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장/여행기 - 둘째날 소림사
소림사 (少林寺)
낙양에서 머물렀던 Marriot Hotel도 베이징에서 묵은 호텔과 같은 체인이라서 그런지 아침 부페 스타일도 꽤나 비슷했고 제공되는 아침 식사 내용도 비슷했다.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인지 비교적 개운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가 시작되는 딱 6시 30분에 맞추어 1층에 위치한 부페 식당으로 내려 갔는데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아 10여분 정도 기다린 후에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짐을 챙겨 집합 시간인 8시에 맞추어 내려와 체크아웃까지 마치고 지정된 버스에 올랐다. 여기서 바로 오늘의 메인 일정인 소림사(少林寺)로 향한다.

소림사(少林寺)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불교 사찰이지만 불교 보다는 무술로 더 유명해서 온갖 영화와 소설의 무대와 배경이 된 사찰이다. 나무 위키에서 찾아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중국인으로 무술을 사용하는 대머리 케렉터는 다 소림사 출신이거나 소림사 스님이라고 할 만큼 무술의 아이콘이다."
소림사가 무술이라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명나라 시대 때는 100대 명사찰로 나라의 사액을 받았던 사찰이자 중일전쟁과 문화대혁명동안 많이 소실된 다른 사찰과 달리 잘 살아 남아 보존된 사찰이다. 서기 495년 인도 천축국에서 온 승려 발타선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니 1500년이 넘은 고사찰이며 달마대사가 수련하며 중국 선종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한다. 한 때는 7천명이 넘는 승려가 소림사와 바로 옆에 위치한 숭산에서 수련했다고 전해지지만 근대에 들어 전쟁과 약탈로 1970년 대에는 20명도 안 되는 승려만 소림사 고찰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9년 이연걸 주연의 영화 "소림사"가 개봉되고 나서 세계적인 이름과 명성, 관심을 받게 되어 중국 당국의 지원과 함께 아애 "하남소림실업발전 유한공사"가 세워져 "소림사" 브랜드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드라마에서 "소림사"가 등장하려면 저작권료를 내야 한단다.
소림사의 무술은 승려들의 체력 단련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가 무술에 뛰어난 걸인/도망자/범죄자, 낙오된 도적들의 무술인들이 몸을 숨기러 들어 와서 자신들의 무술을 전수한 것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체계를 잡아 가며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명나라 시대 사료에서도 소림사의 무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과거부터 소림사 무술은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현대에 들어서 영화로 인한 재조명과 과거의 명성이 더해져 어느 정도 브랜드화가 되면서 더욱 발전한 모양새로 보인다. 그래도 그 브랜드 "소림사"는 "소림사"다.


소림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어제와 마찬가지로 꽤나 긴 거리를 걸어 소림사 입구까지 걸어가게 된다. 소림사 사찰에 도착하기 전에 최신식으로 지어진 높다란 문을 하나 지나게 되는데 마치 일본 신사의 문인 "토리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중국식 모양의 문이다. 그 앞에서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는 본격적으로 안으로 들어 섰다.
그 문을 넘자마자 바로 소림사 경내는 아니다. 5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숭산(嵩山)으로 가게 되고 우측으로 가면 소림사 방향이다. 이 갈림길 앞에는 커다란 탑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탑림(塔林)", 즉 "탑들의 숲"으로 불린다는데 고승들의 사리탑들로 보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가이드가 사람들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한팀은 케이블카를 타고 숭산으로 올라갈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한팀은 숭산에 오르지 않고 그냥 소림사 주변을 천천히 관람할 사람들로. 처음엔 뭘 올라가라는 생각에 그냥 주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까 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다 숭산으로 올라간다길래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따라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한다.
