 우리가 머무른 H10 Madison 호텔도 리뷰에 조식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선택했다. 조식은 꽤나 괜찮았다. 문제는 내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부페 스타일의 조식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지만 그 종류는 로마/피렌체 때 보다는 한정적이었다. 다만 로마/피렌체처럼 full service 조식 스타일이었다. 자리를 안내 받아 앉으면 먼저 방번호를 확인 한 후 메뉴판을 나누어 준다. 부페 스타일로 한켠에 기본적인 빵, 햄, 샐러드 등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따로 메뉴판에서 오믈렛 등을 시킬 수 있다. 첫 며칠은 부페에서 가져다 먹다가 하루는 오믈렛을 시켰는데 부드럽기 보다는 살짝 퍽퍽했고 사이드로 시킨 베이컨은 정말 바싹 구워져 나와 과자처럼 부서졌다. 이게 바르셀로나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메.리.칸. 스타일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그다지 맞지 않은 메뉴였다.
구지 점수를 매기자면 로마/피렌체를 10점 만점으로 해서 7-8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2-3점 정도 밖에 줄 수 없는 Holiday Inn 보다야 월등히 낫다만서도. 그래도 머무르는 내내 만족스러웠던 아침 식사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Sagrada Familia로 가는 길
파리에 가면 에펠탑,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 카이로에 가면 피라미드를 반드시 봐야 하듯이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당연히 가우디의 Sagrada Familia 성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알아 본 것이 Sagrada Familia 성당 방문 예약을 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입장권은 일찌감치 sold out이었고 Viator를 통해 영어 가이드 투어를 찾아 보았다. 마침 오전 11시에 소그룹 투어가 있어 망설이지 않고 예약을 마쳤다. 일반 관람 입장권보다야 가이드 투어가 훨씬 비싸기는 하지만 지난 번 바티칸 박물관 투어 때 경험해 보니 그게 결코 아까운 비용이 아니었다. 앞으로 여러가지를 설명하겠지만 만일 가이드가 이러한 것들을 설명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 장소에 가서 눈으로 우와... 하고 그냥 끝이었을 것 같다. 여러번 강조하게 되지만 이야기가 없는 관람은 왔노라, 보았노라, 갔노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오전 11시 예약이라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첫날은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시간 여유를 넉넉하게 가지는 것이 좋다. Sagrada Familia 성당으로 가는 길은 간단히 메트로 지하철을 타면 되지만 티켓 사는 것부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등등 헤매지 않으려면 첫날은 어쩔 수 없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출발 준비를 마친 건 9시. 일단 호텔을 나와 가까운 메트로 지하철 역까지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관광지 답게 비교적 대중 교통이 잘 구비되어 있다. 메트로 지하철과 일반 노상 버스가 대부분의 관광지를 연결하고 있어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바로셀로나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다. 서울이 대중 교통 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르셀로나도 거기에 못지 않았다. 지하철과 버스는 거의 새것 같이 깨끗했고 지하철 플렛폼이나 버스 정류장에는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도 상세히 알려 주고 있었다. Google Maps을 이용하는 경우 더 편리한데 환승을 포함해 몇분에 어느 역/정류장에 도착하는지도 자세히 나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 준다. 물론 이것 때문에 한번 고생을 하지만 그래도 Google Maps는 최선을 다해 최적 노선을 알려 준다.
우선 호텔에서 카탈루냐 광장에 위치한 메트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여기서 L3 노선을 타고 Diagonal 역까지 이동, 거기서 L5 노선으로 갈아 타면 바로 성당 앞에 도착한다. 메트로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 일단 티켓을 사야했다. 여기서는 2일권 (18.10 유로), 3일권 (26.30 유로), 4일권 (34.40 유로), 5일권 (42.10 유로) 티켓이 있고 이 티켓들로는 공항 버스 AeroBus도 탈 수 있다. 반면에 T-usual/casual card라는 것이 있는데 한달 (22 유로), 10번 (12.55 유로) 메트로/버스/트램을 탈 수 있는 티켓도 있다. T-mobilitat 시스템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대부분 관광지를 다닐 메트로/버스에는 사용이 가능하다. 다만 공항 버스 AeroBus는 포함이 안 된다. 1번 탈 수 있는 single ticket의 가격은 2.65 유로라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 T-casual card, 즉 10번 탈 수 있는 티켓이 가격도 제일 적당하게 맞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정해 놓은 여행 스케줄에 따르면 각 하루 마다 갈 때 한번, 올 때 한번 메트로/버스를 탈 예정이라 5일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티켓까지 해결하고 나서 바르셀로나에 첫 메트로 지하철 여행이 시작되었다.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Diagonal 역에서 L3 열차에서 내려 L5 열차 플랫폼으로 찾아 갔다. 이 환승 과정은 서울에서 환승하는 것과 비슷했다. 바르셀로나 메트로에 조금 특이했던 점은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모든 문이 다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에 버튼이 하나 달려 있는데 이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게다가 메트로 열차의 문은 생각보다 빨리 닫긴다. 환승 때 와이프와 첫째, 둘째가 먼저 탄 상태에서 문이 쓱 닫쳐 버렸다. 내가 막내 뒤에 있었기 망정이지 내가 서둘러 탔다면 막내만 뒤에 혼자 남을 뻔 했다.