소림사 - 숭산 삼황 잔도 (嵩山 三皇 棧道)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내 매니저, 그리고 한국에서 온 다른 매니저와 셋이서 모이게 되었고, 우리를 늘 돌보아 주는 admin과 베이징 매니저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5분쯤 사람들과 어울려 올라가니 케이블카 입구가 나왔다. 미리 티켓을 사 놓았다고 안내를 받은 것 같은데 admin이 알아서 잘 챙겨 주고 있었다. 의외로 이런 관광지에서도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admin이나 베이징 매니저가 늘 옆에 있다는 것이 참 든든했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사람들과 어울러 케이블카를 타고 보니 케이블카를 이끌 줄이 저 멀리 산꼭대기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되겠지 했는데 무려 15분 동안이나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만만하게 보았던 숭산(嵩山)이란 곳이 결코 쉽게 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숭산(嵩山)은 중국 오악(五岳), 즉 다섯 명산 중에 하나로 꼽히는 산으로 소림사는 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소림사 무술과 연계된 이야기들이 많아서 무협 소설에는 꼭 나오는 명산이라고 하는데 무협 소설을 별로 읽어 보지 않아 낯선 산이긴 했다. 중국 오악(五岳) 중에 하나라고 해도 높이가 높은 건 아니다. 명산은 높이로 정해진다기 보다 그 경관과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에 따라 정해지는터라 숭산의 높이는 1512미터로, 제주도의 한라산 1947미터보다도 낮다. 낙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어쩔 수 없이 측천무후와 엮이지 않을 수 없는데 그녀가 무주를 세운 후 숭산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중요하게 여겨 측천무후와 관련된 여러 유적과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고 한다.


처음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긴장도 하고 점점 높아지는 고도에 걱정도 했지만 조금 지나니 모든게 익숙해지고 이제 밖으로 보이는 전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어떤 산이 명산에 꼽히는지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설악산/지리산의 산세를 보고 나면 이런게 명산이라고 하는구나라는 공감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숭산도 케이블카 너머로 보이는 절경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 높지도 않은 이 산이 왜 중국 오악(五岳)에 꼽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냥 한마디로 자태가 아름답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곳은 산 정상이 아닌 중턱에서 조금 더 올라간 부분이지만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반 코스와 잔도(棧道)로 이어지는 길이 갈린다. 우리는 등반 코스로 갈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따라 잔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 섰다. 첫 100미터 정도는 나무 숲에 가려 그냥 등산로 같은 곳을 따라가는 느낌이지만 그 숲을 벗어 나면 바로 눈앞에 숭산 삼황채(嵩山 三皇寨)와 함께 그 허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잔도(棧道)가 눈앞에 펼쳐진다.


숭산 삼황채(嵩山 三皇寨)는 숭산의 봉오리 중에 하나로 높게 솟은 바위 절벽과 하늘과 어울어진 아름다운 장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그 바위 절벽을 따라 만들어 놓은 잔도(棧道)이다. 잔도(棧道)라는 건 절벽에 선반처럼 달아서 만든 길을 의미하며 구구절절 설명보다 위 사진 한장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등에서 중국 산악 지방, 혹은 네팔 고산 지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때 영상으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그 위를 걸어가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 보았다. 다행인 건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던 그 아슬아슬한 잔도는 아니고 커다란 철제로 기초를 잡고 대부분의 길을 콘크리트로 마감한 튼튼한 길이었다. 난간도 콘크리트로 만들어 지긴 했지만 솔직히 이건 안에 철제 프레임이 있긴 한건지 걱정되긴 했다.
삼황채(三皇寨)란 말은 천조(하늘), 지조(땅), 인조(사람)을 상징하는 삼황, 우리네로 말하자면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며 숭산의 대표적 산등성이 봉우리를 지칭한다. 잔도 때문에 더 유명해졌지만 잔도가 없더라도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그 자체만으로도 웅장함과 자연의 경건함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잔도의 길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며 저 멀리 끝에 어떤 사원이 하나 보인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 곳은 삼황채 선원이라고 하는데 미처 그곳까지는 가 보지 못했다. 잔도의 전체 길이는 3000미터라고 하고 그 중간에 계곡 사이 흔들다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까지도 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중간에 admin과 베이징 매니저가 시간 맞추려면 지금 돌아 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긴 잔도를 따라 다시 돌아와 잔도가 시작되는 곳까지 왔을 때 꽤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엄청난 허기가 몰려 오면서 살짝 혈당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admin이 먹으라며 초콜렛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이라도 없었더라면 살짝 주저 앉을뻔 했다.
이번엔 일이 먼저였고 여행은 부수적인 것이라 별로 신경 안 쓰고 버스가 데려다 주는대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나중에 다녀와 여행기를 정리하며 여러 자료를 찾아 보다 보니 가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꽤나 잘 즐겼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인데 말이다.
소림사 - 경내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 오면서 베이징 매니저에게 내년에도 이렇게 야유회를 갈거냐고 물어보니 원래 매년 가지던 연례행사라고 했다. 그러면 또 올 수 있게 내년에도 또 초청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였지만 이 정도 여행이면 긴 비행시간과 바쁜 미팅과 일들의 연속이라도 정말 다시 올 마음이 있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이번엔 소림사 사찰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도 어디선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며 소림사 사찰 정문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선입관일수도 아니면 한국 사찰이라는 곳이 익숙해서인지 처음 마주하게 된 소림사 정문은 조금 낯설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천왕상이 모셔진 정문 전각말고도 좌우로 문이 더 있어 크기면에서는 결코 작은 건 아니었지만 소림사라는 익히 들어온 이름에 비해서는 살짝 작은 느낌이었다.




정문 뿐만이 아니라 가이드를 따라 들어선 소림사 경내도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딘가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잘 살펴 보니 소림사 경내에 꽤나 많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여기 저기 서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 제일의 사찰이라는 불국사에 가더라도 관광객이 그렇게 많아도 사람들로 번잡스럽다는 느낌은 안 들었는데 소림사 경내는 중간 중간 서 있는 나무들이 시야를 많이 가리는데다가 하늘마저 가리고 있는 모습이라 탁 트인 느낌보다 숲속에 다시 들어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보다 사람들로 더 가득찬 듯한 느낌을 주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답답한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더불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본당 뒷편이나 주변 건물들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가이드가 조만간 무술 시범을 보러갈 시간이라며 재촉하는 바람이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소림사" = "무술"이라는 관념에 묶여 무려 1500년이나 된 중국 선종의 고사찰이라는 걸 잊어 버린 것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소림사 무술은 부차적인 것이고 결국 많은 이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고 정진하는 사찰이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브랜드화 되어 유명해진, 그래서 본질이 잊혀지고 브랜드에 먹혀버린 스스로의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소림사 - 무술 시범
"소림사" = "무술"은 결코 뗄 수 없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결국 소림사 방문은 무술 시범으로 끝나게 된다. 원래 공연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250명쯤 되는 단체 관광객으로 방문하다 보니 우리 회사 사람들만을 위한 무술 시범 시간이 따로 정해졌다. 시범을 보일 수 있는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체육관 관람석에 둘러 앉아 자리를 잡으니 곧바로 시범이 시작되었다.

살짝 지방 서커스 공연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절도 있는 시험을 보이며 감탄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있었다. 연출이 조금 더 새련되었다면 꽤나 멋있는 공연이었을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관객석에서 지원자를 찾아 1:1로 나란히 서서 자기네들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며 함께 참여하게 만든 것은 그나마 칭찬해 줄만한 연출. 게다가 서양인들이 많아 그들을 주로 무대에 올리면서 다같이 어색한 동작에 웃고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 재미 있었다. 누가 올라가더라도 어려운 동작에 주춤주춤하겠지만 불려서 올라간 백인 친구들도 웃으며 어울리는 모두가 즐거운 장면들을 만들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서니 들어온 입구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출구를 안내했다. 그 길을 따라 가니 곧바로 마주하게된 기념품 상점들. 공연장 건물의 1/3 정도는 공연 무대 극장이었고 나머지 2/3는 전부 기념품 상점으로 차 있는 것 같았다. 문뜩 아주 오래전 불국사에 갔을 때 주차장에서부터 불국사 입구까지 좌우에 줄지어 있던 기념품, 간식거리 난전이 생각이 났다. 그냥 사소한 조각품들, 무술 관련 장난감들, 소림사 무술을 세긴 티셔츠, 그리고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기념품들까지 소소하게 아이들의 주머니를 털 것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온김에 기념품이나 하나 살까 싶었지만 (여행가면 늘 그 곳 마그넷을 사니까) 문제는 대부분의 상점이 위챗페이/알리페이 같은 것들만 받는다는 것이다.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점심 식사 후 베이징으로 귀환
원래 시간 계획을 짜는 것은 쉽지만 그 시간 계획대로 실행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250명쯤 되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공연이 끝나고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주차장까지 이동했지만 거기서 사람들이 다 오기 기다려 예정보다는 조금 늦게 점심 식사 장소로 향했다.