Sagrada Familia 성당은 Sagrada Familia 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플랫폼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는 계단을 올라 오면 갑자기 성당이 눈앞에 떡하고 나타난다.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
스페인어로 정식 명칭이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는 한글로 번역하면 "성가정 대성당"이 된다. 가톨릭에서 "성가정 (Holy Family)"는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의 가정을 의미한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유럽의 고딕 양식의 성당과는 외형이 다르고 마치 반지의 제왕 같은 환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치 계획도 없이 무분별하게 세워진 매끄럽지 못한 외형이 묘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게 이 성당의 첫번째 매력이다.
묘하게 어글리하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이는 외형과 더불어 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사실은 이 성당이 아직도 완공이 안 된 현재 진행형 건물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층 빌딩이라는 높이 828미터의 브르주 칼리파 (Burj Khalifa)도 불과 6년만에 완공을 했고, 높은 빌딩의 대명사였던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도 1930년 3월에 짓기 시작해 불과 1년 45일만인 다음해 1931년 4월에 완공된 걸 생각하면 1882년에 짓기 시작해 142년째 짓고 있다는 건 오히려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특이한 모습 때문에 건축하는데 복잡성과 난이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1936년에 발생한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15년 이상 건축이 중단되었고 건축가인 가우디가 자세한 설계도를 남겨 놓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마저도 많은 부분 스페인 내전동안 소실되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정부나 바티칸 등의 재정적 지원없이 자체적인 재원, 기부금과 입장권 수입으로 성당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아직도 짓고 있는 건축물이라는 것이 오히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매력 포인트이다. 가우디 본인도 자신이 살아 생전에 이 성당의 완성을 볼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고 200년은 걸릴거라고 예상해서 완공 시기를 2082년으로 예측했었다.
일단 완공 목표는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 때까지 마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단 판데믹 기간동안 상당히 건축이 지연되었으며 처음 짓기 시작할 당시 이 지역은 사실상 바르셀로나 외곽의 아무런 건물도 없는 평지였는데 지금은 주변이 현대 건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건축이 더 지연되고 있다. 특히 정문 부분의 경우 설계상 더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재는 7층 이상의 건물, 게다가 2층 이상은 일반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주택이라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문제라고 한다. 이주/보상비를 전부 지불하고 허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입주민들도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의 독특한 점 하나는 불법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성당이 세워질 당시 이 지역은 바르셀로나 시가 아니었고 산 마르티라는 이름의 시 행정구역이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건축 허가 신청서가 산 마르티 시청에 제출되었지만 곧 바로 바르셀로나 시로 합병되면서 신청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그냥 그 상태로 잊혀지게 된다. 그 사실을 2015년 발견하게 되어 이 성당은 법적으로는 130년 동안 불법 건축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물론 지금은 처리가 되었지만 성당에 대한 재미있는 소소한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다.
메트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안내도를 따라 메트로 출구를 찾아 나가니 바로 성당 앞이었다. 흔히 성당의 정면을 사람들이 입장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곳이 정문은 아니다. 그래도 그 면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 가족이 나온 출구는 오른편 뒤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당에 대한 첫 인상은 어, 생각보다는 좀 작네... 였다. 이건 아마도 보는 위치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성모당에 건물이 상당히 가려져 있던데다가 더 높이 솓은 메인 탑 부분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기와는 상관없이 성당 건물의 어느 한 부분도 평면이 없다는 사실, 즉 비어 있는 부분 없이 모두 조각상들과 디자인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 왔다.
가이드를 통한 입장 예약까지는 약 40분쯤 남아서 입구 쪽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사진을 찍고 차근차근 외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입구 쪽은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못이 있는 공원 지역이라 사람들이 주로 그 쪽에 모여 사진을 찍거나 입장 순서를 기다리곤 했다. 가이드를 만나는 장소는 뒤편 건물들 사이로 나 있는 골목 중간이었다. 골목 중간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의자들도 있어서 기다리기 편했고 좌우로는 음식점들이 있고 그 음식점들은 이 넓은 공간 곳곳에 자기네들만의 천막을 치고 손님들이 외부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중간에 큰 나무가 몇개 있어서 성당이 전부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이 사이 건너로 성당이 보이는, 정말 뷰는 끝내주는 공간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어 가이드를 만나고 10여명쯤 되는 일행들과 함께 성당 쪽으로 향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개인 입장과 가이드/그룹 입장 줄은 달랐고 시큐리티 포인트를 지나 그 곳에서 가이드로부터 인이어 마이크를 나누어 받았다. 그 곳은 성당 건물 바로 아래였고 성당 쪽으로는 지하로 이어지는 입구와 화장실 방향 표시가 있었고 좌측 출구겸 기프트 센터 옆에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바로 성당 앞에 서게 된다.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cade)
파사드(Facade)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건물의 얼굴, 혹은 정면을 뜻하지만 보통 어느 건물의 보이는 쪽 외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딱히 한국말로 표현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계속해서 파사드라고 쓰겠지만 이 Sagrada Familia 처럼 파사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하나의 건물이지만 어느 쪽에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외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는 입구가 이쪽에 있고 그 앞에 큰 공원까지 있서 많은 사람들이 이쪽이 성당의 정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성당의 정문은 여기가 아니다. 보통 성당은 위에서 바라 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십자가가 교차하는 부분, 혹은 머리 부분에 제대(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시는 큰 테이블)가 위치하고 입구는 십자가의 발 부분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보는 이 부분은 십자가의 우측 날개 부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곳 입구처럼 되어 버린 것은 이 부분이 제일 먼저 완성이 되었고 아직 정문부분이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한번 언급한 바와 같이 정면 입구가 되어 할 부분이 지금은 현대식 7층 건물이 들어서 있어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정문 완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관광객들의 출입문으로 쓰이는 이 부분은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cade)라고 불리우는데 예수님의 탄생을 나타내는 조각상들과 장식으로 채워져 있다.
이 탄생의 파사드 앞에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 군데 군데 가이드들이 자신들의 그룹을 모아 두고 전체적인 성당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예수님 탄생에 대한 여러 성서 이야기를 군데 군데 배치해 놓고 있기 때문에 가이드가 하나씩 위치를 알려 주며 무슨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워낙 많은 장식들로 채워져 있어 멀리서 보면 괴기하고 지저분하게만 보일 수 있는 것들이 가까이서 보면 하나 하나 공들여서 만들어 낸 조각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성당에서는 보기 힘든 장식들, 나무라든가 나무 열매등의 장식이 성당 전체를 꾸미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기 위한 문을 보면 중간 중간에 도마뱀 조각상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유럽 다른 곳에서 보는 성당들, 특히나 고딕 양식의 성당들을 보면 그저 끝없이 높게 뻗은 웅장함만이 전부라면 이 Sagrada Familia는 아름답게 잘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 같다고나 할까. 탄생은 행복과 축하의 의미이듯이 탄생의 파사드는 전체적으로 밝고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내부를 지나 완전 반대편, 즉 위에서 보면 십자가 좌측 날개에 해당하는 쪽으로 나와 보면 완전 다른 분위기의 파사드가 펼쳐진다.
수난의 파사드 (Passion Facade)
한쪽이 탄생이었다면 반대쪽은 죽음이다. 이 쪽 파사드는 예수님의 수난 과정, 유다의 배신, 십자가를 끌고 가는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형을 당하시는 모습 등등 예수님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게 단순이 수난 과정만을 나타내고 있는게 아니라 그 표현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탄생의 파사드 부분은 인물들이나 장식이 대부분 현실적인 모습으로 조각/장식되어 있다면 수난의 파사드 부분은 마치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성당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감탄의 얼굴로 탄생의 파사드와 내부를 지나온 사람들은 이 수난의 파사드를 만나는 순간부터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게 된다.
이 수난의 파사드 부분은 가득이나 남서쪽 방향이라 하루의 대부분 그늘이 져서 더 어둡게 느껴지는데 이 파사드를 뒤덮고 있는 조각상들이 다 이런 모습이니 살짝 오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느꼈다면 설계자의 의도가 100% 전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고통/고난, 그리고 죽음을 표현하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이 마냥 밝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더욱 그 고통을 이해하고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이해 할 수 있기를, 가우디는 그렇게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수난의 파사드 부분의 가우디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그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실 그는 이 파사드 부분이 수난의 파사드가 되기를 처음부터 의도했고 그렇게 설계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도면을 남기지 않았다. 아니 남겼는지도 모르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 소실된 많은 자료 중에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수난의 파사드 부분은 1954년부터 조셉 수비라치라는 조각가/미술가가 설계를 하고 완성 시켰다. 가우디가 이 부분은 "단단하고 벌거벗었으며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을 세워 두었지만 상세 도면이 없었기 때문에 조셉 수바라치는 가우디의 의도는 따르되 자신이 해석하는 방향대로 설계를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가우디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게 비쳐지는데 만일 가우디가 직접 설계를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까 아니면 그 나름대로의 경외심과 고통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그가 남긴 여러 다른 건축물, 조각들에서는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없어서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수난의 파사드 부분은 직선의 날카로움과 추상적인 모습의 인간 조각들로 인해 이미 한차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싸늘함을 느끼게 했다면 그 중앙에 자리 잡은 십자가 상은 등꼴 오싹한 전율로 다가 온다.