점심 식사 장소는 어제의 그 만찬 같은 곳은 아니었고 그냥 꽤나 큰 일반 식당 같은 곳의 3층 전체를 예약한 것 같았다. 숭산 Unusual Water Banquet Cultural Restaurant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었지만 사실 어떤 점에서 cultural restaurant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부지런히 자리를 채우자마자 바로 음식이 나왔고 가운데 커다란 Lazy Susan에 하나 둘씩 놓여지기 시작했다. 다들 간단한 잡담들을 하며 식사를 하는데 저 앞쪽에서 한국의 해금같은 중국 전통 악기를 든 남자분과 여자분이 나오더니 점심 식사 내내 중국 전통 노래 같은 것을 부르기 시작했다. 낯선 음악 알아 들 수 없는 노래 가사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눈길도 그다지 가지 않았다. 앞쪽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뒷쪽에 자리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중국 전통 음악을 들려준 것 이외에는 따로 cultural restaurant라고 할만한 게 없었는데 어쩌면 잘 모르기 때문에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Unusual Water Banquet이 어떤 뜻이 있다고 지나가는 말로 admin이 설명해 주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여유를 가지고 점심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적당히 식사가 끝나가자 기차 시간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며 우르르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른 건 미루거나 늦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차 시간은 미룰 수가 없는 절대 기준일 수 밖에 없다.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고속열차는 낙양으로 올 때 도착했던 역이 아닌 다른 역에서 타게 된다. 소림사가 낙양 근처이긴 했지만 다른 도시 지역에 속한 지역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향한 역은 정저우(鄭州; Zhengzhou) 기차역이었는데 이 도시 정저우(鄭州; Zhengzhou)가 후난성의 성도 소재지라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고속도로 같은 곳을 따라 움직여 어디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 갑작스럽게 도착한 열차역이라 외관도 별로 살펴 보지 못했다. 처음 베이징에서 출발했을 때와 같은 정도의 규모를 가진 커다란 열차역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간단한 가방검사/검색대를 거쳐 안으로 들어 갔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admin 말로는 모두 다 베이징으로 돌아 가지 않고 1/3 정도는 남아서 하루 더 놀다가 돌아 간다고 한다. 젊다는 건 좋은거다.
베이징 역과는 반대로 대합실은 2층에 있었고 열차 도착 시간이 되자 개찰구 앞에 긴 줄이 생겼고 여권을 스캔하고 들어가면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나왔다. 베이징에서 낙양으로 갈 때는 모두가 다 고속열차 일반석이었지만 정저우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는 외국에서 출장온 사람들과 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admin과 몇몇 senior manager들은 1등칸으로 배정되었다. 우리가 탄 칸이 1등칸이었는지 아니면 비지니스 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둘 사이에 구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돌아 가는 열차는 2x2 구성이었고 확실히 훨씬 폭이 넓고 의자도 뒤로도 더 기울일 수도 있었다. 열차 서비스 하는 분이 카트를 몰고 지나가면서 간단한 스낵이 든 박스도 하나씩 나누어 주고 가셨다.
Yandai Xie Jie (烟袋斜街; 연대사가; 옌다이셰제)
베이징에 도착할 때쯤 내 매니저가 내 자리로 오더니 베이징 도착하면 따로 저녁 먹을겸 구경하러 어느 호숫가를 간다고 같이 가겠냐고 묻는다. 돌아 다니는게 살짝 귀찮기도 했지만 이대로 호텔로 돌아가 알아서 저녁 챙겨 먹는 것이 더 귀찮을 것 같아서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나도 어지간히 이런 것 귀찮아하나 보다. 사실 그런 성격은 아니다. 예전에 대만 출장을 갔을 때에는 혼자 타이페이 시내에서 국립박물관도 버스/지하철 타고 찾아 가기도 했고 훨씬 전인 일본 도쿄에 견학갔을 때도 하루 일과 끝나고 일부러 혼자서 지하철 찾아서 긴자 거리도 다녀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금 달랐다. 우선 왠만한 가게들이 현금이나 비자/마스터 크레딧 카드를 받지 않고 위챗/알리페이만 받는다. 그러니 나가고 싶어도, 그냥 이곳 저곳 돌아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다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명 아닌 변명.
베이징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호텔과 회사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대기해 있었고 다른 이들이 버스로 먼저 떠나는 동안 내 매니저, 한국에서 오신 매니저 두분, Austin에서 같이 일하는 중국계 다른 매니저, admin, 그리고 나까지 6명은 뒤에 남았다. 다행 짐가방은 호텔로 바로 돌아 가는 다른 이들이 맡아서 프론트 데스크에 보관시켜 주겠다고 해서 홀가분히 나설 수는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채로 admin이 우버같은 앱으로 차를 잡고 도심으로 나아갔다. 벌써 어둠이 내려 밖을 잘 살펴 볼 수는 없었지만 자금성 근처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admin이 옆에 보이는 저 높은 성벽이 자금성 벽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가자는대로 쫓아가다 보니 내가 간 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나중에 찾아 보는게 힘들었다. 어딜 간다고 하면 하나씩 다 찾아 보는 대문자 파워 J 입장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다시 신경 쓰지도 않았고 그냥 가자는대로 따라가보자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엄청나게 북적북적한 길에서 내린 우리는 admin이 이끄는대로 길을 건너 어느 골목으로 향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아니 어느 호숫가에 간다며....