여러 성당들을 다녀 보았다면 성당 안에 자리 잡은 십자가 상의 예수님은 100% 중요 부위가 천으로 가려져 있다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파사드에 있는 십자가 위 예수님은 완벽하게 나체 모습 그대로 조각되어 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경우 설제 이렇게 나체 상태로 매달리게 된다고 한다. 한 때 너무 적나라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제작자는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들었다.
바티칸 박물관에 가면 거기에 있는 모든 고대 그리스/로마 나체 조각상들은 중요 부분에 조각 전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화과 잎사귀 장식을 달고 있다. 1650년대 교황 이노센트 10세, 클레멘스 13세 등이 나체 조각상은 불경스럽고 음탕한 생각을 일깨운다고 전부 가리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걸 보고 음탕한 생각을 한게 잘못이지 나체 조각상 자체는 잘못이 없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보면 그 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럼에도 왜 스스로 저기에 매달리셔야 했는지를 봐야지 예수님이 나체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거의 유일한 나체 예수상이라고 한다.
내부 스테인드 글래스와 구조
Sagrada Familia가 다른 성당에 비해서 더 뛰어난 점이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건물 자체, 전체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다. 분명 규모나 압도하는 분위기, 내부 장식에 대해서는 작년 로마/피렌체에서 경험해 본 성당 건물들, 성 베드로 대성당부터 피렌체 두오모 등등 비견할만한 성당들이 있겠지만 그 때의 느낌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찾아가 거기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예술품 몇 점을 보러 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 예술품이 너무나 훌륭해서 그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그 예술품을 담고 있는 건물 자체에 대해서는 예술품과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성 베드로 성당, 두오모 자체도 훌륭했지만 약간 1 + 1이 2가 되지 못하고 1.5쯤 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때론 그 각각의 1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Sagrada Familia는 규모는 당연히 이런 대성당들에 비하면 소규모의 성당에 불과하지만 그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는 1 + 1이 3쯤 되어 버리는 매직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단상이겠지만 진정 Sagrada Familia의 아름다움은 내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당 내부의 아름다움은 보통 천장에 그려진 벽화나 주변 채플에 놓여 있는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으로 만들어지지만 Sagrada Familia는 그런 채플이나 조각상이 없다. 그냥 그 성당 자체가 아름답니다.
여러 성당들을 둘러 보면 대부분은 좌우 벽면이 채플로 되어 있어 벽면이 막혀 있어 전등이나 초를 켜 놓지 않으면 상당히 어두울수 밖에 없다. 거기에 종종 벽화나 성인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도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성당들이 있는데 이들도 대부분은 눈높이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높은 벽면 꼭대기, 거의 천장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자세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묘사를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Sagrada Familar는 거의 벽면 전체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보아 오던 어둑어둑하던 성당 내부가 아닌 환하게 밝혀져 있는 성당 내부가 만들어진다. 게다가 탄생의 파사드 쪽은 푸르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반대쪽 수난의 파사드 쪽은 붉은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이루어져 있어 두 색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성당의 중심부로 떨어져 나온다. 이런 식의 조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가우디의 천재적인 설계에 있다.
고딕 양식의 건물 특징은 곧게, 그리고 높이 솟아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곧게 솟은 건물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위로 올라 갈수록 좁아지게 설계해서 위쪽 하중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 지금은 무너져버린 맨해턴의 무역센터 같은 건물은 곧게 솟아 있는데 이 경우는 건물의 하중을 서로 잡아 주도록 격자형태의 내부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무실과 같은 건물은 내부가 격자 모양이여도 상관이 없지만 성당같이 내부가 확 트여 있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만들수가 없다. 그래서 고딕 양식의 성당의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lying buttress라는 구조가 들어가게 된다. 즉 외벽은 곧게 위로 올리고 이 외벽이 바깥쪽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바깥쪽에 다시 부속벽을 세우고 이 벽에 안쪽으로 아치모양의 팔을 붙여 지탱해 주는 것이다. 이 부속벽을 Flying buttress라고 부른다. 위 사진 속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면 이 Flying buttress를 잘 볼 수 있다. 이러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줄 수 있지만 이 부속벽이 결국 시야를 막아 버린다. 그래서 한쪽 벽면 전체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들어 갈 수 없고 트여 있는 윗 부분에만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할 수 밖에 없다. 채광도 윗부분으로만 가능해서 내부도 늘 어둡게 된다.
하지만 Sagrada Famila는 전체적으로 고딕 양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이 Flying buttress가 없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부속 외벽이 없으니 벽 전체를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 수 있었고 어둡고 칙칙한 내부가 아닌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 오는 다채로운 색감으로 내부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나 피렌체의 성당을 들어가서 천창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천장화들을 보며 우와... 라는 감탄사를 외치기는 했지만 그런 천장화가 멋졌던 건 그 위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비워두지 않고 그냥 어떤 그림이 있다는 것이 멋있었지 그 그림이 무엇을 나타내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는 알수도 없었고 전해지지도 않았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의 경우 누군가 이 그림은 무얼 나타내고 저 부분은 성서의 어떤 부분을 나타내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냥 라파엘로의 그림이구나라고 하고 끝났지 싶다.
그런데 가우디는 Sagrada Famila의 천장에 그림이 아닌 자연을 조각해 넣었다. 천장화는 그 그림이 나타내는 이야기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반면, 누구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아니 이해라는 것이 필요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연은 느끼면 되니까. 그래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각양 각색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색감과 더불어 어느 봄날의 숲속 같은 천장의 아래에 서 있으면 자연스러운 평안함이 든다. 그래서 Sagrada Famila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지 않고 내부의 숨결에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영광의 파사드 (Glory Facade) 부분의 내부
좌우 스테인드 글라스를 두고 미사가 이루어지는 제대를 등지면 보이는 면이 바로 이 성당의 정문이 위치할 곳이 된다. 이 정문이 위치할 곳의 외부는 영광의 파사드라고 명명되어져 있고 지옥과 최후의 심판, 영생을 주제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공사는 2002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앞서 말한 마주한 현대식 건물 때문에 공사 진행은 더딜 수 밖에 없다. 이미 주 출입문으로 사용될 장식은 완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 위치에는 프린트된 주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다. 특이하게 이 주 출입문에는 다른 장식이 아니라 50가지 언어로 주님의 기도문을 새겨 넣었다.
좀 더 자세히 내부를 둘러 보던 중에 각 스테인드 글라스에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이름들은 성인들 중에서 각국을 대표할 수 있는 분들을 선정해 하나씩 새겨 넣은 것인데 수난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 글라스 중 거의 끝부분 낮은 높이 부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름 "A. Kim"이라고 쓰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을 수 있다. 처음에 큰 아이가 스테인드 글라스들을 차근차근 둘러 보다가 "Kim"이라고 쓰인 이름에 신기해 했는데 나중에 성당 지하에 위치한 성당 박물관에서 스테인드 글라스에 쓰인 이름들이 천주교 성인들의 이름이라는 것과 그 이름 중에 한국 성인으로 Andrew Kim (안드레아 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있다는 안내문을 읽고 비로소 그 스테인드 글라스의 주인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몰랐는데 큰 아이가 자기가 발견한 걸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어 Sagrada Famila를 떠나기 전 다같이 그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아 보았다.
수난의 파사드 쪽에서 우측으로 가 보면 성당을 만들 때 동원된 인부 자녀들을 위한 학교 건물이 있고 그 사이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하나 있다. 안내문에는 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어 일단 내려가 보았는데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에 당시 건축 때 썼던 도구들, 가구들, 그리고 어떻게 이 성당을 짓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실해 보이는데... 라는 생각이 들때쯤 복도 중간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고 그 안은 어마어마한 공간으로 성당에 대한 더 많은 자료로 가득차 있었다. 실제 성당의 지하실과 같은 부분으로 기념품 상점과 더 많은 전시물들, 가우디가 어떤 기록들을 남겼는지, 어떻게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성당을 설계하고 공학적으로도 안정되게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 끝까지 가면 반대편 탄생의 파사드 아래 쪽으로 나오게 되며 거기가 처음 성당에 입장해 가이드의 무선 이어폰을 받았던 장소, 화장실 표시가 있던 그 입구로 이어지게 된다.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i)
Sagrada Familia 성당을 이야기 하면서 이를 설계한 가우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를 이야기하면 사실 상 가우디에 의한, 가우디를 위한,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 하다고 할 수 있고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온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것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
본명이 Antoni Placid Guillem Gaudi i Cornet (안토니 플라시트 길렘 가우디 이 코르네트)인 가우디는 1852년에 태어난 건축가이다. 어릴 적 류마티스를 앓아 지팡이를 집고 다닐 정도로 허약했는데 바르셀로나 건축전문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다. 20대 청년일 때는 놀기 좋아하고 사교계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건축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Sagrada Familia의 건축을 맡게 되면서 정말 열열한 가톨릭 신자가 되어 매일 미사에 참석하며 자신의 재능이 이 성당 건축에 사용되는 것에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아애 Sagrada Familia 건설 현장에서 살면서 성당 건축 하나에 매진함으로써 사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지식한 지식인의 인상이 깊어지고 만다. 놀기 좋아하고 방탕한 20대였지만 비교적 사업적인 마인드가 있어 건축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부지런히 사교 모임과 인맥을 넓히는데 무척 애를 썼다고 한다. 그 업계에서 인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구엘 가문을 만나 지원을 받으며 그 가문 의뢰의 건축물들을 짓기 시작하며 명성이 높아졌다. 바르셀로나의 일정 중에 구엘 가문과 관련된 가우디의 건축물을 두번 더 방문하게 된다.