烟袋斜街, 중국말로는 옌다이셰제로 불린다는 이 곳은 원나라때 시작되어 청나라, 아니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베이징의 전통 상업거리라고 한다. 중학교 때 한자 수업 시간이 따로 있었을만큼 내가 중고등학교때는 국한문 혼용 시대여서 신문을 읽으려면 한자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정도라 쓸 줄은 몰라도 대강 읽을 줄은 알지만 이 네글자 한자 중에는 첫글자 담배, 그리고 마지막 글자 길거리라는 것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어디 다녀 왔는지 검색해 보고 알아 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이 네글자 한자의 뜻은 재미있게도 "담뱃대 골목"라는 뜻이란다. 청나라말기 때부터 담뱃대, 담배, 문방사우 등을 파는 가게가 주로 들어서면서 이렇게 불리기 시작했다고.
베이징은 생각보다 계획도시라서 대부분의 길이 남북동서로 방향으로 길이 나 있는데 이 골목은 특이하게 비스듬하게 그리고 불규칙한 각도로 이어진 독특한 골목이다. 거리 좌우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있었는데 간단한 먹을거리는 파는 가게들이 제일 많았고 인사동 골목처럼 장신구, 선물용품,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도 꽤나 눈에 띄었다. 내 매니저가 호숫가에 간다고 했던 건 이 골목들 구역 너머에 작은 연못이 있고 거기에서 보트도 빌려 탈 수 있다고 한다. 토요일 저녁이라 데이트 나온 연인들이나 친구들과 놀러 나온 이들로 골목 여기 저기는 꽤나 붐볐고 오래만에 사람 사는 듯한 복작복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한중일 같은 곳에나 느낄 수 있지 미국에서는 별로 느껴 보지 못한 분위기라고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미국은 다 넓직넓직해서 이런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골목 골목 구경을 하면서 주로 군것질 거리를 찾아 다니면 저녁을 대신 했고 근사한 식당에서 한끼 먹는 것보다 이렇게 경험해 보는 것도 꽤나 괜찮았다. 역시나 안 따라 나섰으면 후회했을지도?
그 골목들을 걷다가 소위 짜장면에 대한 간판을 굉장히 많이 보았는데 그 정확한 단어는 老北京炸酱面.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마지막 세 단어가 "짜장면"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첫번째 단어 "老"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단어 자체는 노인을 뜻하는데 "노인 북경 짜장면"?? 베이징을 떠날 때까지도 이 뜻을 정확히 몰랐는데 나중에 블로그를 위해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다가 알게 된게 이 "老"라는 글자가 노인만을 뜻하는게 아니라 "오래된" 이란 뜻으로 쓰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옛날식 북경 짜장면". 그게 정확한 의미였던 것이다.
이 "노인 북경...", 아니 "옛날식 북경 짜장면"은 우리가 아는 한국식 "짜장면"과 외형은 다르지만 맛은 꽤나 비슷했다. 흔히 "자작면"이라고 부르는 중국 국수가 있지만 이건 정말 한국식 "짜장면"과는 달랐는데 이 북경 짜장면은 훨씬 우리 입맞에 맞았다. 주문을 하면 면과 볶은 장, 그리고 8가지 야채가 따로 나오는데 이걸 전부 섞어서 먹으면 된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베이징에서 유명한 요리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이징덕"과 이 "짜장면"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골목 여기 저기에 저 간판이 달린 식당들이 많았던 거다.
긴 골목들을 돌아 돌아 구경하다가 11시가 넘어 이제 호텔로 향하게 되었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admin이 차를 잡는데 시간이 걸릴만큼 북적이는 주말 저녁이었다. 호텔로 돌아가 프론트에서 맡겨진 짐을 찾고 새로 체크인을 했다. 씻고 피곤한 몸을 뉘우면서 이제 긴 돌아가는 여정만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일 아침에 비공식(?) 관광이 하나 더 남긴 했구나...