사실 Sagrada Familia는 가우디가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성당의 건축주는 교회나 정부가 아닌 종교 서적 출판사 사장이던 Josep Maria Bocabella (주제프 마리아 보카베야) 라는 사람인데 1882년 카탈루냐 지방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 속죄하는 마음으로 짓겠다고 생각하고 순전히 신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수석 건축가는 교구에 속한 건축가 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비야르)인데 그의 첫 설계는 네오 고딕 양식의 성당이었다. 그런데 그가 1883년 사임하자 당시 건설 감독으로 일하던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이어 받게 된다. 몇차례 설계 변경이 이루어져 지금의 형태의 최종안이 만들어지고 가우디는 점차 Sagrada Familia 건설에 매진하면서 점차 몰입하더니 나중에는 지하에 방 하나로 아애 이사를 들어와 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자기 살아 생전에 이 성당을 완성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가 죽은 다음에도 자기가 생각하고 설계한 대로 공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자료와 설계 등을 남겼으나 스페인 내전 동안 소실된 것들이 많아 공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성당 공사에 매달릴수록 점점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더니 나중에는 이 성당의 건축이 그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노년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현재 남아 있는 말년의 모습도 행사 중에 우연히 찍힌 것이라고 한다. Sagrada Familia 성당 건축과 그의 다른 건축물들로 인해 사람들이 그의 이름, 명성은 익히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를 알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결국 큰 화를 부르게 된다.
1926년 6월 7일, 지금의 바르셀로나 대성당 근처에 있는 Church of Sant Felip Neri에 가는 길에 (다른 자료에는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면 전차, Tram에 치여 중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당시 잘 차려 입지 않던 가우디의 모습이 노숙자 같아 그를 길가 옆으로 치우고 그냥 가 버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보고 병원으로 옮기고자 택시를 불러 세웠으나 노숙자 같은 모습의 그를 태우지 않겠다고 하여 3번이나 승차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겨우 네번째 택시를 타고 Hospital de Sant Pau에 갔으나 의사마저 노숙자로 생각하고 기본 치료만 하고 방치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친분 있던 주임 신부가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을 뒤져 그를 찾아냈지만 너무 중상이었던지라 3일 후 7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망 사고를 낸 노면 전차 운전수는 파면과 구속을, 승차 거부를 한 택시 운전사 3명은 불구속,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병원은 유족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6월 12일, 국장에 버금가는 장례식으로 그는 Sagrada Familia 지하 묘지에 묻힌다.
자신이 평생을 바쳤던 성당의 지하에 안식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대로 평화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10년 후 스페인 내전이 발생 했을 때 과격주의자들이 이 지하 성당에 방화를 하였고, 얼마 후엔 경찰이 무덤 안에 공화파의 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 무덤을 파헤치기도 했단다. 다행이 관뚜껑까지 여는 사태는 없었지만 무덤은 파손된 상태로 1939년 프랑코의 군대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후에야 다시 단장되어 봉인되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해서 바르셀로나에 오면 반드시 와야 하는 장소라서 Sagrada Familia 성당을 첫날 방문했고,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Sagrada Familia에 이미 압도 당해 성당의 아름다움에 취했지만 앞으로 더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면서,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더 알게되면서 이 모든 걸 상상하고, 생각하고 현실로 만들어낸 그를 좀 더 알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그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늦은 점심 식사
투어는 약 한시간 반 정도 걸려 모두 끝났지만 지하 박물관을 둘러 보고 다시 성당 내부로 들어가 스테인드 글래스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다음 밖으로 나오니 이미 2시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이제 점심 식사를 해야 했는데 스페인에서, 특히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12월 26일이 "성 스테판의 날 (St. Stephen's day)"라고 해서 휴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가게/식당들이 문을 닫는다. 검색을 통해 찾은 식당에 찾아가니 여기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동네를 한바퀴 돈 다음 처음 가이드를 만나 투어를 시작했던 그 골목으로 돌아 오니 거기 식당들은 문을 열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서 안에서 먹으면 좋았겠지만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찼서 바깥 테이블만 자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의도하지 않게 Sagrada Familia를 바라 보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다섯 식구가 모두 함께 앉을 테이블이 없어 와이프와 나, 그리고 아이들 셋이 따로 앉았고 처음으로 빠에야를 시켜 보았는데 한국에 있을 때, 그리고 미국에서도 와이프가 몇번 집에서 만들어 준 적이 있어 어떤 느낌의 음식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본 고장의 음식이라고 하듯이 스페인에서는 이 빠에야를 본 고장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맛은 있었지만 우와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우와 하고 느낄 틈이 별로 없었는데 생각보다 추웠고 따끈하게 나온 빠에야는 반도 안 먹었는데 벌써 식어 버릴 정도였다.
원래 오후 일정은 바르셀로나가 내려다 보이는 Tibidabo 산에 갈 예정이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춥다고 호텔에 들려 외투를 더 챙겨야겠다고 했다. 나도 그냥 다니다가는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 Tibidabo에 가는 것은 포기하고 일단 호텔로 돌아 가기로 했다.
Ciutadella Park
일단 호텔로 돌아와 가족들은 호텔로 들어 가고 나는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광장에서 본 환전소가 생각나 일단 $200만 환전하기로 하고 환전소로 향했다. 로마에 있을 때는 시내 환전소가 의외로 환율이 좋아서 괜찮았는데 이곳 환전소는 정말 수수료가 엄청나고 환율로 안 좋았다. 그날 당일 환율은 $1 당 0.96 유로. 그러면 $200 환전에 192 유로는 되어야 하고 5% 수수료가 있더라도 182 유로는 되어야 하는데 정작 내가 받은 건 145 유로. 수수료 없이 단순 환율로 따지면 $1 당 0.725 유로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크레딧 카드를 받는데다가 관광지 예약도 미리 다 해 놓은 상태라 이 145 유로도 다 쓸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고, 너무 환율을 안 쳐 주는데다가 수수료도 너무 비싼거 같아 어떻게든 버텨보자 했는데 이 때 이만큼이라도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때가 딱 한번 오게 된다.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
원래 예정했던 Tibidabo에 가는 건 잊기로 하고 일단 첫날 시차도 차차 적응도 할겸 무리하지 말고 호텔에서 조금 쉬고 근처 Ciutadella Park에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방문할 장소들의 위치를 Google Maps로 보던 중에 호텔 근처에 꽤나 큰 공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Google Maps를 열면 금방 눈에 띌 정도의 크기인데다가 설명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의 센트럴 파크 같은 역할이라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일단 Ciutadella Park로 향했다.
지도에서 보았을 때 꽤나 큰 크기여서 기대를 했는데 막상 가 보니 생각보다는 작았다. 공원 한쪽에는 카탈루나 지방 의회 건물이 있었는데 실제 오렌지가 주렁 주렁 달린 오렌지 나무가 의회 앞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그 앞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지나가던 청년 둘이 나무 아래에서 점프를 하더니 오렌지 두어개를 따서 가져 갔다. 길 건너편 의회 앞 정문에 떡 하니 경찰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별로 개의치 않는듯 해 보였다.
여행 책자에서 이 Ciutadella Park를 설명할 때, 그리고 유튜브에서 보았을 때도 공원 한복판 연못에서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연못이라도 꽤나 클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가니 보트 타는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크기는 경회루 앞의 연못 정도의 크기 밖에 안 되어 보였다. 보트를 탈 수는 있지만 제대로 다닐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뒤로 돌아 가면 조금 더 작은 연못이 있고 Cascada monumental이란 분수대가 있다.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꽤나 멋있다고 하는데 몇년째 가뭄이 들면서 바르셀로나 전역의 분수는 운영 중단이란다. 대신 기념 건물은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가 볼 수 있고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로마/피렌체의 경험이 불과 일년 전이라 그런지 자꾸만 로마/피렌체와 비교하게 되는데 로마/피렌체에서는 작아 보이는 건물에 비해 그 안쪽이나 뒷쪽으로는 엄청나게 큰 것이 숨겨져 있거나 아애 처음부터 커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더 큰 것들의 향연이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작아 보이는데 막상 다가가면 더 작은 것들이 많은 느낌이다. 물론 첫날 경험한 것들이 Sagrada Familia와 이 Ciutadella Park 뿐이라 이게 전부가 아니겠지만 일단 첫날의 첫 느낌은 그랬다는 것이다. 앞으로 방문하게 될 장소들이 이런 나의 선입관을 깰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Cascada monumental 앞에 팔각정 같은 쉼터가 있는데 거기에 앉아 저녁은 어디서 먹을지 아이들이 검색하는 동안 근처에 서 있는 푯말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Placa de Sonia Rescalvo Zafra라고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이 팔각정(Pergola del Monumental)과 Cascada monumental 사이의 광장 이름이 Sonia Rescalvo Zafra 광장인 셈인데 누군가 궁금해 검색해 보았다가 꽤나 충격을 받았다.
Sonia Rescalvo Zafra는 1946년 생으로 1991년 10월 6일, 이 광장에서 노숙을 하던 중 네오나치 청년들에게 심하게 구타 당해 죽은 여성이다. 그의 죽음이 이 광장 이름으로 기려지는 이유는 그녀가 스페인에서 일어난 첫번째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심하게 구타를 당했는지 경찰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 그녀가 흑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카탈루냐 지방의 동성/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혐오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식의 변화가 누군가의 죽음으로서만 일어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Tapas 저녁 식사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 여러 음식 문화 중에 Tapas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여러 설명이 있었지만 그렇게 쉽게 다가 오지는 않았는데 간단히 말하면 맥주 등을 마시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작은 접시의 음식이라고 하면 될까.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이런 식이겠지만 딱 뭐라고 설명이 안 된다. 피자면 피자, 파스타면 파스타, 빠에야면 빠에야, 딱 어떤 종류의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Tapas는 어떤 한 종류의 음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냥 작은 접시에 후딱 먹어 버릴 수 있는 음식의 방식이라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음식이든지 이렇게 작은 접시에 소량으로 나오면 다 Tapas로 부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Tapas 전문 식당에 가면 메뉴판 한 가득 Tapas 메뉴가 나온다. 이게 대체로 칼라마리라든가 흔히 미국 식당에서 에피타이저로 먹을 수 있는 종류도 있지만 나름 독특한 것들도 있어 식당마다 자기네 특유의 Tapas가 있기도 하다.
큰 아이가 열심히 검색을 해서 공원에서 호텔로 가는 길 사이에 있는 Tapas로 유명한 식당을 하나 찾았다. 저녁 6시쯤 정도 되었을 때였는데 이미 식당은 가득 찼고 waiting을 하려고 했더니 이미 예약으로 가득차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 자기네 자매 Tapas 식당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 다른 종류의 식당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Tapas를 시도해 보기로 했으면 도전을 마무리 해 보기로 했다. 알려준 자매 식당은 그리 멀지 않아 금새 찾아갔지만 역시나 안에는 자리가 없어 바깥에 천막을 치고 만들어 놓은 외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다행이 천막이 있어서 바람막이가 되어 춥지는 않았다. 사실 그 때까지 난 Tapas라는 것이 유명하고 스페인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고 듣기만 했지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아이들이 메뉴판을 보며 이것 저것 시킬 때 그렇게 작은 접시에 조금씩 서빙되는 음식인지 몰랐고 아이들과 와이프가 주문한 것에서 몇점씩 나누어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나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사실 메뉴판을 봐도 어떤 것일지 잘 상상이 안 된 이유도 있지만.
그런데 Tapas 답게 줄줄이 나오는 접시들은 정말 두어 젓가락질이면 다 먹을 양 뿐이었고 아이들도 몇개를 먹어 보더니 양이 적어서 그 중에 괜찮았던 접시들을 다시 더 주문하기도 했다. 워낙 양이 작아 내가 나누어 먹기도 어려워 별로 먹지는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모자르긴 해도 배가 고플 정도는 아니었다. 점심을 3시쯤 마친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지만.
어찌저찌 식사를 마치고 영 Tapas가 우리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계산서를 가져 달라고 해서 크레딧 카드를 쓰려는데 이상하게 결재가 되지 않았다. 내 카드가 이상한가 싶어 와이프의 카드를 해 보았는데도 승인거부. 조금은 난감해 하고 있는데 마침 환전한게 생각이 났다. 저녁 식사 값은 총 93 유로라서 다행이 환전한 걸로 충분했는데 문뜩 또 다른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환전해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두고 보기로 했고 정 급하면 그 때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호텔로 향했다.
혹시 크레딧 카드가 아애 막힌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호텔로 오는 길에 근처 카페에 들려 아이들 아이스크림 후식을 샀는데 크레딧 카드는 문제없이 잘 결재 되었다. 그래서 걱정은 잠시 닫아 두기로 했다.
이렇게 일단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은 마무리를 했다. 계획한대로 Tibidabo 전망대는 가 보지 못했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은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무리해서 아프거나 추위에 떨며 감기라도 걸리면 남은 여행이 오히려 망가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Tibidabo에 가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게 아니라 유연하게 잘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남은 날들도 이런 기분으로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S: 관광지에서는 대부분 영어가 잘 통한다. 그런데 종종 특이하게 영어를 하면 알아는 들으시는데 대답은 스페니쉬로 하시는 경우가 있다. 아까 Tapas 식당에서도 그랬는데 주문할 때도, 크레딧 카드 결제가 잘 안될 때에도 우리는 영어를 하는데 그 분은 굳굳하게 스페니쉬로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페니쉬를 배웠기 때문에 대강 몇몇 단어로 의미를 알아 듣기도 했고 대강 눈치로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있었다. 참 희안한 대화법이다. 이게 된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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